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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의 날개로 희망을 날다
2001-10-26

디지털에 `미쳐 날뛰` 1년, 그 고통과 흥분의 여정

“그녀는 내가 끝내려고 한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나비>는 기억상실을 원하는 여인과 생명을 걸고 출산을 감행하려는 어린 처녀, 그리고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헤매는 남자의 동행기다. 서로 다른 결핍과 소망을 지녔지만, 세사람은 결국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는다. <나비>는 <이방인>으로 데뷔한 문승욱 감독의 두번째 작품이며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청동표범상과 젊은 비평가상을 받은 수작이다. 실패한 데뷔작의 상처를 딛고 <나비>의 주인공들처럼 멀고 추운 길을 돌아 힘겹게 두번째 작품을 만들어내기까지, 문 감독은 쓰라림과 외로움, 때로 섬광처럼 찾아든 기쁨의 기억들을 제작기에 담았다. 편집자

근 1년여 동안 난 어떤 한 분위기 속에 갇혀 있었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 폭우, 폭우에 쓸려내려가는 자재도구들, 사람들의 아우성, 누런 흙탕물, 쉼없이 돌아가는 물펌프의 기계음.

1999년 서울의 여름은 카뮈의 <페스트>라는 소설 속에 나오는 가상의 도시처럼 온통 어둡고, 사라져가는 도시처럼 희미해졌다.

난 이때 서울이 거대한 페스트 질병으로 변해가는 어마어마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할리우드에서 흔히 만들어진 재난영화의 모습과 인간들의 실존과 구원이 명멸하는 거대한 이야기 속에 갇혀 있었다. 만들어지기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거란 끊임없는 생각 속에서 이야기는 점점 커져만 갔다.

이야기의 규모가 절정에 이르러 통제가 불가능한 시간이 다가왔다. 수천명의 엑스트라들이 공황으로 탈출하기 위해 경찰들과 사투를 벌이고 도시는 암흑으로 빠져들고… 쓰고도 허탈하고 한심한 장면의 연속….

순간 이 이야기를 처음 생각했을 때의 의도를 떠올려보았다. 기억을 앗아가는 서울….

10년도 채 못 버틸 것 같은 가건물들이 만들어낸 도시….

끊임없이 내리는 폭우로 쓸려내려가는 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추억들…. 서울, 한국, 아시아에서 산다는 것이 어쩌면 망각이라는 기억상실증에 걸려 밤길을 이리저리 헤매는 불안한 삶이 아닐까란 생각. 바로 이런 이미지들에서 출발하지 않았던가.

페스트란 곧 망각의 바이러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이란 도시가 이 망각의 바이러스에 걸려 있다고 생각하니까 주변의 많은 혼란들이 설명되었다. 왜 그토록 사람들이 하루살이 인생처럼 순간과 현재의 자극만을 위해 광분하는지.

그리고 이 망각의 바이러스를 찾아오는 사람들과 이로 돈을 버는 사람들간의 얽힌 로드무비를 생각해냈다. 이야기는 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여행 이야기가 돼야 했다. 문제는 어떻게 찍을 것인가?

디지털 강박에 배우와 스탭을 노예부리듯

다큐멘터리적인 이미지들…, 망각의 바이러스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사실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방법….

폴란드에서 본 라스 폰 트리에의 <백치>에서 해답을 얻었다. 개인적으로 다큐멘터리 작업에 커다란 열정이 있었던지라 이 허구적인 다큐멘터리영화 <백치>가 몹시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다큐멘터리를 찍을 땐 주인공의 은밀한 내면을 드러내기가 여간 어렵지가 않다. 자칫 잘못하면 사생활 침해로 고소당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극영화는 배우들과 계약을 한다. 배우들의 모든 내면을 쏟아부어도 된다는 계약 말이다.

