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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잔혹한 농담

<밀란 쿤데라의 농담> EBS 6월30일(토) 밤 11시

<밀란 쿤데라의 농담>은 밀란 쿤데라의 <농담>을 원작으로 밀란 쿤데라와 야로밀 이레즈가 함께 각색한 작품이다. 농담 한마디가 인간의 운명을 바꾸어놓았던 경직된 시절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1948년 공산혁명 직후, 체코사회는 혁명적 낙관주의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저 사랑에 빠졌을 뿐인 청년 루드빅은 당의 연수에 참여 중인 연인에게 자신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엽서 한장을 보낸다. 혁명적 낙관주의에 대한 가벼운 비판을 담은 엽서가 공개되자, 그는 트로츠키주의자로 낙인찍혀 대학과 사회에서 추방당한다. 그 뒤, 그는 머리를 짧게 깎이고 군부대로 보내져서 석탄 캐는 노역에 시달리게 된다.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그는 과거 자신을 제명한 회장과 사회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이 영화는 밀란 쿤데라가 참여한 작품인 만큼, 원작 소설을 대체로 충실하게 옮기는 데 주력한다. 야로밀 이레즈는 원작의 내용을 따르는 것을 넘어서, 소설의 분위기를 영화적으로 재현하는 데도 공을 들인다. 영화의 시공간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그 경계가 모호하게 처리되어, 때때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주인공의 회상인지, 주인공의 시선이 지금 어디로 향해 있는지조차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기도 하다. 특히 영화는 서로 다른 시공간의 장면에 동일한 배경음악을 흐르게 해서 신의 이동을 한편으로는 이음매가 보이지 않게 유기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것은 마치 주인공의 내면에서 아픈 과거와 상처만 남은 현재가 서로를 바라보며 겹쳐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를테면 루드빅의 의식의 흐름에 따른 몽타주라고 할까. 또한 영화는 동일한 공간 안에 있는 인물들을 마치 서로 분리된 공간에 존재하는 것처럼 분할하여 포착해내며 당대의 건조하고 각박한 공기를 전달한다. 한순간의 농담으로 운명을 저당잡힌 한 남자의 비극. 영화는 그 끝에 복수의 쾌감이나 꿋꿋한 신념이 아닌 삶의 조악함과 허무함을 남겨둔다. 1963년 <울음>으로 체코 뉴웨이브에 합류한 야로밀 이레즈는 <농담>으로 산세바티안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뒤에도 200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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