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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적 논객의 말, 문학적 언론인의 말

<말들의 풍경> <감염된 언어> 고종석 지음/ 개마고원 펴냄

신문 이름 ‘한겨레’는 시대착오적이다. 발음하기 어렵고 제대로 쓰기 힘들며 글의 맵시까지 어정쩡하다. 영어로 번역하면 ‘one-nation’ 또는 ‘one-ehtnic’쯤 될 터인데, 파시스트 매체에나 어울릴 이름이다. 인간, 시민, 인류, 생명 따위가 아니라 ‘겨레’에 주목한 그 기의(記意)는 정치적으로도 올바르지 않다. 이 신문사에서 ‘씨네21’이라는 외국어 제호의 자매지가 탄생한 것은 그래서 기적에 가깝다. <한겨레>의 ‘궂긴 소식’(부음란)과 <씨네21>의 ‘컬처잼’(바로 이 지면)의 공존은 한겨레 사옥에서 일어나고 있는 ‘말들의 풍경’이다. 보수주의 언어와 대당하려는 <한겨레>의 말과 집단주의 언어와 긴장하려는 <씨네21>의 말은 어쩌면 서로 상극이다.

심지어 같은 신문사 안에서도 말과 말을 싸움 붙이고, 말을 말에서 해방시키며, 말로 말을 죽이는 일이 그치지 않는다. 세상은, 삶은 결국 ‘말판’이다. 고종석의 <말들의 풍경> <감염된 언어>(이상 개마고원 펴냄)는 그렇게 내뱉어진 말에 대한 말이다.

<말들의 풍경> 밑바닥에는 “언어의 비틀림을 응시하는 일은 현실의 비틀림을 살피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흐르고 있다. 지금껏 그가 써온 책이 스무권에 육박하는데, 언어(특히 한국어)의 비틀림을 응시하며 개인, 집단, 민족, 국가, 세계를 사유하는 큰 흐름은 여전하다. 50개의 짧은 글로 이뤄진 이번 책에서 사유의 종횡무진은 더 긴박해졌다. 덕분에 독자는 쉽게 읽으면서 넓게 생각할 기회를 얻었다.

한국어를 손상시키고 있는 남북의 헌법 전문을 비교하고, ‘-빠’와 ‘-까’를 통해 한국어의 공격성을 들춰내고, 헌사와 유언을 빌려 삶의 굴곡진 매듭을 돌아보는 일 따위는 고종석이 아니었으면 미처 가닿지 못했을 지평이다. 언어를 집단에 가두지 않고, “개인어”로 무수히 미분하여 감지하는 자유주의자의 더듬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말들의 풍경>은 ‘고종석’을 읽는 텍스트로도 흥미롭다. 여러 문학가·언론인·학자들의 글을 평하는데, 곳곳에서 글쓴이의 질투와 욕망이 추하지 않게 드러난다. 예컨대 “그의 소설 문장은 저널리즘의 기율에 묶여 어연번듯했고, 그의 기사 문장은 문학의 매혹에 끌려 바드름했다”(최일남)거나, “동시대 비평가들보다 글을 훨씬 많이 썼지만, 진짜 잊어서는 안 될 점은 그가 동시대 비평가들보다 글을 훨씬 많이 읽었다는 사실이다”(김현)라고 쓸 때, 고종석은 자신의 현재에 대해, 적어도 자신의 욕망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언론, 문학,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려는 그의 열망은 <감염된 언어>에서 더욱 표난다. 99년에 나왔던 책을 다듬어 이번에 다시 냈는데, “나는 정확하고 아름다운 한국어로 글을 쓰고 싶었다”는 문장과 “아름다움은 섞임과 스밈 속에, 불순함 속에 있다”는 문장을 이어붙이면 고종석을 얼추 설명할 수 있다. <감염된 언어>는 학자적 능력을 갖춘 논객의 말이고, <말들의 풍경>은 문학적 자질을 갖춘 언론인의 말이다. <말들의 풍경>에서 고종석은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가지를 꼽았다. ‘가시내’, ‘저절로’, ‘짠하다’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