감독이 어떤 방법으로 그 내면을 거침없이 화면에 끄집어내는가만 문제가 되었다. 작고 작동이 간편하며 35mm 카메라가 요구하는 장치들이 필요없어 많은 공간을 촬영할 수 있다는 디지털이 그 방법이 된 것이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당장이라도 인간의 내면을 샅샅이 해부하는 거대하고 장엄한(?) 인간 극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훌륭한 배우들, 자신의 내면을 송두리째 스크린에 쏟아부어도 좋다는 노예계약(?)을 한 배우들과 1년여간 넘게 나와 함께 작업을 진행해온 스탭들. 그리고 너무도 힘들게 제작비를 준비한 프로듀서가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촬영.

촬영이 20여일간 지속되었을 때 촬영 전에 가졌던 많은 환상들이 깨어져가는 순간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카메라들. 손바닥만한 작은 카메라는 마치 감시 카메라처럼 배우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찍고 있었고 현장에서 영화를 찍는 시간과 다시 현실로 돌아와 조명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는 조용하고 현실적인 시간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테이프 바꾸는 몇초를 제외하고 카메라는 계속 움직였고 배우들은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 그 자체가 되어 살아가야 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모든 시간을 극중 인물처럼 고통스럽고 슬픈 강박관념을 지닌 뒤틀린 인물로 살아가야 했다.

그 순간 배우들은 자신들이 한 노예계약이 그 어느 악독한 노예계약보다 더 끔찍한 계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스탭들 역시 이런 상황 때문에 마음놓고 쉴 수 있는 몇분의 여유도 가질 수 없었다.

감독은 어느 상황 어느 장소에서도 촬영이 가능하다는 디지털 강박 관념 환자가 되어 배우와 스탭을 노예부리듯 채찍을 휘두르고 있었다.

디지털엔 불가능이 없어 그냥 찍으면 되잖아!

“시간이 없다구!”

“저것봐! 이러는 사이에 배우들 감정이 없어지잖아!”

보통 필름으로 찍는 영화에서 배우들이 실제로 연기하는 시간은 몇 시간 되지 않는다. 많은 시간을 기계적 장치(조명, 달리, 기타…)에 소요하기 때문. 하지만 디지털이라 배우들은 12∼13시간 내내 카메라가 망가지지 않는 한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고 스탭들은 12∼13시간 내내 극중 인물로 살아가는 배우들은 방해하지 않으면서 각자 많은 기술적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우리가 하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고, 디지털이야! 아무 데서나 찍을 수 있잖아!”라는 감독의 망상을 겉으로는 수용하는 듯하면서도 나중에 극장 배급 키네코를 하기 위해(디지털을 필름으로 바꾸는 작업) 최소한의 그러나 적절한 조명을 설치해야 하는 촬영감독과 조명스탭들은 17시간 이상을 매일 일해야 했다. 표나지 않게, 배우들에게 들키지 않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배우들의 동선에 맞추어서 말이다.

물론 이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라 일정 정도의 조명을 매일처럼 휴대하고 다녔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 쉬면서 매일 17∼8시간을 일한다면, 촬영에 쉬는 시간이 없었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이번 촬영에는 리허설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24시간 내내 그 인물로 살아가는 배우들의 감정을 적절히 포착할 뿐이었다.

보통 영화에서 조명팀들은 리허설 시간에 쉰다. 그런데 그 리허설이 없었다. 동시녹음팀의 고충도 만만치 않았다. 저예산이라 제한된 녹음장비와 인원으로 꾸려진 녹음팀은 쉼없이 돌아가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배우들과 카메라 뒤를 정신없이 쫓아다녀야 했다. 붐마이크맨은 철인경기를 하는 선수처럼 뛰고, 물에 들어가고, 뒹굴고, 공중에 매달렸다. 나머지 스탭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탭 규모는 보통 영화 현장의 1/3 규모였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디지털 영화 현장이라는 것이 위에서 말한 수많은 변수들의 집합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어디서나 어느 순간에나 카메라는 돌아야 한다고 감독이 광분한다면?

조금이라도 영화 현장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뒤에 따라오는 그 수많은 문제들은 상상조차 하기 싫을 것이다. 제1조감독은 위경련으로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배우 중 한명은 촬영의 일부 기간을 포도당 주사를 맞으며 촬영을 해야 했다.

