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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파서블 이무기의 7년 용틀임
주성철 2007-08-07

드디어 베일 벗은 심형래 감독의 <디 워>, 2001년 첫 테스트 촬영부터 개봉까지

<용가리>(1999)로부터 7년, <디 워>는 한국형 SF장르의 혁신을 꿈꾸는 심형래 감독의 오랜 노고의 결과물이다. <용가리>를 통해 <쥬라기 공원>의 T렉스보다 50배나 더 큰 공룡 용가리를 만들었던 그는 이제 <디 워>의 이무기로 영화역사상 가장 큰 뱀 캐릭터에 도전한다.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가장 첨예한 선두에 있는 <디 워>의 지난 기억을 되돌아본다.

“감독님 돌아가셨다면서요?” “응, 나 죽은 거 어떻게 알았어?” <디 워>의 본격적인 촬영이 이뤄지던 지난 몇년간도 심형래 감독은 온갖 괴소문에 시달렸다. 엎어질지도 모른단 얘기는 너무나 흔했고, 심지어 촬영 도중 사망했다는 유언비어까지 돌았다.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와 생사를 묻는 일이 부지기수였던 것이다. 하지만 영구아트 사람들은 7년이라는 긴 시간의 그 어떤 순간도 한가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2001년 한국에서 첫 테스트 촬영을 하고 2년 뒤 조선시대 미니어처 본촬영에 들어가기까지의 꽤 긴 공백도, 사실은 CG팀이 밤낮으로 데모영상 제작에 매달려 있던 시기였다. <용가리>의 흥행 실패 이후 꼭꼭 숨어 있는 투자자들을 찾기 위해 그들의 구미를 당길 만한 그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디 워>가 임파서블한 미션이라는 소문은 끊이질 않았다. <용가리>와 <디 워>의 도입부 모두 정체불명의 사건현장에 기자의 출입을 막는 장면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은 꽤 의미심장하다. 그렇게 심형래 감독은 은둔자처럼 자신의 9번째 장편영화를 완성했다.

영구의 몬스터, 이번엔 뱀이다!

‘감독 심형래’의 영화에는 유독 많은 ‘용’과 ‘공룡’들이 등장한다. 자신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자 ‘영구아트’의 창립작이기도 한 <영구와 공룡 쮸쮸>(1993)에서는 현대에 되살아난 어린 공룡 쮸쮸가 영구와 함께 사이좋게 돌담길을 걸었고, <티라노의 발톱>(1994)에서는 기원전 5만년 공룡 시대의 원시인 심형래를 볼 수 있었고, <영구와 우주괴물 불괴리>(1994)에서는 영구가 초록별 지구를 점령하기 위해 파견된 불괴리와 싸웠고, <드래곤 투카>(1997)에서는 영구가 젊은 여자를 제물로 삼는 거대한 에일리언과 싸웠고, 영구아트 영화들 중 그 자신이 배우로 출연하지 않은 첫 번째 영화이기도 한 <용가리>(1999)에서는 100% CG로 완성된 용가리의 존재를 볼 수 있었다. 가히 ‘몬스터 페티시’라 불러도 좋을 만큼 하나같이 영구는 언제나 정체불명의 용과 공룡의 친구이자 적이었다. 그것은 종종 영구아트 특수효과 영화의 선배라고 해도 좋을, 그러니까 <우뢰매> 시리즈를 통해 지금의 그를 있게 해준 것이나 다름없는 선배 김청기 감독의 애니메이션 <공룡 100만년 똘이>(1981)의 또 다른 실사 버전이거나 저 멀리 할리우드의 <킹콩>과 <E.T.>, 그리고 일본 <고지라>의 한국적 변형이었다.

