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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BFI를 둘러싼 근심

영국 영진위에 산하 BFI의 출판팀 폐지에 대한 비판 날로 거세져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이 바통 터치를 한 지난 한달 사이, BFI(British Film Institute)의 현재와 미래를 둘러싼 암울한 근심이 영국의 영화·문화계 및 학계를 뒤덮었다. 지난 6월9일 일간지 <가디언>의 독자편지란에는 마이클 샤낭, 로라 멀비, 리처드 다이어를 비롯한 56명의 교수와 연구자가 BFI의 행보를 비판하는 글이 실렸다. BFI가 ‘영국 영화사료의 체계적 관리’라는 청사진을 전면에 내세우는 한편으로 출판팀을 없애려는 계획에 대한 항의였다. 이 기고에 대한 찬반양론의 편지들이 <가디언>에 실린 6월13일, BFI는 영국 필름 헤리티지 그룹의 명의로 공식적인 아카이브 재편성 계획안을 홈페이지에 발표했다. 그리고 6월16일 BFI의 디렉터인 아만다 네빌은 재차 <가디언>에 기고하면서 BFI의 재정 상황이 열악한 만큼 이제는 주업무인 아카이브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비판자들이 궁극적으로 우려하는 것은 아카이브를 비롯한 BFI 도서관의 운영이 존폐 기로에 서 있다는 점이다. 출판팀의 폐쇄는 첫걸음일 뿐 결국 좀더 탄탄한 후원자와 인수자를 찾는다는 구실로 BFI 도서관과 아카이브 운영에서 손을 떼고 말 것이라는 전망이다. 물론 BFI에서는 연일 아카이브가 BFI의 핵심 사업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비관적인 전망은 이미 훨씬 이전부터 영화계에 퍼져 있었다.

학계와 BFI간에 논쟁이 불붙던 차, 80∼90년대 BFI 제작위원회를 이끌었던 콜린 매케이브는 7월7일자 <옵저버>에 ‘정치적 파괴 행위로부터 영화를 구해야 한다’라는 칼럼을 기고하면서 문제의 근원을 더 파고든다. 그에 따르면 BFI를 둘러싼 문제는 1997년부터 시작된 토니 블레어/노동당의 문화정책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제도적으로 보자면 BFI가 영국 영화진흥위원회(UK Film Council)에 종속되면서 예견된 사태였다.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크리스 스미스가 ‘지속 가능한 영화산업’을 기치로 영화정책을 문화산업에 집중시키고, 이전까지 교육 및 영화문화에 이바지했던 BFI의 예산권 및 인사권을 산업 논리 중심의 영국 영진위에 일임한 이상, BFI의 독자적 행보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하물며 영진위는 지난 20년 사이 네배 가까이 늘어난 영국 영화제작 편수를 근거로 영화산업 중심의 정책이 성공적이었다고 내세우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거기엔 세제 혜택을 편법으로 악용해서 애초부터 상영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은 허수로서의 영화만 양산해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6월28일, 1970년생의 제임스 퍼넬이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지난 10년간 블레어 정권의 미디어 정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이 기린아에 대해 문화계는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BFI를 근심하는 이들은 여전히 비관적이다. BFI는 더이상 문화부 소관이 아닌, 영국 영진위의 독점적 권력 아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