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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살아갈 수밖에, <럭셔리 카>

EBS 9월15일 밤 11시

왕차오 감독은 <안양의 고야> <낮과 밤>의 영화미학과 형식에 대해 말하며 자신을 5세대 감독들과의 관계 안에 위치시킨 바 있다. 5세대 감독들과 같은 길을 걷는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들이 실패했던 지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한때 공장 노동자였던 그가 하층민들을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가 <안양의 고야>와 <낮과 밤>이었다면, 스스로를 중산계급이라고 여기는 지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덧붙인 영화가 <럭셔리 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현실을 말하면서도 형식미를 버리지 않으며, 사회의 변화를 인식하면서도 개인의 내면에 치중한다. 이에 대해 지아장커는 왕차오의 영화를 “미학적인 성취가 인간에 대한 현실에서 벗어”난 예라며 단호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럭셔리 카>는 아내의 임종을 앞두고 노년의 사내가 아이들을 만나러 도시에 도착하며 시작된다. 아들은 행방불명된 상태고, 사내를 마중 나온 딸은 아버지를 속이고 가라오케에서 일하고 있다. 딸이 소개해준 경찰과 어울리며 아들의 자취를 찾아다니던 사내는 결국 딸의 비밀을 알게 되고 아들의 생사 또한 불투명하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영화는 냉정하고 모든 것이 불투명하기만 한 도시와 그곳에 뿔뿔이 흩어져서 서로를 속이고 자신을 속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거나 절망하는 대신,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사내의 내면을 지켜본다. 그는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지만, 영화는 극단의 삶을 선택한 자식들을 바라보는 사내의 태도에 주목한다. 이것은 무력한 좌절이 아니다. 여기에는 극적인 드라마도, 두드러진 미학적 시도도 절제되어 있지만 흘러가는 삶의 시간이 있다. 이를테면, 임신한 딸이 결국 고향으로 돌아오고, 아내는 아들을 보지 못한 채 죽는 암담한 상황에서, 영화는 새로운 생명의 울음소리와 함께 힘겹게 아이를 낳은 딸의 눈물을 보여준다. 그리고 병실 밖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초라하게, 어쩌면 차분히 또 한번의 시작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사내를 비춘다. 영화가 닫히기 직전 그 짧은 순간, 천천히 떨리는 사내의 표정에는 삶이라는 운명이 드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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