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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봅시다] 아직 끝나지 않은 그날의 비극
박혜명 2007-10-30

소설과 영화로 이어진 실화, ‘블랙 달리아’ 살인사건

브라이언 드 팔마의 신작 <블랙 달리아>가 60년 전의 실제 사건을 모델로 했음은 이제 많이 알려진 바다. 1987년 제임스 엘로이의 소설로 먼저 재구성된 이 미해결 살인사건은 필름누아르가 유행하던 1940년대 할리우드에서 그 어떤 영화보다도 진짜 누아르 같은 사건이었다.

사건의 개요

1947년 1월15일 오전 10시45분, <로스앤젤레스 이그재미너>(Los Angeles Examiner)의 두 기자는 신문사로 향하던 길에 경찰의 무전을 들었다. “노튼 공터에 술 취한 여자가 누워 있다, 오바.” 한 블록 거리에 떨어져 있던 그들은 잽싸게 차를 돌렸다. 도착해보니 그들은 첫 손님이었다. 거기엔 음주 노숙자는 없었다. 몸이 반 토막나고 내장이 사라지고 입 양쪽이 귀까지 찢어진 여자 시체만 있었다. 이 시체는 FBI 지문검식에 의해 엘리자베스 쇼트라는 여성의 것으로 이튿날 밝혀졌다. 부검 결과 여자는 단단한 줄에 묶여 산 채로 입이 찢겼고 둔기로 머리통을 얻어맞은 것이었다. LA경찰은 이 끔찍한 부검 결과를 공표하지 않았다. <로스앤젤레스 이그재미너>에 실린 현장 사진에는 여자의 찢긴 얼굴이 보정되어 있었다.

엘리자베스 쇼트는 누구인가.

<블랙 달리아>

살해됐을 당시 엘리자베스 쇼트의 나이는 스물둘이었다. 1924년 7월29일 매사추세츠에서 4녀 중 둘째로 태어난 그는 4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엄마 밑에서 자랐다. 쇼트는 19살 때 캘리포니아주 발레호에 있는 아버지와 살겠다고 집을 나갔다. 쇼트는 아버지와 살면서 현 반덴베르크 공군부대 자리인 캠프 쿠크에서 매점 직원 자릴 얻었다. 부녀의 삶도 행복하진 않아서 쇼트는 또 집을 나왔다. 그는 몇년 동안 샌타바버라, 플로리다, 매사추세츠를 떠돌면서 살았다. LA경찰의 조사 기록에 따르면 죽기 직전 5개월 동안 그녀의 LA 거주지는 적어도 11곳이었다.

사건 당시 발견된 쇼트의 가방 안에는 그녀가 써놓고서 부치지 않은 몇년간의 편지들이 붉은 리본에 묶인 채 들어 있었다. 1945년에는 공군 매튜 고든 주니어에게 “사랑해요”라고 썼고, 그보다 1년 전에 만난 육군 중위 조셉 고든 피클링에게도 “결혼을 약속하지 않으면 함께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라고 썼다. 고든은 1945년 비행기 사고로 전사했으며 피클링은 쇼트가 살해당하기 직전까지도 그녀와 편지로 연락 중이었다.

누가 그녀를 죽였나

어느 기록에 따르면 사건 당시부터 지금까지 “내가 저질렀다”라며 쇼트의 살인을 자백한 사람만 60여명. 첫 번째 용의자는 ‘레드’ 또는 ‘밥’이란 닉네임으로 불리던 20대 중·후반의 남자 로버트 맨리였다. 유부남인 그는 쇼트의 살해 전에 그녀와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다고 ‘공식적으로 알려진’ 인물. 맨리가 쇼트와 만난 것은 1월8일 샌디에이고에서였고 이날 밤 맨리는 “LA로 돌아가고 싶다”는 쇼트의 청에 따라 자신의 차로 그녀를 LA의 한 호텔에 데려다주었다. 맨리는 명백한 알리바이로 풀려났다. 이후 그는 쇼트의 가방과 구두가 발견됐을 때 그것이 그녀의 것임을 확인하러 LA 경찰에 다시 출두했다.

9일부터 15일까지 쇼트의 행적은 매우 묘연해서 경찰과 언론은 이 기간을 ‘잃어버린 일주일’이라고 불렀다. 이후 드러난 두 번째 용의자는 뉴저지에 근무하던 29살 군인 조셉 뒤매다. 그는 사건 발생 뒤 몇주 뒤에 제 발로 경찰서에 나타나 “내가 죽였다”고 자백했다. 그 역시 알리바이로 곧 풀려났다. 뒤매는 그뒤 1950년대까지 여러 폭력사건들로 경찰에 체포될 때마다 “내가 죽였다”는 주장을 했다.

마크 한센이라는 할리우드의 대형 나이트클럽 및 극장 소유주는 당시 LA경찰이 지목한 유력 용의자 중 하나다. 여배우가 되기 위해 할리우드 유력인사들 주변을 맴돌았던 것으로 알려진 쇼트는 한센의 여자친구를 통해 그와 연이 닿았다. 쇼트는 1947년 5월에서 10월 사이에 한센의 집에서 지냈고, 1947년 1월8일과 9일에도 샌디에이고에서 LA의 그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센은 1951년까지도 미 LA지방검사와 대배심이 지목한 유력 용의자였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

미해결로 잊혀져 가던 엘리자베스 쇼트 살인사건은 40년 뒤 제임스 엘로이의 소설이 출간되면서 다시 붐을 일으켰다.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정말 많이 벌어졌는데 그중엔 “우리 아버지가 ‘블랙 달리아’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자녀들도 있었다. 1991년, 재니스 놀튼이라는 여성은 “내가 아버지의 살인장면을 목격했고, 아버지가 시체를 버릴 때 나를 억지로 데려갔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심리치료를 받다가 기억이 떠올랐다”며 자신의 아버지가 쇼트와 불륜 관계였다고도 주장했다. LA경찰들까지 끌어들인 그녀의 주장은 <아빠는 ‘블랙 달리아’ 살인자>라는 제목의 자필서에 집약됐다. 그녀의 아버지는 1962년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재니스 놀튼은 2004년 자살 시도로 추정되는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엘리자베스 쇼트의 꿈은 폭력과 음모로 얼룩진 필름누아르에 출연하는 여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생전에 그는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블랙 달리아’는 1946년 개봉해 인기를 끌었던 누아르 <블루 달리아>에 쇼트의 깊은 밤처럼 검은 머리칼을 연결해 만들어진 별명이다. 이 이름만이 소설로, 영화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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