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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전문직 드라마의 강박증

탄탄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사 범벅’의 함정에 빠진 MBC <옥션하우스>

MBC 드라마 <옥션하우스>는 토요일도 아닌 일요일 밤 11시40분이라는, ‘안습’의 시간대에 전파를 타고 있지만 사각지대에서 제법 의미있는 삽질을 시작한 패기의 작품이다. MBC의 신진급 PD 네명이 매주 돌아가며 정성껏 일군 에피소드의 열매를 맛보라고 내밀고 있는 이 드라마는 시즌제, 회마다 에피소드가 일단락되는 방식, 전문직 세계를 전문적으로 조명하기 등 여전히 한국 드라마에서는 도전과제로 존재하는 영역을 ‘우리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 아래 모두 잘근잘근 소화하겠다는 의욕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의 소더비라는 ‘윌옥션’의 미술경매 스페셜리스트들이 주인공이며, 도난사건, 위작사건 등 그림을 둘러싼 우여곡절 파란만장의 에피소드가 매주 그들의 동선을 바쁘게 만들고 있다. 실제 그림 관련 전문가들의 ‘훈수’를 쫀쫀하게 받고 있다는 <옥션하우스>는 정말로 행방불명 상태라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도 그럴듯하게 소재로 차용하는 등 호기심은 동하되 수십억원 낙찰이 예사여서 왠지 딴 세상의 뜬구름 같은 미술경매의 세계를 제법 리얼하게 허구화하고 있다. 명화의 뒷얘기, 벽화 복원작업의 노하우 등 공부하듯 아트의 세상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추리물의 구성도 띤 채 탄탄하고 속도감있게, 때로는 예쁜 미장센까지 곁들여 극의 기승전결을 이루려는 공들인 연출도 졸린 눈을 비벼가며 기다린 보람을 준다.

그런데 결국 이 드라마도 매력있게 파닥거리는 캐릭터를 만드는 대목에서는 하품을 유도한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야무짐으로 최고 경매사의 커리어를 자랑하는 왕언니 민서린(김혜리)이야 정답의 진부함은 있어도 안정감을 준다. 하나 주역 격인 신입사원 차연수(윤소이)의 전형성은 과하게 낭만적이다. <신입사원>의 ‘강호’도 아니면서 ‘윌옥션’ 보스의 신통방통한 선견지명 덕에 ‘스펙’을 무시한 채 ‘뭐든지 맡겨주시면 잘할 수 있다’는 씩씩함 하나로 입사에 성공한 그는 일반인보다 못한 미술지식에 상식없음, 눈치없음 등을 남발하면서도 멋진 경매사로 쑥쑥 커가는 성장 및 성공스토리를 적어내려갈 태세다. 정교한 복원작업에 무턱대고 ‘나도 해볼래요’라고 뛰어들었다가 ‘네 눈에는 이게 장난으로 보이느냐’는 선배의 타당한 꾸지람을 듣고도 ‘그림이 사람보다 중요하냐’고 비약의 휴머니즘을 설파하며 대드는 등 그의 의욕과잉표 단순한 열정은 전문직 드라마를 표방한 이 드라마의 프로페셔널한 정서에 싱거운 균열을 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장금이’처럼 난관을 ‘클리어’하며 다음 단계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은 무심하게 던진 한마디를 결정적인 힌트로 ‘캐치볼’해주는 왕자님 같은 주변인의 지원사격이나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의 잠재력을 간파해주는 어르신의 배려 덕분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차연수의 자장 아래 <옥션하우스>는 어릴 적 헤어진 누이에 대한 추억, 어머니와의 마지막 약속 등 그림과 관련한 가족의 사연을 신파의 애틋한 방점으로 아우르며 ‘돈보다 중요한 것을 찾은’ 주인공의 깨달음과 교훈을 매회 설파하고 있다.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인간사에 귀를 기울이는 게 싫지 않지만, ‘공사 범벅’을 좋아하고 일단 인물의 백그라운드를 지루하게 구체화해야 캐릭터가 구현됐다고 안도하는 한국식 전문직 드라마의 인간미와 친절함은 이번에도 역시나여서 조금 지겹다. 또, 심야 드라마임에도 모범생의 메시지와 표현방식만 견지하고 있는 것도 관습의 시간대를 탈피한 배치의 결과물로는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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