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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는 한다 거짓말은 못한다
장미 사진 오계옥 2007-08-17

<내 생애 최악의 남자>의 염정아

염정아는 즉물적인 사람이다. 손가락 끝에 와닿는 바로 그 순간의 감촉만이 그에게 소스라치게 생생한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극한의 고통이나 공포, 행복, 슬픔이라 할지라도 허공을 맴도는 추상적인 것이라면 그의 소유가 될 수 없다. 자칫 까탈스러울 듯한 성정에도 그를 인터뷰한 많은 기사들이 ‘털털하다’는 표현을 내세웠듯, 한편으로 염정아는 무던히 솔직하고 무심한 사람이기도 하다. 인터뷰 중 아무렇지 않게 음식을 우물거리며 말을 내뱉고 웬만한 질문에는 시원시원하게 단답형으로 답하는 한편 의외로 코믹한 면도 많았다. 그러니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는가. 금방이라도 적대감을 표시할 것 같은 날카로운 신경에, “여동생 둘, 남동생 하나”를 거느린 큰언니다운 오지랖이라니. 탁재훈과 함께 출연한 <내 생애 최악의 남자>는 아마 후자의 염정아에 조금 더 집중하는 작품일 것이다.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남녀가 하룻밤, 아니 두밤의 불장난을 계기로 웨딩마치를 올리지만 결혼한 지 하루 만에 이상형을 만난다는 이 로맨틱코미디에서 그는 음주에는 탁월하지만 살림에는 최악인 주연을 연기했다. 성격상으론 비슷한 면이 다분한 캐릭터인데다 지난해 12월 그 역시 1년6개월의 연애를 거쳐 마침내 결혼식을 올린 까닭에 할 말도, 들어야 할 말도 많을 듯했지만 어쩌겠나. 신혼의 단꿈에 푹 빠진 그에게 극중의 카오스 상황은 어쩌면 전혀 해독 불가능한 이야기인 것을. 대신 임신 5개월의 염정아는 예전보다 한결 부드럽고 빛나는 미소를 입가에 내걸곤 했다. 데뷔작인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부터 <째즈빠 히로시마> <텔미썸딩>, 드라마 <태조 왕건>과 <사랑한다 말해줘> <장화, 홍련> <여선생 vs 여제자> <범죄의 재구성> <소년 천국에 가다> <오래된 정원>까지. 매번 상황에 집중하며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추구했던 그의 머릿속은 잠시 연기가 아닌 것으로 가득 차 있겠지만 그렇다고 장장 17년지기 연기를 포기할 만큼 “의리”없는 그도 아닐 터. 굵은 빗줄기가 쏟아진 8월8일, <내 생애 최악의 남자>를 끝으로 육아 휴직을 가질 그를 배웅했다.

-<이장과 군수> 카메오 출연을 합치면 <내 생애 최악의 남자>는 <여선생 vs 여제자>에 이어 세 번째로 하는 코미디영화다. =얼마 전에 <이장과 군수> DVD 봤더니 거기도 잘렸더구먼. 뭐야. 장규성 감독님한테 계속 전화도 안 했어. (웃음)

-어떻게 참여했는지 궁금하다. =아, 우리 영화? <내 생애 최악의 남자> 전작이 <오래된 정원>이었잖나. 그걸 찍으면서 그 슬픈 멜로 감성에 만날 젖어살다보니 좀 우울한 것도 있고. 밝은 걸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 시나리오를 보게 됐다. 어, 너무 하고 싶더라고.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는지. =일단 로맨틱코미디를 너무 하고 싶었고. 그전에 발랄한 역할들을 했다 해도 로맨틱코미디라는 장르를 한 게 아니었고. 멕 라이언, 샌드라 불럭, 줄리아 로버츠가 했던 로맨틱코미디를 평상시에 즐겨보거든. 우리나라에는 잘 만든 로맨틱코미디가 없다는 생각을 늘 했다. 요건 잘 만들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했는데 결과는 몰라. (웃음)

-상대역으로 출연한 탁재훈은 애드리브에 강할 것 같다. 아무래도 주고받은 게 많았을 텐데. =탁재훈씨가 애드리브를 많이 준비해왔다. 나는 뭘 하면 거기 딱 맞춰서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내것까지 탁재훈씨가 짜오고. (웃음) 많이 의지했다.