<디 워> 역시 구성은 크게 다를 바 없다. LA 도심 한복판에서 의문의 참사가 일어나고,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 이든(제이슨 베어)은 정체불명의 비늘을 보고 어릴 적 들었던 한국 전설을 떠올린다. 과거 이무기는 여의주를 지닌 여인을 제물 삼아 승천하려 했는데, 그 꿈을 이루지 못하자 다시 그 제물을 찾아 LA로 온 것이다. 그렇게 소녀를 지키려는 이든과 이무기 일당의 거대한 전쟁이 벌어진다. 여기서 악한 이무기 ‘부라퀴’는 이전 심형래식 몬스터의 계보를 잇는다고 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지금껏 그가 만들어낸 쮸쮸, 티라노, 불괴리, 용가리가 모두 손과 발을 지닌 채 직립보행을 하는 몬스터들이었던 데 반해 이무기는 수족이 없는 철저한 뱀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사실 그것은 전혀 다른 도전이었다. 그만큼 이무기 작업은 제작 과정상 LA 로케이션과 더불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 중 하나다. 일례로 프리 프로덕션 기간 중 <디 워>의 김민구 조감독은 드림웍스에서 <쿵푸 팬더>를 작업하고 있는 지인을 만난 적 있다. 성룡과 루시 리우 등이 목소리 출연해, 내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는 쿵푸를 구사하는 팬더, 호랑이, 원숭이, 뱀 등이 등장하는 어드벤처물이다. 그는 “<쿵푸 팬더>의 여러 동물 캐릭터들 중에서 가장 많은 애니메이터들이 붙어서 작업하는 게 바로 뱀이라고 했다”며 “그만큼 뱀 CG 작업이 가장 힘들다는 말인데, 우리 영화에는 거대한 뱀이 나온다고 하니 깜짝 놀랐다”고 말한다. 그것은 스탭들에게 자부심과 부담감을 동시에 유발하는 얘기였다.

더불어 영구아트는 제작 기간 중 논밭으로 둘러싸여 있는 서울 강서구 오곡동의 한 외딴 폐교를 개조한 새 건물로 이사를 했다. 하늘의 도움이었을까? 제법 비가 왔다 그치는 날이면 건물 주위에는 실제 뱀들이 여러 마리 노닐었다. 그럴 때마다 CG팀들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자연 그대로의 표본을 관찰할 기회를 얻었다. 우스개처럼 들릴지 모르는 일이지만 실제로 이무기는 그렇게 논두렁의 뱀에서 시작됐다. 고민이 계속되면서 이무기의 외형과 액션의 윤곽이 서서히 잡혀갔다. 김민구 조감독은 “이무기는 얼굴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른 공룡이나 괴물은 팔다리의 움직임이나 특별한 제스처로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지만 뱀은 그게 안 된다. 오직 표정으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팔다리를 디자인할 필요가 없는 대신 그만큼 더 세밀한 머리 디자인이 필요했단 얘기다. 그 다음은 움직임이다. 6년 전부터, 그러니까 심형래 감독을 제외하고는 거의 가장 오랫동안 <디 워> 프로젝트에 관여해온 전세영 홍보팀장은 “뱀은 근육의 움직임이나 도약, 웅크림 등 그 움직임의 리듬을 파악하는 게 힘들기 때문에 CG팀의 고생이 컸다”고 말한다. 하지만 긴 원통형의 생물에서 상상할 수 있는 액션의 스펙트럼은 그리 크지 않았다. 전세영 팀장은 “고질라와 용가리가 짓밟고 다니는 느낌의 액션이라면, 이무기는 정신없이 쓰러트리는 느낌을 준다”고 말한다. 고질라나 용가리보다 다양한 동작을 취할 순 없어도 훨씬 스피디하다는 얘기다.

LA의 대낮을 담아라!

