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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소, 안 되는 기 없십니더”
2001-10-26

<리베라 메>에서 <내추럴시티>까지, 부산 로케이션의 만능해결사 부산영상위의 하루 따라잡기 (2)

17:00

국제시장

<정글쥬스> 촬영현장

“촬영보다는 뒷정리보는 게 더 중요해요.”

“가시나들이 저리 미치니, 영화배우 안 할 사람 누가 있노!” 귀를 찢는 듯한 괴성과 함께 장혁의 스타크래프트를 쫓아 한 무리의 여고생들이 파도처럼 빠져나간 공간은 단추가게, 털실가게 등이 밀집한 국제시장. 두명이 어깨를 나란히 할 공간도 모자랄 만큼 좁은 골목으로 이루어져 있는 국제시장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정글쥬스>는 이정표씨 담당구역이다. “낮 신인데 벌써 불 들어온 간판이 있어서 그런가 봐요.” 먹자골목으로 이동한 촬영팀 중 한 사람이 ‘오늘 촬영 쫑’이라는 표시의 큰 엑스자를 온몸으로 그리고 한참이 지난 뒤에도 이정표씨는 자리를 뜨지 않는다. 뭐 특별한 액션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로를 막을 일도 없지만 그는 촬영 뒤, 그곳이 원상태 그대로 아무 일 없이 정리되는 것을 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민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절저한 사후관리 덕에 “다음에 와서 다시 찍어라”는 말까지 들어가며 현장지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에게 모든 지원은 “할 수 있는 한 한다”가 원칙이다. 그러다보니 한번은 인도에서 뮤직비디오를 찍는다고 해서 초청한 사람들이 알고보니 불법체류를 목적으로 들어온 사람들이었던 웃지 못할, 정말 그들 말대로 “시껍 똥쭐 탄” 해프닝이 연출되기도 했다. “의심이 안 간 건 아니지만 우리에게 신청을 한 사람들이고 국제필름커미션협회(AFCI)까지 들먹이며 사기를 치는 통에 참, 어이가 없죠….”

<친구>에서 장동건이 죽어가던 국제호텔 앞 촬영을 위해서는 3일 동안 정류장을 폐쇄했고, 아이들이 내기하며 걷던 영도다리엔 전면적인 차량통제가 이루어졌다. 버스정류장 위치를 옮겨야 할 때는 직접 봉고를 몰아 시민들을 바뀐 정류장으로 실어나르는 난데없는 마을버스 기사노릇을 하기도 했다. 위험했던 순간이 왜 없었을까? <리베라 메>의 병원폭파를 위해선 당시 비어 있었던 침례병원을 섭외해 실제로 방화와 폭파, 화재 진압장면을 촬영했고, 배우가 1인용 쓰레기차를 운전해야 했던 한 영화 때는 안창마을에서 백운포까지 이르는 가파르고 고르지 못한 길에서 차가 구르는 바람에 병원까지 동행하며 가슴을 졸인 일도 있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한 장면은 복잡하기로 유명한 서면 롯데백화점 앞에서 있었다. 6차선 도로의 4차선을 막고 드럼통을 세워놓았는데 바람에 드럼통이 날아가는 통에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야속하기도 해라. 그때 누군가 “야!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롯데 앞 신 재촬영한데!”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졌다. 한숨과 탄식이 화살과 같이 날아왔다.

19:00

디렉토리작업

“한번 고생하면 여러 사람 편하잖아요.”

부산영화제 기간인 11월11일부터 열리는 부산국제필름커미션박람회(BIFCOM) 준비를 위해 늦은 시간에도 사무실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영화 관련업체와 영화계 스탭들, 지역관계자들의 주소와 전화번호 홈페이지 주소까지 일일이 조사한 디렉토리는 현재 사진과 원고가 2/3정도 넘어간 상태긴 하지만 아직 갈길이 멀었다. 처음하는 행사다보니 행사장 세팅부터 행사에 필요한 물품 챙기는 일까지 기획팀장 박여영씨에겐 나가서 식사할 시간도 없을 만큼 과부하가 걸렸다. “바쁘죠. 그래도 한번 고생하면 여러 사람 편하잖아요. 결국에 필름커미션은 자료싸움이기 때문에 디렉토리작업만큼 중요한 것이 없거든요.”

부산영상위 홈페이지(www.bfc.or.kr)에 들어가보면 주제별, 지역별로 정리된 4500장의 로케이션 자료가 업로딩돼 있다. “사진 한장이 제 땀 한 방울입니다.” 데이터베이스팀 양성영씨의 말대로 이 사진들은 부산지역 16개구를 한달 동안 8명의 사람이 2개구씩 나누어 일일이 돌아다니며 찍은 로케이션의 정보와 주소 등을 담고 있다. 올해 안에 “만장까지 올릴 예정”이라는 데이터베이스작업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계속적인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분야다. 이들이 이미 실시한 시민대상의 ‘로케이션사진전’이나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동영상 서비스 등을 통해 좀더 구체적이고 케이스에 걸맞은 자료를 손쉽게 찾을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향한 길은 아직 멀지만 이미 시작되었다.

부산은 조금 희한한 동네다. 산이 있는가 하면 바다가 있고, 고층의 아파트 건너편엔 여전히 왜식 건물들이 공존한다. 그러나 이 공간은 꽤나 오랫동안 그저 산복도로에 빽빽이 들어선 판자촌의 이미지나 용두산공원 꽃시계 앞의 비둘기 풍경처럼 절대불변의 판에 박힌 이미지로 박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늘 서울의 동네들을 영화 속 고향으로 보고 살던 부산 관객에게 자신이 생활하며 숨쉬는 공간에서도 드라마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생각하는 것보다, 기이한 경험이다.

유바리영화제에 초청되었을 때 일본 관계자가 “부산하면 <돌아와요 부산항에> 다음이 부산영상위원회예요”라고 했다는 자랑을 꺼냈다가도 금세 쑥스런 미소를 짓고,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고 진짜 애향심이 아니면 못한다니깐요”라며 순진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 영락없이 마음좋은 시골청년들 같지만 이들이 품은 욕심은, 사실 서울내기들 못지않다.

남해에서 경주시까지 범경상도를 네트워킹화하겠다는 작업은 이미 추진중이고 오는 11월에 부분 완공될 수영만 스튜디오가 자리를 잡고, 촬영지원 같은 일들은 “공문 한장만 팩스로 넣어주면” 가능할 정도의 시스템을 정착시킨 이후 이메지카 같은 현상소까지 들어온다면 정말 촬영부터 후반작업까지 가능한 ‘영상도시 부산’을 만들 수 있으리라. 그렇게 지역의 숙박업, 요식업, 관광업의 발전과 함께 구체적인 고용창출을 이루겠다는 청사진은 그저 원대하기만 한 꿈일까? 2년간의 짧은 시간 동안 부산영상위의 성장을 이룬 것은 위풍당당한 광역시의 깃발 아래 집행된 공권력이 아니었다. 6차선 대로에서, 폐공장 뒤뜰에서, 비내리는 영도다리 위에서 초조함과 걱정으로 피워내려갔을 줄담배와 촬영 끝난 항구에서, 다시 오란 인사 뒤에, 불꺼진 영화관에서 누가 볼까 슬며시 지어보는 이들의 미소가 다시 땅으로 스며들어 그들을 키웠던 진짜 자양분이었던 것이다.

글 백은하 lucie@hani.co.kr·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 부산영상위의 하루 따라잡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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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영상위 사람들 - 그들의 하루는 48시간

▶ 주목! 2001 부산국제필름커미션박람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