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오마이이슈
[김소희의 오마이이슈] 기말고사냐, 학원 숙제냐
김소희(시민) 2007-06-25

아파트 입구에 이런 전단지가 붙어 있었다. “과외, ○○대 의예과 재학 중, 서울대 ◇◇학부 동시합격, 중고생 영수 전문.” 서울대를 나온 게 아니라 붙어봤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후광효과가 있다. 서울대에 붙었다면 부모 직업 좋고, 집안 넉넉하고, 발육상태도 당연히 양호하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각종 통계를 봐도 확률상 맞는 얘기다. 강남의 있는 집 자식들의 합격 비중이 점점 늘어나니까.

서울대가 내신 1~2등급을 나누지 않겠다고 하고, 유명 사립대학들이 너도나도 따라 나서 아예 1~4등급까지 안 나누겠다는 움직임을 보이자 교육부가 “지원금 삭감”, “대학 평가 때 반영” 운운하며 급제동을 걸었다. 교육부는 안 그래도 애들이 학교 수업은 나 몰라라 학원으로만 몰리고 있는데, 이 와중에 내신 등급을 뭉뚱그리는 것은 반영 비율을 줄여 내신을 무력화하는 짓이고, 이는 곧 공교육을 정상화하려는 정부 방침에 따르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돈도 줄 수 없다는 협박이었다. 사립대들은 대체로 꼬리를 내리려 하는데, 서울대는 버티고 있다. 교육부와 서울대가 힘겨루기 하는 양상이다.

이들 대학들이 내신 상위 등급자들을 묶으려 드는 건 특목고 출신들을 더 많이 ‘영입’하려는 욕심이다. 변두리 고교 1등급보다 외고 9등급이 더 성적이 좋다(는 것은 뿐만 아니라 집안도 부모도 빵빵하리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일부 외고에서 여학생에 밀리는 남학생 부모들이 난리쳐 남녀 따로 내신을 매기려 한 적이 있는데, 여학생 부모들이 가만히 있지 않은 관계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애들 혼란이 크다고 한다. 당장 기말고사인데, 시험 공부에 매달릴지 학원 선행학습 숙제를 할지 고민이라는 말이다. 어차피 떨어질 걸 서울대 지원했다가 정원 미달로 덜컥 합격한 전국석차 하위 10% 이내 갑돌이의 순발력과, 요령껏 달달 외워 유명 사립대에 합격한 뒤 “국영수 빼고 암기과목으로 승부했어요” 떠벌리던 기초실력 냉무인 갑순이의 지구력이 화제가 되던 시절, 내가 대학에 간 것은 정녕 행운이었다.

그나저나 내신을 강화하면 공교육이 정상화될까? 애들이 수능보다 중간고사 기말고사에 매달리면 사교육의 폐단이 줄고 교육 양극화 문제가 해결될까? 만 스무살도 안 된 나이의 대학 입시가 평생을 결정짓는 ‘더 위너 테이크스 올’의 사회에서, 서울대 말 안 듣는 교육부는 문닫으라는 말이 안 나오는 걸 차라리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