-작업은 즐길 만했나. =현장에서 내것에 대해 욕심내는 스타일은 아니다. 맞춰가는 걸 좋아하고.

-안 그래도 임상수 감독이 지진희와 염정아, 두 배우가…. =(말을 가로채며) 너무 시키는 대로 말 잘 듣는 배우. (웃음) 내것에 자신도 없지만 나는 그 사람들의 말이 더 맞는 것 같더라. 내가 그 영화의 색깔에 맞춰가야지 좀 달라 보이고. 그런 걸 즐긴다.

-안 그럴 것 같은데. =그렇지? 고집 세고 내것 막 주장하고 그럴 것 같지? 귀도 얇고. (웃음) 시키는 대로 다 한다.

-<오래된 정원>에서 같이 한 지진희와는 <H>에서 만난 경험이 있어서인지 친한 사이인 것 같더라. 탁재훈과는 어땠나. =탁재훈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인간적으로도 좋은 사람이더라고. 처음에 수줍음을 좀 많이 타서. 어, 정말. 깜짝 놀랐어. 웃음을 기대하고 나갔는데 첫 미팅할 때 얘기도 안 하고 너무 수줍어하더라. 극존칭 막 쓰고.

-탁재훈이 연기한 캐릭터도 약간 소심하더라. =똑같더라니까. 진짜 캐스팅 제대로다 그랬다.

-‘털털하다’는 평이 많던데 본인도 주연이라는 캐릭터와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 =그런 건 비슷하다. 설정이 많이 다른 거지. 이 여자는 지저분하다. 청소도, 살림도 잘 안 하고. 난 아니거든. (웃음) 매일 술 마시고. 소주 병나발 부는 여자. 말도 막 하고. 예쁘고 늘씬한 것 외에는 비슷한 면이 없어. (웃음)

-이번 작품 연출한 손현희 감독은 여자감독인데. =말도 잘 통하고. 근데 우리 감독님이 뭐랄까, 너무 착해. 순진해. 시나리오를 보면 나름 욕이라고 쓴 것들이 욕이 아니다. 그냥 최고가 지랄하네, 이런 정도야. 실제로 싸움하고 더한 말도 많이 할 텐데. 탁재훈씨가 욕에 또 일가견이 있어서 현장에서 많이 바꾸고. 감독님이 좀 소녀 같다. 로맨틱코미디 좋아하는 소녀.

-전작을 임상수 감독과 같이 해서 여러모로 많이 달랐겠다. =현장 분위기가 다르다. 여기는 모여서 의논하고 떠들면서 이건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책 읽는 시늉을 하며) 여기는 감독님 주신 것 보면서 이거 이렇게 하면 돼요? (웃음)

-<여선생 vs 여제자> 때도 그랬지만 표정이나 몸을 이용하는 폭이 넓은 것 같더라. =평상시에 몸을 많이 쓴다. 오바해서 웃거나. 장난치고 할 때 몸을 많이 쓰고. 슬랩스틱이 좀 된다.

-그리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극중 춤추는 장면도 나오던데. 특히 봉잡고 추는 춤은 민망하겠더라. =처음에는 그랬지만 추다보니. 밤에 찍기 시작했는데 새벽에 끝났다. 탁재훈씨가 직접 연출을 하고, 아이디어도 냈다. 우리 감독님이 봉춤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그냥 맡기시더라. 안무도 탁재훈씨가 했다. 시범을 보여주면 내가 그대로 추고. 아유, 막 집요하게. 자기가 원하는 컷 나올 때까지 계속하고.

-그런 일이야 발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극중 상황이 닥친다면, 예컨대 갓 결혼했는데 이상형을 만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모르겠다. 멋지다고 누군가를 좋아하나? 멋지다는 이유로 배우자를 배신할 수는 없다.

-극중 설정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동감이 돼야 하는데 나 같으면….

-그렇다면 영화에서 신혼부부가 싸우는 장면도 공감할 수 없었겠다. =극중 인물들이 나랑 다르니까. 철부지다. 좀 멋있는 사람들 나타났다고 홱까닥 해가지고 집에 가서 싸우고. 그게 그렇게 가볍게 쉽게 할 만한 거면 그렇잖나. 결혼까지 한 사람들이.