심형래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용가리>가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었다면, 그것의 시행착오는 <디 워>를 준비하는 가장 큰 힘이 됐다. 아마도 <용가리>와 <디 워>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미국 LA 로케이션과 백주대낮의 CG일 것이다. <용가리> 역시 설정상으로는 LA를 배경으로 했지만 한강 다리가 등장하는 등 서울임이 뻔한 배경에다, 빈번히 드러나는 한글 간판과 국산자동차는 실소를 금치 못하게 했다. CG 역시 기술적 문제로 인해 대부분 밤장면에 집중됐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태양이 비추는 장면에서의 CG는 빛이 없을 때보다 2, 3배의 디테일을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 <디 워>는 확실히 업그레이드된 영구아트의 기술력을 입증한다. 더불어 밤을 벗어난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디 워> 제작진은 실제 LA로 향했다. ‘세계시장을 겨냥’한다는 심형래 감독의 변함없는 목표 때문이었다. 2004년 10월부터 12월까지 2개월간 진행된 LA 현장에는 80여대의 컨테이너 차량이 동원됐고 현지 할리우드 스탭만 250여명이 참여했다. 시가지 촬영을 위해 LA 중심부의 도로를 막고 경찰의 통제하에 탱크와 총을 쏘아댔으며, 수많은 엑스트라를 동원해 실제 전쟁 상황을 방불케 하는 액션신을 연출했다. 스케일 또한 커졌다. <용가리>가 용가리의 건물 파괴와 단조로운 군대와의 대결로 점철돼 있었다면, <디 워>는 딱히 이무기가 주인공이 아니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이무기 ‘부라퀴’ 외에도 그 추종세력인 말 모양의 사콘, 익룡에 가까운 불코, 거대한 더들러가 지상과 공중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는 싸움을 벌인다.

또한 <디 워>의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 중 하나는 LA 최고층 빌딩인 73층 높이의 US뱅크타워를 휘감고 있는 이무기의 모습이다. 촬영 당시에는 ‘리버티타워’라 불렸던 이 빌딩은 최근 알 카에다가 9·11 테러 이듬해인 2002년 여객기를 납치해 치명적인 충돌 공격을 벌이려고 했던 곳으로 밝혀져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섭외가 가능했다는 사실은 특수효과 기술의 업그레이드만큼이나 큰 의미를 지닌다. 전세영 팀장은 “당시 현지 로케이션 매니저와 함께 헌팅을 다녔는데, 빌딩 관리자 외에 또 다른 에이전시가 있는 건물이어서 섭외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심형래 감독이 그 건물을 고집했고 늘 가지고 다니시던 노트북에 저장된 데모영상을 보여주며 설득했다. 처음에는 로비 촬영 정도로만 끝날 것 같았는데, 감독님의 적극적인 ‘작업’으로 인해 이례적으로 옥상에서의 촬영도 가능하게 됐다”고 말한다. LA 도심 액션의 방점을 찍을 곳이 필요했던 심형래 감독으로서는 도저히 물러설 수 없는 선택이 바로 US뱅크타워였다. 거의 20여분에 이르는 후반부의 이 LA 도심 액션 시퀀스는, 이를 위해 다른 장면들을 희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디 워>의 핵심이다.

심형래의 패트리어트 게임

<디 워> 제작진은 영화 촬영이 거듭되면서, 음악감독 스티브 자브론스키나 편집을 맡은 마크 맨지니 같은 유명 스탭들과 개별적으로 접촉했다. 이러한 스탭 구성 문제와 더불어 대규모 LA 촬영장면이 예정돼 있었기에, 한편으로는 미국쪽 영화사와의 합작도 고려해볼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심형래 감독의 판단은 “합작 형태를 띠게 되면 원하는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것”이란 우려였다. 더구나 <고지라>의 할리우드 리메이크도 끝난 상황에서, 이무기라는 새로운 존재의 흥행성을 쉽게 속단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디 워>는 현지 인력만 캐스팅한 형태로 순수 국내 제작 영화로 완성됐다. 그렇게 ‘독자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은 영화 도입부 영구아트의 새로운 로고에도 드러난다. <용가리> 당시 영구를 ‘ZERONINE’으로 표기했다면 <디 워>는 심형래 감독 옆얼굴의 실루엣과 더불어 ‘YOUNGGU ART’라는 새로운 문구가 뜬다. ‘영구’라는 한국식 발음 그대로를 영어로 표기하는 것은 영화 전체의 작명법과도 맞닿아 있다. 영화 속 외국인들은 이무기, 여의주, 부라퀴라는 한글을 있는 그대로 발음한다. 제작진이 생각하기에 여의주를 ‘드래곤 볼’이라 부르는 것은 너무나 우스운 일이었고, 부라퀴 역시 ‘강제로 남의 것을 취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순수 우리말이다.

