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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첫인사
주성철 2007-08-17

어쩌다보니 세 번째 영화잡지다. <키노>에서 구르고 <필름2.0>에서 빌어먹다 이제 <씨네21>에서도 도적질하려고 늘 하던 대로 복지부동, 안빈낙도, 영웅본색의 삶을 실현할 생각이다. 철새처럼 옮겨 다녔다고들 생각하겠지만 늘 ‘가늘고 길게’ 평생직장을 꿈꿔왔던 나로서는, 첫 번째 직장은 망해서 어쩔 수 없이 옮겼고 두 번째 직장은 선배와 후배 사이의 든든한 다리가 돼야 한다는 자발적 미션에 실패해 나오게 됐다. 그래도 매번 편집장과의 첫 면접에서 ‘2년은 있어달라’고 했는데 각각 4년씩 있었으니 수익률 50%의 펀드처럼 나름 기여를 하고 나왔다고 혼자 생각하고 있다. 돌이켜보건대 재빠른 마감 하나 열 특종 안 부럽다는 생각으로 속도를 냈고, 모두가 ‘예’라고 대답할 때 제일 먼저 ‘예’라고 대답했고, 언제나 불의를 보면 잘 참았고, 7월 급여는 원래 8월에 나오는 것으로 알며 살아왔던 날들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월간지에 있건 주간지에 있건 언제나 <씨네21>의 ‘경쟁지’라고 하는 곳에서 일했기에 출근한 지 2주가 지났어도 아직 변화의 실감은 들지 않는다. 살고 있는 마포구청역에서 6호선을 타고 가다 나도 모르게 이전 사무실이 있던 삼성역으로 가기 위해(<씨네21>은 공덕역) 합정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탈 때도 있었고(그래서 2호선을 그냥 한 바퀴 돌았고), 운전을 해서 갈 때면 아무 생각없이 강변북로로 진입해 질주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며 기름값을 아까워했다.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몸으로 기억된 것은 지워지기 힘든 것 같다. 소식을 들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한 친구는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들이 광복절특사 받고 출소하는 느낌이라고 했고, 또 다른 친구는 이게 웬 조재진이 해트트릭하는 소리냐고 믿기 힘들다고 했고, 또또 다른 친구는 커피프린스 1호점에 새 메뉴로 식혜가 추가되는 꼴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아직은 한참 어색하다.

문득 많은 얼굴들이 떠오른다. 그 긴 시간 동안 5명의 편집장을 만났고 기자 15명의 환송회를 해줬고 12명의 환영회를 열어줬다. 나가서 잘된 사람도 많고 못 된 사람은 더 많았다. 모두의 눈물 속에 안타깝게 회사를 떠난 사람도 있었고, 모두가 나가길 바라는데 안 나가서 더 안타깝게 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감이 빠를수록 겸손해지는 인간이 있는 반면 마감이 늦을수록 거만해지는 인간도 있었다. 지나고 보니 조직적으로는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이 더 많은 날들이었지만 그래도 나쁜 동료보다는 좋은 동료가 더 많았기에 행복했다. 강혜연, 장훈 선배가 감독의 꿈을 이뤄나갈 때 기뻤고 정성일 편집장님 역시 이제 ‘감독’ 호칭으로 부르게 되리라 입을 연습하고 있다. 세계 각지로 뻗어나가고 계신 나호원, 류상욱, 김준양 필자님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뿌듯하고 교수가 되시면서 더 잠이 늘어난 ‘라이온 킹’ 김영진 선배나, 부득이하게 한동안 뵙지 못했던 이지훈 선배의 강력한 ‘빼갈’ 독설도 그리워진다. 그렇게 8년 동안 정말 고마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다만 그들이 나에 대해서도 좋은 기억을 더 많이 가지고 있길 바랄 뿐이다. 왠지 첫인사부터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하는 마음으로 별 얘기들을 주절댔다. 그러니 앞으로, 좀 도와주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