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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에 대처하는 그녀들의 자세

서른살 여성의 현실과 판타지를 포착하는 두 가지 시선, tvN <막돼먹은 영애씨>와 MBC <9회말 2아웃>

<막돼먹은 영애씨>

<9회말 2아웃>

케이블채널 tvN <막돼먹은 영애씨>의 영애(김현숙)씨와 지상파 MBC 드라마 <9회말 2아웃>의 난희(수애)씨는 30살 동갑내기다. 스무살의 TTL이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선 모호한 신비소녀에 대해 설파했다면 서른살의 영애씨와 난희씨는 비혼과 기혼, 체념과 희망의 기로에서 심란해하는 여성의 콧노래를 연주하고 있다.

10년 주기의 세대구분이 대략의 일반화에 불과하다고 소리 높여 주장하고 싶어도 그 단락에 함축된 인생의 빛과 그림자는 ‘누구라도 그러하듯이’의 보편성은 띠고 있는 모양이다. 영애씨와 난희씨도 교집합을 제법 나타낸다. 작은 디자인 회사에 다니는 영애씨나 박봉의 출판사에 다니는 난희씨는 모두 대한민국 1%에 속하는 커리어우먼이 아니다.

또 둘 다 독신이다. 주변의 잔소리가 부유하는 이들의 지리멸렬한 일상에는 여태 결혼하지 않았음, 혹은 못했음도 한 이유로 작용한다. 노처녀라 불리는 여자들의 로망에서 빠질 수 없는 연하남도 두 여인은 한명씩 꿰차고 있다. 영애씨는 낙하산을 타고 입사한, 말본새 참한 연하의 직장 후배한테 마음을 빼앗겨 화장실의 손 건조기에 겨드랑이 땀을 말려가며 달뜬 표정을 짓고 있고, 난희씨는 8살이 어린 야구선수 남자친구를 옆에 두고 ‘고’와 ‘스톱’ 사이에서 갈등 중이다. 어쨌든 둘 다 사랑과 성공을 양손에 든 근사한 ‘이립(而立)의 서른’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서른살의 영애씨와 난희씨가 어느 날 포장마차에서 별 볼 일 없는 인생을 한탄하며 혼자 소주를 자작하다 합석하게 되더라도 친구를 해먹기는 힘들어 보인다. 신춘문예에 당선돼 드레스 차림으로 상을 받는 포부를 품고 있되 창작 활동에는 전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난희씨한테 영애씨는 ‘생긴 대로 예쁘고 야무진 꿈만 꾸고 있네. 개념이나 퍼드세요’라고 속으로 구시렁거리기 십상이다. 난희씨는 난희씨대로 느끼하고 시시한 농담을 일삼는 직장 상사한테 정면으로는 맞서지 못하면서 빵 사이에 침 탁 뱉기 등으로 골탕을 먹인 다음 고소해한다는 영애씨의 직장생활 뒷말에 ‘유치하고 비겁하다’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또 연하남의 저돌적인 ‘누나 사랑’을 받고 있는 난희씨는 짝사랑에 자존심 구겨가며 허둥지둥대는 영애씨의 애정전선이 안타깝되 깊게 공감할 수는 없을 것이며, 영애씨는 30년 지기까지 슬슬 남자로 보이기 시작한 난희씨의 고민이 배부른 여유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영애씨는 매회 찾아오는 제작진의 ‘모자이크 음성변조’ 인터뷰 시간에 난희씨의 사연을 거론하며 ‘역시 예쁜 것들은 통장잔고가 400만원밖에 없다면서도 사는 품새는 럭셔리풍이더라고요’라며 외모의 자격지심을 다시 한번 드러낼 가능성도 있다.

가능하지 않은 것이 더 많아지는 서른살부터의 인생에도 살아가는 표정은 다양하게 존재할 것이다. 영애씨와 난희씨도 대한민국 99%의 누군가를 대변하는, 닮았으면서 다른 얼굴들이다. 그래도 술 한잔 마시고 싶은 또래를 택하라면 영애씨 앞에 앉고 싶다. 그가 방귀 뀌며 머리를 감는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노출해서가 아니라 발끈할 일이 수두룩한 후진 직장에서도 무거운 생수통을 직접 짊어지고 와 교체하는 씩씩함에, 낭만을 부정하다가도 ‘혹시 내게도?’라는 희망의 실오라기를 잡는 순수함을 가진 영애씨가 ‘9회말 투아웃’의 절박함과 찬스를 더 치열하게 통찰하고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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