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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기대작] 이해준 감독의 <김씨 표류기>
김도훈 사진 오계옥 2007-09-13

한강 무인도에 그 남자가 살고 있다

“아직도 시나리오 작업 중이라 뭐가 나올지는 잘 모르겠다. 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짧은 시놉시스만을 슬그머니 훔쳐본 이해준 감독의 <김씨 표류기>는 한강 무인도에 상륙한 남자의 생존기다. 남자 ‘김씨’가 자살을 결심하고 한강 교각에서 뛰어내린다. 하지만 자살은 실패로 돌아가고 김씨는 한강에 떠 있는 무인도 모래사장에서 눈을 뜬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수영으로 섬을 탈출하는 것도 불가능한 신세. 김씨는 유람선을 향해 살려달라 손을 흔들어보지만 승객은 화사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답할 뿐이고, 휴대폰은 텔레마케터와의 통화를 마지막으로 배터리가 나가버린다. 체념한 김씨는 한강 무인도에서의 생활에 적응해보기로 결심한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철새와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자급자족을 영위하던 김씨에게 어느 날 와인병에 담긴 쪽지가 도착한다. 쪽지를 보낸 사람은 망원경으로 남자의 삶을 지켜보던 한강변 고층 아파트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여인이었다.

봉준호 감독이 한강 교각에 붙은 이상한 존재의 기억으로부터 <괴물>을 떠올렸듯, 이해준 감독은 서강대교 근처에 홀로 떠 있는 밤섬으로부터 <김씨 표류기>의 영감을 얻었다. “다리 아래의 밤섬을 바라보며 한강의 섬이라는 존재가 참으로 낯설다고 처음으로 느꼈다. 혹시 저 섬에 남자가 살고 있다면 대체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뒤로는 한강 무인도의 남자라는 존재가 마음속에서 도통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한강 무인도에 상륙한 남자의 표류기라니. 초현실적인 부조리극이 아니라면 지독한 코미디영화의 거친 초안처럼 들릴 지경이다. 물론 <김씨 표류기>의 표류일지는 전자에 닿아 있다. 이해준 감독은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이나 <캐스트 어웨이>처럼 의식주의 결핍을 해결하기 위한 육체적인 투쟁만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혼자 고립된 사람이 의식주를 모두 해결한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로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의식주 외에 결핍된 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그런 결핍이 오히려 고립된 섬에서 채워질 수도 있을까.” 물론 긍정주의자인 이해준 감독은 <천하장사 마돈나>에서처럼 인간이라는 존재의 소통 가능성을 굳건하게 믿는 듯하다. 히키코모리 여인은 김씨에게 서신을 띄워보내기 위해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새벽의 외출을 감행하기 시작하고, 김씨의 삶도 여인과의 소통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할 것이다.

이해준 감독이 이 부조리한(그래서 불가능해 보이는)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써내겠다 결심한 이유의 뒤편에는 오랫동안 작가로 활동하면서 느꼈던 갑갑함이 도사리고 있다. “오랫동안 시나리오를 써온 터라 분명한 이야기적 목적이 없이는 작업을 못했었다. 결국 이야기의 논리 속에서 운신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갑자기 갑갑해지더라. 이제는 그냥 아무것도 없이 이야기를 시작할 수는 없을까. 이야기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드는 영화를 만들 수는 없을까. 그게 궁금해졌다.” 그러니까 <김씨 표류기>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시작해 “섬처럼 떠 있는 인간들의 소통 의지에 대한 우화”로 도달한 이야기인 셈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여전히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Key Point: 섬

<김씨 표류기>에서 인간 캐릭터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메타포이기도 한 ‘섬’이다. 이해준 감독이 최초로 영감을 얻었던 밤섬은 철새 도래지라는 특이성으로 지난 1999년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기에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굳이 밤섬이어야 할 이유는 없으며 실재하는 공간인지 아닌지도 관심이 없다”는 것이 감독의 말이다. “섬 자체보다는 배경이 오히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재 밤섬 주변에 있는 63빌딩이나 국회의사당, 공장, 강변 아파트 같은 요소들만 있으면 된다. 섬과 주변 풍경이 빚어내는 이미지의 충돌은 영화의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밤섬에서 촬영을 할 수가 없다면 어떻게 원하는 이미지의 충돌을 만들어낼 것인가. 대답은 CG밖에 없다. 이해준 감독의 계획은 한강에 있는 섬에서 촬영한 다음 CG로 배경을 만들어서 합성한다는 것이다. “멀리 떨어져서 섬을 조망하는 서울의 배경은 진짜가 아니어도 느낌이 괜찮을 것 같다. 오히려 합성한 가짜 티가 나는 것이 영화가 표현하려는 섬의 고립감이라는 부분에 더 근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해준 감독은 한강의 다른 섬에서 타이트하게 촬영을 마친 뒤 후반작업에 최대한의 공을 들일 예정이다.

제작 영화사 반짝반짝 촬영예정 2008년 봄 개봉예정 2008년 가을 예상 제작비 27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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