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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소, 안 되는 기 없십니더”
2001-10-26

<리베라 메>에서 <내추럴시티>까지, 부산 로케이션의 만능해결사 부산영상위의 하루 따라잡기 (1)

<친구>를 서울에서 찍었다면 어땠을까? 조오련과 바다거북이 아니라 장재근과 치타의 대결이었다면, 영도다리가 성수대교였다면, 자갈치가 노량진이었다면, 용두산이 남산타워였다면, 비오는 영등포 뒷골목에 쓰레기차가 뒤집어지고 펄떡이던 쓰레기들이 사방으로 날리던 날, 죽어가던 동수는 이렇게 말하겠지. “어우 야, 그만해…. 나 많이 찔렸잖아.”

영화는 결국 이야기지만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은 공간이다. <리베라 메>부터 <친구> <엽기적인 그녀> <나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예스터데이> <정글쥬스> <내추럴시티>, 일본영화 <KT>까지. 이미 개봉되었거나 준비중이거나 촬영중인 많은 영화들이 부산이라는 공간을 촬영장소로 선택하는 배후에는 이들, 부산영상위원회(Busan Film Commission, 이하 부산영상위) 사람들이 있다. 회색의 웅장한 부산시청 의회쪽 건물. 서류봉투를 옆에 낀 정장차림의 아저씨들이 잰걸음으로 스쳐지나가는 2층 로비 구석의 화장실을 끼고 돌면 비밀창고 같은 문 하나가 보인다. 그러나 위치만 가지고 얕볼 일이 아니다. 촬영완료된 작품만 벌써 16개. 촬영중인 8개 영화, 30개 작품이 협상을 위해 통과해야 했을 이 문 안쪽엔 모든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한 것으로 바꿔주는 푸른 온실이 있다.

주로 지방자치단체 산하에서 비영리로 운영되는 필름 커미션은 영화촬영 전반을 지원하는 일종의 지역 영화지원 시스템. 99년 국내 최초로 발족해 이제 명계남 위원장과 함께 2돌을 맞는 부산영상위는 20대의 의기충천하는 의지를 가진 부산 젊은이들의 땀으로 가동된다. 11월 부산영화제 기간에 열릴 BIFCOM 행사준비에 분주한 부산영상위 사무실 식구들 중 행사준비와 본연의 임무를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로케이션지원팀은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들과 함께한 1박2일의 일정은, 그래서 유쾌하지만 발이 좀 아팠다.

11:00

<내추럴시티>

로케이션지원 회의

“문제는 허가가 떨어질까 하는 건데….”

어젯밤을 꼴딱 세우고 아침비행기로 내려왔다는 <내추럴시티> 제작부의 조성민씨와 로케이션지원팀의 김현석씨, 영화영상진흥계의 오상근 주사가 머리를 맞대고 아침부터 의논하고 있는 것은 한때 군 보안시설로 사용되었던 지하벙커의 활용 여부. 서울에서 미리 그려온 내부 세팅시안을 보며 미래의 폐쇄적이면서 미로 같은 분위기를 위해선 실제 지하벙커만한 게 없을 거란 것에는 모두 동의하는 눈치였다. 이제 허가가 떨어질까 하는 것이 부산영상위 사람들의 숙제. 지난 5월 부산 다대포에 수상가옥을 짓는 등 영화의 90% 이상을 부산에서 찍을 계획인 <내추럴시티> 팀을 비롯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살인비가> 등 <친구> 이후 단순히 부분로케이션뿐 아니라 아예 부산 올로케이션으로 계획하고 내려오는 영화의 편수가 늘어났다. 그것은 “부산 가면 길도 막고 차도 막고 다해준다며?”하는 속모르는 소문까지 나게 만든 로케이션지원팀의 부지런한 발품 덕이다. 99년 이후 자갈밭을 농작지로 일궈낸 초창기 멤버 김현석, 조주현씨와 지난 3월 공채 1기로 들어온 양진호, 이정표, 이경섭씨가 뛰고 있는 로케이션지원팀은 부산영상위 안에서 가장 많은 활동량을 자랑한다. 이들은 촬영지원 신청서를 낸 팀들에 필요한 장소를 추천하고 허가, 섭외 등 로케이션의 기본적인 사항을 돕고 있다. 아직도 “그거 돈받고 하느냐”고 물어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고맙다는 인사치레보다는 부산영상위의 신뢰도에 금가는 행동만 안 하면 그게 인사”라고 말한다.

<엽기적인 그녀>처럼 스탭들이 전대를 차고 다니며 담배꽁초 하나까지 줍는 감동스러운 장면을 연출하는 팀이 있는가 하면 “그 만행을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다”고 할 만큼 ‘나 몰라라’식으로 해놓고 현장을 뜨는 팀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 팀들에 대한 응징요? 다시는 부산서 못찍는 거죠, 뭐.” 사실 원활한 촬영을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큰 조력자는 경찰, 해경, 소방서. 시경에 시나리오 검토 심의위원이 구성되어 있고, 각 단위 경찰서에 영화담당자가 따로 있는 전국 어디에도 없는 경찰이, 부산에는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1년 반이 걸렸죠.” 부산영상위 사람들의 노력에, <친구> 같은 영화의 등장 이후 시민들의 협조도 잘 이루어졌다. “10월21일이 경찰의 날인데 우리 떡이라도 해서 돌려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지원했던 영화들 프린트 받아서 경찰이나 해경, 소방서분들 초청하는 작은 영화제를 하면 어떨까.” 올해 부산영상위가 지원해야 할 영화는 야속하게도 죄다 ‘경찰 액션물’인 덕(?)에 이들의 고민은 꽤나 진지하게 오랫동안 오고간다.

