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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바보의 블로그
정재혁 2007-07-27

블로그에 포스팅을 쓰는 횟수가 줄었다. 마지막에 올린 게 5월30일이니 줄었다기보다 꽤 뜸한 게 맞다. 생활의 고백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언가 보고하길 즐겼던 곳에, 이제는 잘 가지 않는다. 사람들을 만나고,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시간을 알려주기가 버겁게 느껴진다. 인간관계란 가끔씩 잘 살고있는 나에게 빈 공간을 던져 허무함을 느끼게 한다. 아니, 이미 던져진 공간을 나는 이상하게도 주기적으로 알아차린 뒤 다시 까먹는다. 내가 제공하는 정보가 쓸모없이 느껴지고, 깜박이던 커서가 지저분한 얼룩처럼 보인다. 이건 어디까지나 주기적인 질병이다.

얼마 전 유아인이 출연한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보았다. 영화가 끝난 뒤 관객과의 대화가 있었고, 유아인과 정윤철 감독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세상과 화해하지 못한 종대를 연기한 유아인은 이 영화에 무척 깊은 열정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영화가 개봉한 뒤에도 열 차례가 넘게 관객과 만났으며, 시간이 없는 틈에도 관객의 질문에 귀를 기울였다. 영화는 그저 그런 청춘영화의 공식 그대로였지만, 유아인은 그 공식의 청춘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현실과, 그 현실에서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블로그로 치자면 수많은 포스팅들이 끊이지 않는 링크를 타고 이동하는 느낌. 최소한 종대의 총대는 씩씩함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또 얼마가 지나 마쓰모토 준이 출연한 드라마 <밤비노!>를 보았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배우는 밤비의 이야기인 이 드라마는 아직 깨지고, 배워나가야 할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밤비의 위치를 아름답다 말한다. 드라마를 보면선 주로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파스타에 눈과 코를 빼앗겼지만, 유치하게 울리는 밤비의 열정이 지워지지 않았다. 현실, 말하기도 유치한 그 단순한 고민이 나에겐 늘 이유없는 냉소에 밀려 있었으니까.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얼마 전 배우 이완의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그 누구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건 이완의 탓도,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의 탓도 아니다. 그 시간 묘하게 나의 주기적인 질병이 발병했고, 들리는 모든 소리들이 사실 내 귀엔 도착하지 않았다. 나의 질문은 바보스러웠고, 이완의 답변에 대하는 태도는 엉망이었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도 무음을 낸다는 걸 그때 알아차렸다. 참고로 이완은 성실했고 훌륭했다. 다시 한번 미안하다 사과한다.

블로그, 어쩌면 그놈이 문제인지도 모른다. 사람을 항상 붕 뜨게 만드는 그곳에서 나는 현실을 비웃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곳은 실제 내가 있는 곳이 아니라고 착각했는지 모른다. 진부한 청춘을 살면서도 그건 나의 청춘이 아니라고, 밤비의 열정을 가슴에 품고서도 일의 성패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거짓의 제스처를 취했다. 모든 게 과장되어 있었고 블로그의 포스팅만이 지워졌다 쓰이기를 반복했다. 사실 그건 모두 거짓말임에도.

얼마 전 독립을 해 집을 나온 나는 식구들이 없는 공간의 허전함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쓸쓸함도 있었지만 채워 있다 비어진 공간의 묘한 느낌이 더 강했다. 관계의 한축이 사라진 곳에서 나는 무슨 감정을 가져야 할지 망설였던 것도 사실이다. 아픔일까 사랑일까 슬픔일까. 포스팅을 쓰려다 말았다. 거짓말로 채우느니 그냥 비어진 채로 간직하고 싶었다. 이제야 현실을 만난 느낌이라 말하기도 쪽팔린다. 참 바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