아마도 심형래 감독의 애국심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라스트에 오케스트라로 장엄하게 흐르는 <아리랑>을 배치한 것이다. 이에 대해 심형래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왜 베토벤과 모차르트만 클래식인가. 우리 음악 중에서도 정말 세계적으로 통하고 오래 기억될 만한 멋진 노래가 많다”고 반문했다. 물론 그에 앞서 김홍도의 정겨운 풍속도가 도입부에 등장하고, 영화 중반 이무기가 습격하는 LA의 한 동물원이 ‘심씨네 동물원’이라는 것도 첨언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이들 모두를 압도하는 것은 <디 워> 크레딧 마지막에 삽입된 심형래 감독 자신의 심경을 담은 편지형식의 사진과 에필로그다. “<용가리>를 가지고 모두가 실패했다고 했지만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 비디오 대여점의 <용가리>를 보고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영화에 몸담은 지 10년, 세계에서 최고가 되고 싶습니다” 등의 문구가 삽입된 이 6분여의 영상은 그가 스스로에게 바치는 다소 민망한 ‘스페셜 땡스 투’다. 국내 상영필름에만 덧붙여질 것이라는 이 영상은 실제 LA에 있는 거대한 할리우드 사인을 배경으로 촬영한 심형래 감독의 사진으로 마무리된다. <디 워>가 보여주는 그 어떤 키치적 설정이나 논리적 허술함도, LA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전개되던 영화가 느닷없이 그 LA의 할리우드 사인으로 마무리되는 그 엄청난 반전에는 비할 바 못된다. 이렇게 <디 워>의 내부에는 기술적 성취라는 절대 명제 외에도 여러 개의 서로 다른 욕망들이 상충하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오히려 이국적으로 보이는 이 화려한 블록버스터의 세계 속에서, 심형래 감독의 새로운 도전은 승천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이무기의 무기는?

팔다리가 없잖아, 그럼 머리로 싸우는 거지

팔다리가 없는 이무기에겐 특별한 무기가 없다. 머리를 이용해서 타격을 가하거나 전신을 이용해 물체를 죄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CG팀으로서는 건물을 산산조각낼 만큼 단단하고 위압적인 머리가 중요했다. 머리에 돌기를 심어 거칠게 보이도록 했고, 코브라처럼 공격적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이른바 ‘날개’라 불리는 늑골을 활짝 펼 수 있게 만들었다. 큰 송곳니는 물론 눈동자도 거의 하얗게 처리해 공포감을 배가시켰고, 무엇보다 관객이 징그럽다는 느낌을 직접적으로 받게 되길 원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악한 이무기가 킹코브라에서 온 것이라면, 선한 이무기는 다소 친숙한 구렁이에서 떠올렸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 고민은 입을 이용한 공격이었다. 제작 초기 입에서 독성 물질을 내뿜어 물체를 단번에 녹아내리게 하거나, 불을 내뿜어 공격하는 방법을 토론하기도 했지만 전자는 CG상의 문제가 있었고, 후자는 용의 능력을 지나치게 끌어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무기는 파충류 뱀목 뱀과의 기본기에 충실한 형태로 완성됐다. 이에 대해 심형래 감독의 대답은 간단했다. “이무기가 그렇게 재주가 많으면 굳이 용이 되려고 애쓸 필요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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