13:00

아솜지역 헌팅

“야, 여기는 스탭들 숙소로 써도 되겠네.”

미군장교 막사로 사용되었던 아솜지역 헌팅을 위해 나서는 양진호씨의 뒤를 데이터베이스팀의 양성영씨가 카메라를 들고 따라나선다. “빈 건물이 나와 있는 경우가 거의 드물거든요.” 미군 철수 뒤 비어 있는 이곳은 시에서 청소년수련원으로 개조를 계획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기 전까진 영화촬영지나 스탭들 숙소로 사용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공간이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이젠 좋은 공간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어요. 영화를 봐도 저거 어디서 찍었나 하는 것만 보이고….” 양성호씨에겐 영화관람을 방해하는 직업병이 도진 것을 비롯해 잘 꾸민 카페보다 사용 안 하는 창고나 폐가, 오래된 동네에 더욱 끌리는 취향의 변화까지도 불러일으켰다.

김대중 납치사건을 소재로 한 사카모토 준지의 일본영화 를 담당했던 이정표씨는 국가 보안시설인 항구, 바다를 이용해야겠다는 감독의 요구에 기무대, 국방부까지 쫓아다녀야 했던 것은 물론이고 충남에서 날아온 헬기, 750t급 상선을 동원해야 했고, 각 대학 총장실을 다 찾아다닌 결과 박정희 대통령의 집무실과 거의 흡사한 부경대 총장실을 발견했고 남천동 주택가에서 옛날 동교동 분위기를 찾아내었다.

모델 하우스 같은 곳에서만 촬영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늘 영화의 로케이션은 일반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공간을 원한다. <인디안 썸머>를 위해서 부산의 시체안치실이란 안치실은 다 돌아다녀야 했던 조주현씨는 심지어 시체를 빌려달라는 요구까지 해야 했으며 <나비> 때는 지하철공사장, 터널공사장 같은 칙칙한 공사장만 며칠 동안 찾아다닌 일도 있었다. <달마야 놀자>를 맡은 진호씨는 김해의 은하사를 찾기 위해 1달 동안 절만 찾아다니며 ‘반스님’이 되었다. 결국 영화의 95% 이상은 은하사 주변에서 소화했고 주지스님은 대웅전 불상을 옮기는 일까지 허락해 주었다. <성냥팔이…>의 갱생원장면을 찍은 용호동은 한센병환자 거주지역. 촬영허가를 받기 위해 김현석씨는 동네사람들과 같이 밥도 먹고, 악수도 하며 “민심을 푸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했던가.

15:00

특수촬영

업체방문

“부산에 이런 인력이 있는지, 몰라서 못쓰는 경우가

많다니까요.”

비가 온다. 이미 소방서와 살수차를 대기시켜놓고 비오는 장면을 찍을 예정이었던 <성냥팔이…> 팀으로부터 “자연비를 이용해 벌써 촬영을 마쳤다”는 다행인지 허무한지 모르는 연락이 날아오자, 부산영상위 스티커가 부착된 갤로퍼의 운전대는 경성대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런 날은 지역업체들을 방문해서 디렉토리작업에 박차를 가한다. 어떤 장비를 보유하고 있는지를 체크하고 어떤 촬영이 가능한지를 기록하는 디렉토리작업은 부산을 촬영지로 선택한 외국영화나 서울에서 온 팀들에 일일이 모든 장비를 싸가지고 오지 않고도 현지에서 모든 크루와 장비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실로 부산영상위가 생긴 이후 펩스 같은 엑스트라업체는 자생적으로 7군데가 생겨났지만 수중촬영이나 항공촬영 같은 특수촬영분야는 아직도 발전단계다. 그중 인터오션, 밀리디, 원시인 같은 곳은 활발한 성장을 보여주는 토착업체다. 수중촬영에 대한 노하우와 물 안에서도 외부와 이야기하면서 진행할 수 있는 하우징 장비, 하이드로 플렉스 같은 수중조명장비 등을 보유하고 있는 ‘인터오션’은 현재 <성냥팔이…>의 수중촬영을 담당하고 있다.

호박잎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무거운 쇳덩어리들이 가득 쌓인 공장 같은 공간에 자리잡은 ‘밀리디’는 15kg이 넘는 35mm카메라를 소형헬리콥터에 달고 플라잉캠촬영에 성공했다. 유려한 비행으로 찍어낸 영상은 사장인 안형국씨가 손수 개조한 영사기를 통해 먼지 가득한 벽면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김현석씨는 이런 업체들을 육성하고 결국 ‘전략적 제휴’를 맺는 것이 영상위가 단순한 촬영지원에 머물지 않고 고용창출 같은 다음 단계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고 귀띔한다. “결국 다른 지역에 영상위원회들이 생기고 저마다 로케이션유치를 한다면 영상위마다 특수분야가, 뭔가 다른 게 있어야 하는 거죠. 말하자면 수중촬영은 부산, 후반작업은 대전, 이런 식으로 말예요.”▶ 부산영상위의 하루 따라잡기 (1)

▶ 부산영상위의 하루 따라잡기 (2)

▶ 부산영상위 사람들 - 그들의 하루는 48시간

▶ 주목! 2001 부산국제필름커미션박람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