그리고 감독은 “어디서나 무엇이든 찍을 수 있잖아!”라는 디지털 만능 환상이라는 정신병 환자가 되어 있었다.

마침내, 강렬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낳다

기적의 순간들….

모두가 서서히 디지털 신경쇠약 증세로 미쳐가고 있을 때였다. 출산장면을 찍는 날이라 촬영의 3/4쯤 되는 시점이었다. 배우들이 차에서 내려, 유독히 추웠던 지난 겨울 영하의 추위가 매서운 바닷속으로 들어가 아이를 낳는 장면이었다.

리허설?

카메라의 위치?

붐마이크의 위치?

그 어느 누구도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액션이 시작되고 배우들은 바다로 뛰기 시작한다. 카메라 두대는 미친 듯이 배우를 따라갔고 붐마이크맨과 녹음기사는 발소리를 죽여가며 배우와 카메라를 쫓아갔다. 누군가 붐마이크맨의 모습을 보았다면 기다란 장대를 들고 곡예를 하는 기이한 서커스를 연상했을 것이다. 1m 이상 몰아치는 파도와 추위, 산고의 고통 속을 헤매며 절규하는 배우들,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놓치지 않기 위해 광분하는 카메라들… 이들 뒤를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며 붐마이크를 이리저리 곡예하듯 움직이는 녹음팀….

40여분간 펼쳐진 하나의 장대한 행위예술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가장 역동적이고 진실한 출산장면을 손에 넣었다. 감독은 추위에 덜덜 떨며 이미 얼어붙어 시체가 된 스탭들과 배우들을 향해 자랑스럽게 외쳤다. “거봐! 디지털은 무엇이든 가능하잖아!”

디지털 만능주의?

촬영현장소에서 감독은 어떤 원칙들이 필요하다. 작품을 구상하며 가졌던 최초의 의도들. 창조자로서의 최초의 욕망들이 그런 것이다.

조그마한 디지털카메라는 필름메이커에게 이미지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거대하고 장엄한 이미지가 아닌 ‘인간’이란 이미지를 마음껏 만들어내고 싶다면 지금도 설레게 하는 그런 매체이다.

그건 첫 아기의 모든 재롱을 카메라에 담으며 즐거워하는 부모의 그런 설렘이다(그들은 최초의 영화인들이다!).

8mm와 16mm 카메라를 손에 쥐고 거리를 천방지축 뛰어다니던 누벨바그 악동들의 흥분과 설렘과도 같은 것일 것이다.

온 세상을 카메라라는 마술단지에 봉인하여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려는 순진한 창조자의 욕망들.

스위스에서 디지털 이미지를 필름으로 전환하는 키네스코핑이란 작업을 완성하였다. 그곳에서도 나와 같은 환상에 감염된 악동들을 만날 수 있었다. <쥴리안 동키>라는 영화를 만든 감독이 그중 한명이었다. 그는 디지털 이미지를 16mm로 키네스코핑을 한 뒤 이를 다시 35mm로 블루업(blow up)했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디지털의 가벼움과 8mm필름이 갖는 노스탈직한 무거움 그리고 디지털과 셀룰로이드 필름의 이중삼중 잡종교배로 생긴 강렬하고 아름다운 원색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이미지들이었다.

디지털 작업은 세상을 자기식대로 뒤흔들려는 악동들의 매체라고 생각한다.

첫 아기의 재롱을 하루종일 찍으면서도 피곤할 줄 모르는 최초의 영화인들의 그 한없는 가벼움과 우중충한 방구석에 틀어박혀 바퀴벌레와 함께 온 세상을 묵시록적인 어두움으로 만들고 싶은 그 한없는 무거움도 모두 디지털 필름메이커의 특권들이다.

감독의 순진한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준 프로듀서, 스탭, 그리고 배우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다. 문승욱/ <나비> 감독 ▶ 디지털에 `미쳐 날뛰` 1년, 그 고통과 흥분의 여정

▶ [개봉 그뒤] 아직 못 본 사람이 많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