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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살로 멱을 감는 수녀원의 지옥도

<악령들> EBS 8월11일 밤 11시

켄 러셀은 다양한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기이한 취향과 도발적인 태도로 관습을 파괴해온 감독이다. 록 뮤지컬부터 문학을 영화화한 작품까지 그의 작업은 종잡을 수 없는 형식과 서사로 보는 이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특히 그는 종교, 제도, 권력의 위선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롱하고 비판하는데, 그 방식이 매우 극단적이고 염세적이어서 그의 작품들은 줄곧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1971년작인 <악령들>은 그중에서도 유난히 충격적이다. 임신부와 비위가 약한 자들은 반드시 피해갈지어다.

17세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악령들>은 수녀원을 중심으로 성직자들의 탐욕과 부패의 곪아터진 흔적을 끝까지 파헤치는 작품이다. 배경은 루이 13세 시대의 프랑스, 성직자들은 방탕한 생활에 빠지고 사람들은 빈곤과 고문, 병에 시달리며 도시는 퇴폐와 죽음의 공기로 가득 찬다. 리슐리외 추기경은 도시를 손아귀에 넣기 위해 호색한이자 도시의 권력자인 그랑디에 신부를 쫓아내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그랑디에 신부에게 성적으로 집착하는 잔느 수녀를 이용하기로 한다. 뒤틀린 성적 욕망을 억압하며 신음하던 수녀원은 영화가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점차 광기와 폭력이 난무하는 악의 성전이 되어간다.

영화는 한마디로 끔찍하다. 고문당하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혀가 밖으로 튀어나오고 형체를 알 수 없게 일그러진 몸에서는 피가 흐른다. 수녀들은 은밀한 공간에서 사도 마조히스트가 되고 구덩이에 쌓여가는 시체들은 썩어가는 고깃덩어리처럼 보인다. 파격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그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비교적 간단하다. ‘신성한’ 종교계의 무시무시한 위선, 인간 내면의 걷잡을 수 없는 광기와 잔인한 욕망. 이렇게만 본다면, <악령들>의 주제는 그다지 새롭지 않지만, 적당한 수준에서 카메라를 돌리지 않고 끝까지 상황과 인물들을 노려보는 방식 덕에 우리는 지옥을 체험하게 된다. 인물들은 헤어초크나 파졸리니의 광인들보다 더욱 잔혹한 수준이며, 여기저기 널브러진 훼손된 신체와 고통의 울부짖음은 당장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참고로, 이 영화에서 데릭 저먼의 냄새를 맡았다면, 제대로 본 것이다. 그는 이 영화의 미술감독으로 참여해서 살 냄새 가득한 지옥을 창조하는 데 한몫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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