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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의 미드나잇] ‘닥몽’의 경쾌한 외출

ABC, 9월부터 <그레이 아나토미> 스핀오프 방영 예정

<그레이 아나토미> KBS2 일요일 오후 11시40분

미국영화나 드라마의 제목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문법과는 상관없이 the, of, for 등 덜 중요한(?) 단어들이 사라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원제 <Grey’s Anatomy>에서 소유격(’s)이 빠져 만들어진 <그레이 아나토미>도 그 대표적인 예. 물론 그렇다고 반드시 <그레이스 아나토미>라고 했어야만 한다는 규칙은 없다. 하지만 이 미국 드라마의 원제가 1858년 영국의 헨리 그레이가 출간한 유명한 해부학 서적인 <Henry Gray’s Anatomy of the Human Body>를 줄여서 부르는 <Gray’s Anatomy>임을 고려한다면, <그레이 아나토미>라는 작명은 어찌됐건 다소 어색하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조금은 불만족스러운 우리말 제목과는 상관없이, <그레이 아나토미>의 인기는 미국만큼이나 국내에서도 대단하다. ‘병원이 무대일 뿐 뻔한 다각관계 멜로’라는 일부의 폄하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사랑, 삶 그리고 생명에 대한 통찰이 담긴 수작’이라는 우호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것. 그런 평가에는 주인공 메러디스 그레이(엘렌 폼페오)와 데릭 셰퍼드(패트릭 뎀시)는 물론이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인물들이 기여하는 바가 크다. 그중에서도 데릭의 전 부인이자 산부인과 의사로 등장하는 에디슨 몽고메리(케이트 월시)는 매우 독특한 설정으로 인기를 끄는 경우다.

실력만큼이나 외모도 출중한 그녀는 겉도는 남편 때문에 공허해진 삶의 대안으로 남편과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역시 잘나가는 성형외과 의사인 마크와 바람을 피우다 남편을 잃는 인물이다. 어찌 보면 나쁜 여자일 수 있겠지만, 워낙 활동적인데다가 매력적인 성격까지 지녀 갈등구조상 대척점에 있어야 하는 메러디스까지 그녀에게 약간의 호감을 갖게 될 정도다. 국내 팬들 사이에서도 그녀를 ‘닥몽’(닥터 몽고메리의 준말)로 부르며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주인공들에 버금갈 정도의 인기에 주목한 것은 제작진들이었다. 그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새로운 드라마를 스핀오프(spin-off) 형식으로 만드는 것에 대한 아이디어를 논의하기 시작한 것. <프렌즈>의 여섯 주인공 중 하나인 조이(매트 르블랑)를 독립시켜 <조이>가 만들어진 것과 같은 아이디어였다. 제작자인 숀다 라임스는 에디슨이라는 캐릭터를 좀더 밝은 분위기의 배경에 놓을 경우 <그레이 아나토미>와 차별화되는 의학 멜로드라마가 가능하다는 확신에서 이 아이디어를 밀어붙였다. 그리고 실행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독특한 시도를 하게 된다.

그 시도란 이른바 ‘백도어 파일럿’. 흔히 새로운 미드 시리즈가 기획되면 시청자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1~2시간짜리 파일럿을 만들어 별도로 방영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레이 아나토미>라는 잘나가는 시리즈의 스핀오프라는 장점을 살려 아예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3 중간의 23과 24에피소드에 걸쳐 파일럿을 방영한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더 프랙티스>에서 <보스톤 리갈>이 스핀오프되는 에피소드를 방영한 적도 있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2시간 연속 스핀오프의 등장인물 중심으로 에피소드가 방영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다행히 <프라이빗 프랙티스>(Private Practice)라는 제목이 부여된 스핀오프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는 엄청났고, 파일럿의 시청률도 <그레이 아나토미>의 평균 시청률을 웃돌았다. 물론 새로운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느라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다는 힐책도 많았지만, 우중충한 시애틀과는 확연히 다른 LA라는 도시의 경쾌한 분위기가 에디슨이라는 걸출한 여의사 캐릭터와 잘 맞는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CSI: 라스베가스>나 <CSI: 뉴욕>과는 달리 <CSI: 마이애미>가 나름 지역의 독특한 경쾌함을 보여준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ABC>는 이번 9월부터 <그레이 아나토미: LA>라고 불리게 될지도 모르는 <프라이빗 프랙티스>를 방영하기로 공식 결정한 상태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쉽지 않은 게임이 될 것은 분명하다. 파일럿이야 <그레이 아나토미>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지만, 본격적인 스핀오프가 시작되면 자생력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즌3까지 오면서 힘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레이 아나토미> 역시, 신선한 아이디어로 무장할 <프라이빗 프랙티스>의 등장에 잔뜩 긴장해야 하는 입장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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