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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에세이 1. 진실을 견디려는 질주
2007-10-11

소설 <달려라, 아비>의 김애란 작가가 본 <행복>

연애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두 사람이 서로 호감을 갖고 감정을 발전시켜나가는 부분이다. 농담과 배려, 시치미, 오해 등 앙증맞은 톱니들이 돌아가는 소리와, 정념의 낙차가 만들어내는 그래프 곡선만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있을까 싶다. 연애 이야기에서 더 흥미로운 지점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보기 시작하는 부분이다. 합일된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공간이 최초로 찢어지는 순간이다. 우리가 연애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주인공을 통해 사랑의 충만감을 느끼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찢어짐의 순간을 매번 다시 경험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두 사람의 연애를 지지하는 만큼 두 사람의 이별을 갈망한다.

나는 영수(황정민)가 은희(임수정)에게 “너 밥 천천히 먹는 거 안 지겹니? 난 지겨운데”라고 묻는 순간이 좋았다. 둘 중 한 사람만의 건강이 호전되자, 다른 한 사람이 보여준 이중적인 태도가 좋았다. 그것은 내가 어느 소설의 문장, ‘아름다우면서 진실한 것은 없어요’를 기억하는 이유와 같다. 휴대폰이 없고, 시간이 흐르지 않는 세계에 금이 가는 순간.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동화가 끝나고 소설이 시작되는 시간. 두 사람은 시골에서 얼마간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보통 사람들이 ‘너 없으면 죽을 것 같아’라고 말하는 사랑을 한다면, 이들은 ‘죽을 것 같은 상태’에서 서로를 안는다. 행복은 그들만의 공간에서 시간이 삭제된 채 익어간다. 이들이 꾸려나가는 살림과 노동의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것은 임수정이 몸뻬를 입어도 예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비시간성 때문이다. <행복>의 균열은 영수가 사는 시골에 수연(공효진)이 찾아오면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그녀가 은희의 성적 라이벌이기 때문도, 순수함과 대비되는 속된 서울 여자인 탓도 아니다. 은희와 영수의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건 수연이 그들 세계에 ‘시간’을 들고 왔기 때문이다. 은희의 기침은 이들이 바라는 영원성과 바깥의 시간이 부딪힐 때 생기는 실금이다. 영수는 그 소리가 끔찍하다고 느낀다.

영수는 방황한다. 양다리에 알코올중독 등 탕아의 인상을 주지만, 허진호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아무리 나빠도 충분히 나쁘지 않다. 그의 영화 속 사랑은 늘 죽음 곁에 붙어 있거나 시한부적이다. 사랑은 너무 짧고, 버림받는 쪽은 버리는 쪽보다 늘 착하거나 약하다. 나는 그들의 사랑이 좀더 때 묻은 것이기를 바란 적이 있다. 헤어졌기 때문에 훼손된 것이 아니라, 그 훼손 안에서 사랑했으면 싶었다. 영수는 은희의 기분 나쁜 소리로 뿜어내는 죽음의 징조를 더 끔찍해하고, 은희의 건강인에 대한 질시는 더 어마어마해야 하지 않았을까. 감독은 그들이 견디게 놔두지 않는다. 그래서 그 세계는 갈등의 기미가 보이는 순간 쉽게 부서진다. 그들은 싸운 뒤 헤어지는 것이 두려워 싸우지 않기 위해 헤어진다. 어쩌면 감독 그 자신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영수는 두 여자와 헤어진다. 영수는 한 여자와 두번씩 네번 헤어지고, 각각의 이별은 다른 무게와 의미를 갖는다. 그중 가장 중요하게 그려지는 부분은 영수와 은희의 이별이다. 영수를 떠나보낼 때 은희의 행동은 인상 깊다. 나는 지금껏 그런 종류의 질주를 본 적이 없다. ‘죽고 싶어서’였겠지만 그녀가 하고 있는 게 사랑만큼 위대한 일 중 하나, 진실을 견디고 있는 일이라 느껴졌다. 온몸으로 맞는 시간, 온몸으로 맞는 찢어짐. 우리가 바랐던 재난. 은희는 운다. 그리고 영수를 보낸다. 40%밖에 없는 폐로 은희는 달리지만, 우리는 사람이 사랑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은희의 죽음 이후 한 가지를 더 깨닫는다. 사랑이 우리의 병을 낫게 해주진 않지만, 적어도 봐주는 사람이 있을 때 계속 아플 수 있다는걸, 누구도 죽어서는 아플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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