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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려면 제대로 속이든가

몰카 같은 충격 주기엔 너무 어설픈 케이블TV 리얼리티 프로그램들

코미디TV <조민기의 데이지>

올 연말 ‘2007년 10대 뉴스’ 목록에 들 확률이 높은 요즘의 거짓학력 들통 혹은 고백 사태는 참 오랫동안 신통방통하게 오류가 봉인돼왔다는 감탄을 주고 있지만 케이블 채널에 범람하는 ‘진짜인 체 구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그 거짓말을 잘도 들키고 있다.

tvN <독고영재의 현장르포 스캔들>, 코미디TV <조민기의 데미지> 등 페이크와 다큐라는 극과 극 성분을 결합한 이 오묘한 사례들은 저렴한 제작비로 화제성과 1% 이상의 시청률을 보장해주고 있는 케이블 채널의 효자 프로그램들. 한편 ‘가짜인 주제에 진짜처럼 행세한다’는 시청자 기만 혐의로 지겹도록 논란의 도마에 올라 얻어맞고 있는 단골 샌드백 품목이기도 하다. 그때마다 이들은 거짓학력 구설에 휘말린 유명인들이 그러하듯 ‘속인 적 없다’고 억울해한다. 스스로 진짜라고 말한 바 없으며, 방송을 시작하기 전 재연한 것임을 알리는가 하면 방송 중에도 밑으로 깔리는 깨알 같은 자막으로 성실 고지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시청자들은 깜박 속아서 불쾌하기보다는 허술한 거짓말 때문에 실소의 밥풀을 뿜어내곤 한다. 치졸한 배신과 양다리가 횡행하는 요지경 세상을 들추는 이들 프로그램은 판타지없는 현실의 속살로 관음의 재미와 찜찜함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 이를 위해 동원하는 주된 장치는 모자이크와 음성변조. 간혹 몸통만 존재하는 귀신처럼 보이는 얼굴 지운 의뢰인 및 관계자는 몰래카메라의 관찰, 또는 취재 대상이 되거나 변조된 음성으로 개인사를 폭로하고 호소하며 시청자의 공감을 구한다. 후발 주자인 <조민기의 데미지>는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을 스튜디오로 불러내 <제리 스프링거 쇼>마냥 대면도 시키고 언쟁도 유도한다. 돌발사태를 대비해 경호요원들이 귀에 꼬불꼬불 이어폰도 낀 채 의뢰인 옆에 상시 대기하고 있다. 심지어 제작진 한명이 카메라 앞으로 불쑥 튀어나와 사회자 조민기한테 쪽지를 건네며 놀라운 진실이 긴급 입수됐다는 극전 반전의 순간도 제공한다.

그러나 어떤 ‘트릭’을 구사해도 그것에 포착된 등장인물들의 말과 몸짓은 재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아무리 주먹으로 제 가슴을 팡팡 치며 기막힌 심정을 절절히 표현해도 일상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사어’(死語)의 구태의연한 대사를 구사하는 ‘얼굴없는 연기자’들은 창의력과 몰입이 필요한 극연기보다 자연스럽게 현실을 복제하는 재연 연기가 더 어려울 수 있음을 증명한다. 방송 몇분 만에 ‘쇼(Show) 중’임을 티내고 마는 이들 프로그램은 얼마나 뻔뻔하게 거짓말을 진짜처럼 요리하는가를 팔짱 낀 채 관찰하는 데 더 집중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유사하게 미화되지 않은 현실의 사연을 다루지만 투박하고 다소 유치한 드라마로 ‘재구성’했음을 오히려 명백하게 드러내는 KBS2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이 이들의 ‘트루 라이즈’보다 더 리얼하게 다가오는 것은 시청자의 눈이 곧이곧대로 수긍하는 일차원적인 반응체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픽션에 비해 실화가 더 구구절절하고 재미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면 기꺼이 속아줄 테니 그것에 밀착하는 방법론에 좀더 치열하게 머리를 굴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얄팍한 거짓말 쇼는 현실에서도 이미 충분히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