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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 여성작가 3인] <왼손잡이 미스터 리>의 권리
최하나 사진 이혜정 2007-06-15

비딱하게 보면 세상이 보인다

그는 왼쪽에 관한 모든 것을 싫어했다. 왼쪽으로 걷지도 않았고 왼쪽 이로는 밥을 씹지도 않았다. 아예 왼쪽 치아는 양치질도 안 한 지 오래되어 엉망이었고, 좌측통행하는 길 반대편 사람들과 부딪히기 일쑤였다. _<왼손잡이 미스터 리> 중

빨갱이는 좌익, 좌익은 왼쪽이다? ‘빨갱이’를 극도로 증오한 나머지 왼쪽과 관련한 것이라면 일체 눈길도 주지 않는 할아버지. 바지춤을 가리키며 “요놈도 빤스 왼쪽에 넣고 다닌다”고 자랑스레 선언하는 아버지. 본래 왼손잡이였으되 오른손잡이로 “교정된” 아들. 권리의 두 번째 장편 <왼손잡이 미스터 리>는 왼쪽 혐오증에 사로잡힌 한 가정을 배경으로, 왼손잡이를 터부시하는 한국사회의 편협한 획일주의와 극단적 이념 대립으로 얼룩진 진보-보수 논쟁에 일침을 놓는 작품이다. 여기에 오른손이 잘려나간 탈북자 리우리가 등장하면서, 소설은 단순한 일상의 소묘를 넘어 분단의 현실을 응시하는 사회적 확대경을 제시한다. “왼손잡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상의 고통들이 있지 않나. 그런 것들에 대해서 쓰고 싶다고 늘 생각하긴 했지만, 그중에서도 나만이 쓸 수 있는 것을 찾다보니 정치적인 요소들과의 접점을 찾게 됐다. 특히 작년에 작품을 쓸 당시 한국사회의 좌우 대립이 굉장히 격했었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레 연결된 것 같다.”

좌우 대립과 분단, 탈북자 문제. 소재의 무게로 지레 묵직하고 진중한 이야기를 상상했다면 그러나 부디, 놀라지 마시길. <왼손잡이 미스터 리>의 화법은 독특하다는 표현이 낡게 느껴질 정도로 예상을 뒤엎는다. 한편에서 살인사건의 진범을 찾아가는 추리극이 펼쳐지는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꿈속의 미로를 헤매는 모험담이 전개되고, 현실과 환상은 머리를 맞댄 채 호흡을 나눈다. 히틀러와 프로이트가 지하철에 탑승하고, UFO가 PC방 상공에 출몰하며, 이태원의 고교생과 탈북자가 게임 속 가상세계에서 연인이 되는 식이다. “기존에 분단을 다룬 소설들을 보면 대다수가 리얼리즘 소설인데, 왜 꼭 그래야 하는지 의문이 있었다. 소설은 현실의 삶을 똑같이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가상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현실을 상징하는 하나의 표현수단이다.” 권리는 2004년 <싸이코가 뜬다>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자살을 시한폭탄처럼 가슴에 품은 청춘의 일상을 발랄한 시선으로 풀어갔던 데뷔작이 ‘정답’을 맹종하는 기성사회를 향해 야유를 보냈다면, <왼손잡이 미스터 리>는 왼손과 오른손을, 좌파와 우파를 가름하는 한국사회의 ‘질서’를 비딱하게 바라본다. “나는 질서 안에서 무엇보다 불안을 읽는다. 예컨대, 서울의 지도를 보면 강남이라는 지역은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지만 실상은 타워팰리스와 판자촌이 공존하는 등 빈부격차가 심하지 않나. 결국 질서라는 것은 파워를 가진 이들이 만들어낸 임의의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탈북자 리우리, 미스터 리가 대표하는 ‘카오스모폴리탄’은 그렇게 탄생했다. 카오스와 코스모스가 한몸을 이룬 존재. 그것은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고, 하나의 카테고리에 포섭되지 않는, 혼란을 내재한 우리 사회의 모습과 상통한다. 그 안에서 권리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사이코, 왼손잡이, 탈북자 등 질서의 폭력에 희생된 소수자다. “누군가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개성이다’라는 말을 했다. 한국사회는 튀는 것을 싫어하고 다른 사람을 왕따로 만들지 않나. 다수의 똑같은 사람보다는 한명이라도, 이질적인 존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수자들, 주류가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구나, 생각했고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소설가 말고는 달리 할 것이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권리는 첫 작품을 낸 후 장기간 슬럼프에 시달리기도 했다. “책을 보아도 풍경을 보아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고통의 시간을 거쳐 두 번째 장편을 완성한 그이지만, 매일 일정 분량의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는 자유롭다. 그가 인용한 김영하의 표현을 빌리자면 “투망을 던지듯 글을 쓰기보다는 낚시질하듯 글을 쓰는 것”이 권리가 추구하는 창작의 형태다. 자신감있게 낚싯대를 드리워놓고 때를 기다리는 것. “인풋(input)이 있으면 아웃풋(output) 역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 아닌가. 내 안에 많은 것들을 집어넣으면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건 무언가가 나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그의 차기작이 언제쯤 등장할지는 쉬이 감이 잡히지 않는다. 희미하게나마 던져진 단서를 따르자면 권리의 세 번째 장편은 페미니즘 소설이거나 영화에 관한 소설, 아니면 두 가지를 합친 무언가가 될 계획이다. “내게 롤모델 같은 것은 없다. 궁극적으로는 권리만이 쓸 수 있는 것을 쓰는 것이 목표다. 책을 펴서 페이지를 열었을 때, 한 단락만 읽어도 이건 권리가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