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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단편 17] 고창민, 마리 김 감독의 <목구멍 속 금붕어>
최하나 사진 오계옥 2007-09-20

환상 같은 악몽의 이미지들이 유영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진짜 목구멍까지 찼거든?” “피곤하다, 피곤해!” 매섭게 오가던 연인들의 말다툼은 끝내 단호한 결별 선언으로 일단락을 맺는다. 그러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남자의 목구멍을 파고든 카메라는 얽힌 내장들 대신 방과 방을 오가며 기기묘묘한 이미지들을 펼쳐놓는다. 어항을 벗어난 물고기들이 허공을 유영하고, 여자의 다리 사이에서 호전적으로 이를 딱딱거리는 입이 돋아난다. 성적인 상징들로 충만한 잠재 의식의 터널을 빠져나오면, 관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현실의 섬뜩한 반전이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합성해 독특하고도 불편한 이미지를 선사한 <목구멍 속 금붕어>는 고창민씨와 마리 김씨, 두 사람의 합작품이다.

“서로 알게 된 건 올 5월이다. 같은 데서 강의를 하다가 MT를 갔는데 벌칙 파트너였다. (웃음)” 디자인정글아카데미의 강사로 각각 캐릭터애니메이션과 모션그래픽을 가르치던 마리 김씨와 고창민씨는 MT로 안면을 튼 뒤, ‘번개’로 친목을 다지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공동작업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내러티브 중심의 작품을 만들까도 생각했지만, 좀더 스피디하게 작업하고 싶어 비주얼의 비중을 높이게 됐다.” 두 사람 다 현업에 종사하는 프로인 만큼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구상부터 완성까지 전체 제작기간은 2주. 하루 만에 촬영을 마치고, 나머지는 애니메이션과 합성하는 후반 작업에 공을 들였다. “직설적으로 다루기 애매한 생각들을 표현하고 사람들이 금기시하는 영역을 건드리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마리씨의 일러스트 느낌이 초현실적이어서, 더 힘이 실린 것 같다.”(고창민) 호텔을 연상시키는 공간의 이미지는 인생을 은유하기 위한, 야심찬 아이디어의 결과다. “생명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아이에서 시작해, 첫 경험에 대한 두려움, 사회적인 성취에 대한 압박, 상실과 배신 등 인생의 여정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감정의 굴곡들이 상징성 짙은 이미지들로 나타났다. “사실 작품을 보고 누가 그런 걸 다 알겠나? (웃음) 하지만 신선하고 충격적인 영상을 통해 사람들이 머리를 굴리도록 만들고 싶었다.”(고창민)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 데이비드 린치인데, 그런 환상적이면서도 악몽 같은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마리 김)

미국에서 디지털 영상을 5년간 공부했다는 고창민씨의 주요 활동분야는 모션그래픽이다. 레스페스트, 서울독립영화제,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등 다양한 영화제에 작품을 걸어온 그는 31살에 계명문화대학교 전임교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서류 작업이 체질에 맞지 않아” 3년 만에 교수 자리를 내친 뒤에는 ‘모션고선생’이라는 자기 브랜드를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2살에 호주로 훌쩍 건너가 애니메이션과 게임 디자인을 공부했다는 마리 김씨 역시 MKPOP이라는 이름 아래 애니메이션, 만화, 일러스트, 화장품 브랜드까지 전방위로 활동 중이다. 또래의 친구들이 모두 직장인이라 이제는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는 두 사람은 자신들을 가리켜 “속 편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원래 물건에 대한 대단한 욕심이 없다. 먹고살 만큼 벌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좋다.”(고창민) “걱정이 없어서 주름도 덜 생기는 것 아닐까? (웃음)”(마리 김) 서로를 알게 된 지 5개월이 채 되지 않았지만 10년지기 친구를 대하듯 서로가 편하다는 두 사람은 이미 또 다른 공동의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마리 김씨가 직접 “공지영 책을 펼쳐놓고” 작사를 했다는 사랑 이야기가 뮤직비디오로 탄생할 예정. “TV에도 방영돼야 하기에 잘리지 않을 만큼 실험성의 수위를 조절할 예정”이지만 “그저 상업적인 영상은 사양한다”는 것이 이들의 굳건한 다짐이다. “지금 당장은 돈을 벌지 못해도, 작업 하나하나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생각한다”는 두 파트너의 시선은 “정말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줄” 5년 뒤, 10년 뒤의 미래를 조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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