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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떠날 수 없는 이유

<여자가 사랑할 때> EBS 8월26일 오후 2시20분

두번의 이혼을 경험하고 여섯명의 아이를 둔 조(앤 밴크로프트)는 시나리오작가 제이크(피터 핀치)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망설임없이 여섯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가난한 작가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아이들은 사사건건 부부 둘만의 시간을 방해하지만, 조와 제이크는 그런 소란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조는 자신이 제이크의 전부가 아님을 느끼게 된다. 제이크의 미세한 변화조차 받아들일 수 없는 조는 점점 신경쇠약에 빠져들고 그녀의 삶에 드리운 먹구름은 좀체 걷힐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잭 클레이튼이 연출하고 해럴드 핀터가 각색에 참여한 <여자가 사랑할 때>는 충족되지 않는 사랑에 대한 욕망 때문에 천천히 메말라가는 한 여인의 내면을 따라간다. 그녀의 극심한 우울증은 남편의 외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시작된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결핍과 불안은 오히려 둘의 결혼생활을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게 지속시켜주는 힘처럼 느껴진다. 여자는 남편에 대한 의심과 불만족으로 괴로워하면서도 그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으며, 남자는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면서도 아내를 버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들의 관계가 한쪽의 일방적인 애정공세처럼 보이거나, 결혼생활이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 혹은 서로에 대한 의무감 때문에 지속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 사랑은, 이 가족은, 이 삶은 무엇일까? 여자는 남자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남자는 여자의 집착에 지쳐간다. 이들은 만나려고 하면 할수록 어긋나고 결국 각자의 고통은 각자의 시간 안에서 견딜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서로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 사랑은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비로소 희미하게 대답한다. 서로의 마음에 입힌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남자는 여자가 홀로 하루를 지새운 별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타나 아무렇지도 않게 부산을 떤다. 여자는 하룻밤 사이에 십년이나 늙은 것처럼 나약한 미소로 남자를 쳐다본다. 둘 사이의 침묵, 세월의 무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서로를 떠날 수 없는 절실한 이유. 감히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둘 사이에는 그런 것이 흐른다. 마음을 울리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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