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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마감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오정연 2007-08-03

매주 닥쳐오는 마감은 새삼스럽게 절망적이고, 권고했던 시간에 맞추어 기사를 작성하는 경우는 절망적으로 드물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_-) 기획기사의 일반적인 마감시간인 수요일 저녁. 완강하게 텅 빈 모니터를 바라보자면 만감이 교차한다. 이토록 글쓰기를 싫어하는 나는 어쩌자고 글써서 밥벌어먹는 직업을 택했을까, 어차피 해야 할 일이거늘 어제의 일을 오늘로 미친 듯이 미룬 나는 진정 바보인가, 등등 실존적인 고민들이 꼬리를 문다. 우리 사이에 떠도는 풍문 중 “기사는 기자가 쓰는 게 아니라, 마감이 쓰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최종 마감시간인 목요일 오후까지 기획기사를 붙들고 있다보면, ‘드디어 기사를 펑크내고야 마는구나’라며 절망할 때가 있다. 그런데 진정 신비로운 것은, 저녁이 되면 어떤 식으로든(이쯤되면 기사의 꼬락서니는 장담할 수 없는 수준) 마감이 되어 있더란 말이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없구나, 결국 기사는 마감님께서 마무리해주시게 마련, 이라는 겸허한 태도를 가지게 되는 순간이랄까.

이처럼 오묘한 마감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저마다, 그때그때 다르다. 일상 생활에서는 절대 써먹을 수 없고 써먹어서는 안 되는, <씨네21> 기자들의 마감 대처법 몇 가지만 소개하겠다. 첫째 동정유발형. 무조건 불쌍하게 보이는 거다. 이번주에 너무 일이 많았고, 취재원은 무지막지하게 불친절했으며, 출근하는 길에는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고, 우리집 고양이가 갑자기 아침에 어쩌고저쩌고, 상상할 수 있고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핑계를 구구절절하게 들어가면서 편집기자의 인간성에 호소하는 기술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용하는 방법이며, 무조건 잘못했다는 (그러나 이제 와서 어쩌겠냐는) 태도가 관건이다. 둘째 접근엄금형. 무조건 무섭게 보이는 거다. 굳은 표정으로 ‘나, 지금 건드리면 알아서 해’라는 포스를 뿜어내면, 아무리 급한 편집기자라도 막상 마감을 독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게다. 외모나 성격이 여러모로 받쳐줘야 하기에, 카리스마 제로인 나로서는 거의 한번도 사용하지 못했던 대처법. 마지막으로 일단잠수형. 무조건 연락을 끊는 거다. 기사가 완성될 때까지 집에서 자판을 두들긴 끝에 완성된 기사를 미리 보낸다. 마감없이 출근없다는 비장한 각오가 필수적이다. 대범하게 몸만 먼저 출근했다가 편집장으로부터 “기사는 어쩌고 너만 왔냐”라는 말을 듣기 십상.

이토록 덜떨어진 취재기자를 어르고 달래며 숱한 기사를 갈무리해야 하는 게 편집기자의 기구한 운명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나름의 전략은 있는 것 같다. 무서운 얼굴로 협박해봐야 말을 들을 리 없는 취재기자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식이랄까. <씨네21>의 편집기자 3인 중 이 기술을 가장 자연스럽게 구사했던 동료가 마지막 마감 중이다. 우리는 입사 당시에는 옆자리 짝궁이었고, 나이까지 같은 동기지간이다. 정해진 시간에 마감하지 못하고 미안하다는 문자를 남긴 것이 몇번이던가. 기막힌 적중률을 자랑하는 그녀의 타로점은 일상의 한줄기 빛이었더랬다. 그녀가 없는 와중에도 나의 마감대처법은 여전할 테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다음 세상에라도 취재기자와 편집기자로 만난다면, 좀더 의연하게 마감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ㅠ.ㅠ) 함께 일하면서 즐거웠다고. 진심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