-인터뷰할 때마다 전작의 영향을 받는 것 같았다. <장화, 홍련> 찍고 나선 조금 날카로워 보였고, <여선생 vs 여제자> 때는 조금 푼수 같았던 반면, <오래된 정원> 때는 당찬 이미지더라. =지금 이야기하니까 알겠는데 그런 것 같다. 인정한다. 평상시에도 내게 다양한 면이 있다는 것. 극중 모습들이 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있으니까 그게 표현이 가능했던 것 같다. 없는 건 못한다.

-<오래된 정원>이 임상수 감독의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벗는 장면이 없어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노출이 많은 영화는 되도록 피하고 싶은지. =그렇다. 자신도 없고. 용기가 없어.

-그래도 섹시한 이미지의 캐릭터들을 줄곧 연기했잖나. =그런 걸 좋아한다. 분위기만 살짝 비추는 것. 다 보여주는 건 재미없다.

-어떤 이들은 윤희가 대단한 여자라고 말하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선택이 조금 의아하기도 했다. =나도 윤희 같았을 것 같다. 극중 윤희가 “나만이라도 그 사람에 대해서 의리를 좀 지키고 싶다”라고 말하는데 그게 딱 맞는 것 같다. 남녀 사이에 필요한 의리.

-<오래된 정원>에서 윤희와 현우가 헤어지는 날도 오늘처럼 비가 왔다. 날씨가 꽤 추웠다고 들었는데 고생 많이 했을 것 같다. =엄청 추웠다. <오래된 정원>은 다른 고생은 거의 안 했고. 갈뫼 거기가 엄청 추웠다. 봄인데도.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자) 날씨가 왜 이래. 장마, 너무 싫어.

-비 안 좋아하나보다. =아니, 무섭다. 천장 샐까봐. (웃음)

-<포지티프> 기자 아드리앙 공보는 <씨네21> ‘외신기자클럽’의 ‘파괴적인 대리인’이라는 기사에서 <오래된 정원> 주인공들의 이미지가 너무 잘 관리돼서, 예컨대 윤희에게 목탄이나 물감에 더럽혀진 흔적, 현우에겐 오래도록 감옥에 갇혀 고생한 흔적이 없어서 영화의 완성도에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혹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임상수 감독님의 의도다. 의상도 너무 세련되지 않았나. 그것도 감독님의 의도다. 깊숙이는 모르지만. 그분 말이 다 맞는 건 아니잖나. 누구나 선택할 수 있으니까.

-기분 나쁘지는 않은지. =왜 이걸 이렇게 봤지라는 생각은 하지만 뭐, 남들이 다 좋다는 영화, 나도 싫다고 할 때가 있으니까. 별로 관심이 많지 않다.

-그럼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아주 직접적인 것. 음, 내 가족. 예쁜 조카. 그런 데 집중한다. 그외에는 별로.

-배우는 원래 가상의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 아닌가. =다 대입이 된다. 그게 더 깊다. 관심있는 건 굉장히 집중한다니까. (웃음)

-<장화, 홍련>이 연기 생활에서 터닝포인트 같은 작품이었던 것 같은데 그전까지 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 =중학교 때부터 연기자가 꿈이었다. 재미있어서 했다. 남들이 인정하든, 안 하든 별로 관심은 없었고. 관심을 받고 나니까 더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생기더라.

-연기자의 꿈을 꾸게 된 계기가 있었나. =학교에 연극반이 있었는데 거기 들어가려고 오디션을 봤다. 음악실이었나. 칠판에 대사 세개를 써놨다. 하고 싶은 것을 골라서 연기하는 형식이었다. 뇌종양에 걸린 어린 소녀의 독백을 골랐는데 대사하면서 감정이 올라오는 거다. 막 쇼를 했다.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연기자가 돼야겠다 생각하고. 그전까지는 시인이 되겠다 그랬거든.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흔들린 적은 없었나. =없다. 입시 공부할 때도 특기로 현대무용을 공부했다.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예체능반으로 빠져서. 다들 그러려니 했다. 애가 예쁘고 끼도 많으니까. (웃음)

-출연작 중에서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뭔가. =<여선생 vs 여제자>. 그렇게 귀엽고 재밌단다.

-결혼했지만 연기는 꾸준히 할 생각인지. =지금으로선 그렇다.

-결혼하고 나서 많이 달라진 것 같나.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적인 것?

-동영상팀의 기자도 <오래된 정원> 때와 달리 얼굴에서 광채가 난다고 하던데. =살쪄서 그렇다. (웃음) 인상도 변하는 것 같다. 아줌마가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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