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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진정한 평론가란?

평론가가 공격받는 시대, 영화를 재발견하게 하는 평론가 제임스 하비를 생각하다

<50년대의 영화사랑>

요즘 영화평론가의 역할이 일각에서 공격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인터넷에서는 맹렬한 질문들이 오가고 있다. 즉, 평론가들이 무슨 도움되는 역할을 하긴 하는 건지, 아니면 그저 단체로 끌어모아서 버스 아래 던져버려야 하는 건지? 영화평론가들의 수많은 죄악을 보면 어려운 결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버스 바퀴를 피하게 해야겠다 싶은 평론가 한명을 위해 논쟁을 벌이고 싶다. 뉴욕에 사는 극작가이자 수필가이며 평론가인 제임스 하비는 고전 미국영화에 대한 두꺼운 두권의 책- 1998년에 출판된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 루비치에서 스터지스까지>와 2001년에 출판된 <50년대의 영화사랑>- 을 펴냈다. 아직 1950년대뿐만 아니라 4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까지 아우르고 있는 그의 두 번째 책만 읽었다.

영화의 장단점에 대한 개인적 평가를 넘어서 평론가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본 최고의 답변은 영국시인 W. H. 오든의 것인데, 그의 목록이 워낙 사려 깊고 흥미롭기에 여기에 전체를 다 인용하고자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평론가는] 내게 다음에 나오는 일 중 하나나 그 이상의 것을 제공할 수 있다. (1) 여태까지 알지 못했던 작가나 작품을 소개하는 것. (2) 그 작품들을 충분히 주의 깊게 읽지 않아서 작가나 작품을 평가절하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 (3) 지식이 지금도 앞으로도 부족하여 스스로는 결코 알아내지 못했을 다른 시대와 문화의 작품 사이의 관계들을 보여주는 것. (4)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해석을 해주는 것. (5) 예술적 창작의 과정을 조명해주는 것. (6) 삶과 과학 사이의 관계, 또 경제학, 윤리학, 종교 등등과의 관계를 조명해주는 것.”(<염색공의 손> 중에서)

마지막 몇쪽에 이를 때쯤 되면 <50년대의 영화사랑>은 이런 ‘용도’를 모두 만족시키고 있다. 본인은 하비를 통해 니콜라스 레이의 매혹적인 초기 장편 <고독한 영혼>을 발견했고, 제임스 딘과 마릴린 먼로의 연기의 강점에 대해 더 잘 감상할 수 있게 됐으며, 1940년대 필름 누아르의 팜므파탈이 1950년대에는 어떻게 해서 더 어려지고 더 금발이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슨 웰스나 더글러스 서크와 같은 그 시대의 영화를 만들었던 주요한 인물들의 작업방식을 더 세밀하게 알게 됐다.

그러나 오든의 목록에 일곱 번째 항목을 덧붙이고 싶다. 왜냐하면 평론가의 글을 가치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내용만이 아니라, 그 내용을 어떻게 말하느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비의 문체는 명료하고, 허세 부리지 않으며 음악적이다. 그의 정열은 큰소리로 내는 거센 비난의 도배로 나타나거나 저돌적인 칭찬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타오르는 강렬함과 세부적인 것들에 대한 갈망 속에서 나타난다. 특히나 배우들과 그들의 예술적 작업에 대해 저술하는 데 뛰어나다. 본인은 개인적으로 영화비평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배우 연기에 대해 효과적으로 쓰는 것이라 그런 글이 잘 쓰여진 하비의 예를 보면서 놀랍기도 했고, 영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더 나아가보자. 러시아와 그리스의 정교회에서 화가들은 종교적인 장면을 묘사하는 성상들을 창조했다. 그것들은 추상적인 신앙을 물리적, 감각적으로 보완하는 것으로 상징주의나 서사가 아니라 순수한 미학적인 힘을 통해 효과를 발휘한 것들이었다. 숭배자들은 성상의 미를 바라보면서 종교를 다른 방식으로 체험하곤 했다. 정교회 내에는 성상 그 자체에 신성의 섬광이 들어 있다는 믿음이 있다.

예술의 영역으로 다시 돌아오면, 최고의 평론의 경우 이런 옛적 러시아 성상들과 유사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생각한다. 종종 정말로 좋은 평론가들의 말이 어떤 영화들과 관련하여 머릿속에 울리고 있는 걸 깨달을 때가 있다. 그들 말의 의미보다는 문구의 아름다움 때문에 마음속 더 깊은 곳에서 메아리치는 것이다. 이러한 말들은 영화에 대한 정보를 더 줘서가 아니라, 평론가 자신의 예술로 그 작품을 보완함으로써 내가 영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경험하게 해준다.

내가 아는 한 제임스 하비의 책은 한국어로 번역된 게 없다. 그의 저서를 발견하는 일 자체가 즐거움인 만큼 언젠가는 야심찬 번역가가 그 임무를 맡아주길 바란다.

번역 조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