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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한국영화의 진짜 얼굴

한국영화를 다룬 해외 다큐멘터리들이 놓치고 있는 것들

<한국영화의 성난 얼굴>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중에는 한 시간 분량의 <한국영화의 성난 얼굴>(The Angry Men of Korean Cinema)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프랑스 영화평론가 이브 몽마예르가 연출하고 TV에서 먼저 방영된 이 다큐멘터리는 주류 유럽 관객에게 한국영화를 소개한다. 이런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는 또 다른 프랑스 영화평론가 위베르 니오그레가 감독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The Nine Lives of Korean Cinema)라는 60분짜리 TV다큐멘터리를 상영했다. 이 두 작품은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주로 한국 감독들과 서구 영화비평가들의 인터뷰, 유명한 영화들의 클립, 현대 한국의 거리장면 등을 담고 있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는 또한 짧은 역사 이야기도 담고 있다.

한국영화를 다룬 또 다른 다큐멘터리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영화에 한 시간 정도를 할애한 영국의 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스의 3부작 <BBC> 다큐멘터리 <아시아가 몰려온다>(Asian Invasion)가 있다. 그리고 적어도 두편의 다큐멘터리가 아시아에 있는 TV방송사에서 제작됐고, 내가 들어보지 못한 더 많은 다큐멘터리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다큐멘터리들이 계속해서 나타난다는 것은 한국영화에 대한 국제적 인식이 확장되고 있다는 신호이다. 그러나 나는 그 다큐멘터리들을 모두 모아서 줄줄이 보게 된다면 어떨지 궁금하다. “외부에서” 한국영화를 보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일이겠지만, 또한 답답하기도 할 것이다.

물론 한 시간짜리 다큐멘터리에다 한국영화의 다양성과 뉘앙스를 포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는 위에 언급한 작품들이 간과한 것들을 열거할 수 있다. 그중 어떤 영화도 한국 영화평론가와의 인터뷰를 넣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는 영화산업의 상업적 측면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한국영화의 성난 얼굴>은 홍상수와 임권택 같은 감독들을 무시했다. 어쩌면 이것은 그저 이런 다큐멘터리들이 불가능하게 광범위한 주제를 잡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한국영화의 성난 얼굴> <아시아가 몰려온다>를 보면서 나는 또 다른 영화, 또 다른 나라를 소개받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스크린상의 이미지는 모두 한국처럼 보였고, 그 얼굴들도 알아볼 수 있었지만, 뭔가 들어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이 맞나 하고 자문했다.

어떤 것이 됐든 광범위한 주제를 잡고 TV시청자가 쉽게 소화할 수 있게 만들려면 어느 정도의 단순화와 어느 정도의 신화 만들기를 가미하게 된다. 한국영화는 폭력적이다, 혹은 적어도 대결을 많이 나타낸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의 파란만장했던 역사와 독재를 경험했던 과거 때문이라는 것을 이 다큐멘터리들이 가르치는 것이다. 한국영화들은 할리우드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한국영화의 성난 얼굴>에 따르면 1970년대 할리우드의 긍정적인 영향과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에 따르면 현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부정적인 영향이란다). 한국인들은 영화에 미쳐 있다. 이 진술 중 어느 것도 100% 거짓으로 다가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 어느 것도 100% 진실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것들은 <8월의 크리스마스> <장화, 홍련> <해변의 여인> 같은 영화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해주는가?

이 다큐멘터리들을 보는 일이 잠시 잊었던 것을 나에게 상기시켜줬다. 유럽에서(혹은 미국이든 싱가포르에서든) 한국영화는 고향 땅에서 새로운 환경으로 이식된 나무와 같은 것이 아니다. 완전히 다른 종이다. 영화에 대한 우리의 경험과 기억의 대부분은 영화 내적인 것보다 외부적인 힘에 의해 주조된다. 즉, 그 영화를 접하게 되는 방식, 우리 주의의 사람들의 반응, 주류 미디어 내의 그 영화의 존재(혹은 부재) 등이 그것이다. 유럽에서 관객이 어떤 영화에 무슨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결정하는 힘은 한국에서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들을 보면서 다른 영화에 대해 가르침을 받고 있단 느낌이 든 것은, 어떻게 보면 맞는 것이었다.

그래도 좋은 다큐멘터리와 나쁜 다큐멘터리는 따로 있다. 언젠가 한국영화의 에너지, 다양성, 그리고 약점들을 그 영화들에 있는 만큼의 야망과 열정으로 포착해내는 다큐멘터리를 보기를 희망한다. 그 관점이 과도히 “외국인의 것”이든 아니면 개인적인 것이든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영화에 대한 단일한, 올바른 서사는 없지만, 이 작은 틈새 영역엔 아직 강력한 스토리텔러가 부족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