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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먼 시네마의 시선
2001-10-31

<좋은 친구들>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의 마이클 발하우스

“그가 카메라를 잡으면 카메라가 움직인다.” 이는 촬영감독 마이클 발하우스의 360도 회전하는 카메라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사랑의 행로>에서 상앗빛 피부가 드러나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그랜드 피아노 위에서 부르던 미셸 파이퍼의 <Makin’ Whoopee>의 선율은 감정의 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카메라의 조심스러운 움직임과 어우러져 영화팬들을 들뜨게 만들었다. 돌아가는 카메라에 몸을 실은 미셸 파이퍼는 이후 할리우드 1급 여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물론 촬영기법 하나로 그를 설명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단순한 잡기 이상의 자신만의 눈, 자기만의 ‘문체’를 알아나간다는 촬영감독 마이클 발하우스. 60을 훌쩍 넘긴 그를 주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독일 아이헬스도르프에서 태어나 베를린의 무대사진사로 일하던 20살 청년 미하엘 발하우스를 영화라는 매체에 푹 빠지게 한 건 <롤라 몬테스>(1955)라는 한편의 영화였다. 감독 막스 오퓔스가 친척이라서 멋모르고 따라간 촬영현장에서 그는 영화의 꿈을 접종받았다. 이후 그는 방송사의 촬영기사로 자리를 옮겼고, 1968년 장편 극영화 <하루에도 여러 번>(Mehrmals Taeglich)으로 영화촬영감독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본격적인 촬영감독 생활은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인 R.W 파스빈더와 1970년 <성스러운 매춘부를 조심하라>를 작업하며 시작됐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탐구해온 파스빈더와 작업한 영화는 그의 섬세한 카메라워크와 맞물려 생생한 화면을 구가한 <화이티>(1971), 독일연방 영화상을 수상한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1972), 트레이드마크인 360도 회전법을 선보인 <마르타>(1973), 탁월한 화면이 돋보이는 <중국식 룰렛>(1976), 그리고 베를린영화제 기술부문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식>(1978) 등 15편에 이른다.

82년 할리우드로 건너간 발하우스는 인디영화의 대명사 존 세일즈의 <베이비 온리 유>(1983)로 미국과 인사한다. 제임스 폴리 감독의 흥행작 <렉클리스>(Reckless, 1983)로 이름(미하엘이 아니라 마이클로!)이 알려지기 시작한 그가 마틴 스코시즈와 만난 것도 이즈음이다. 첫만남 <특근>(1985)에서 마이클의 촬영기술에 반한 스코시즈는 <컬러 오브 머니>(1986),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 <순수의 시대>(1993)를 지나 <갱스 오브 뉴욕>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둘의 관계를 이어간다. 특히 <좋은 친구들>(1990)에서 보여준 역동적인 카메라워크는 비정한 마피아세계의 어두운 현실을 담아냄으로써 평단의 호응을 얻게 된다. 할리우드에서 그의 활동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카데미 촬영상에 제임스 브룩스 감독의 <브로드캐스트 뉴스>와 <사랑의 행로>가 노미네이트되었고, 볼프강 페터슨, 배리 레빈슨,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로버트 레드퍼드와 같은 유수의 감독들 또한 그와 호흡을 함께하였다.

그간 촬영에서 보여준 예술적인 활동과 공로로 그는 2000년 독일 골든 스크린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그에겐 귀향할 의사가 아직 없는 듯 하다. “거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할리우드의 제작자와 감독들은 나를 기용하려고 줄을 선다. 굉장히 신나는 일이다. 그런데 왜 독일로 가겠는가?” 그러나 뮌헨과 함부르크, 베를린의 영화학교에서 젊은 학생들에게 촬영을 가르치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내기도 한다. 디지털카메라로 그로테스크한 화면, 인상적 색감을 연출해낸 최근의 단편 <지킬 건 지켜야지>(2000)는 이 ‘대가’가 아직도 영화의 전위에 설 전의를 잃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 그러나 그는 영화는 기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좀더 간편하다는 이유로, 좀더 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유로 정작 영화의 질적 수준저하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주의를 준다. 30년을 웃도는 영화와의 인연은 그에게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빛을 재연하고 조절해야 할지 아는 직감을 불러주었고, 오늘도 현장에서 그의 도전을 가능하게 해주는 밑거름으로 자리한다.

이화정/ 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필모그래피

<갱스 오브 뉴욕>(Gangs of New York, 2002) 마틴 스코시즈 감독

<지킬 건 지켜야지>(Gone Underground, 2000) 수 투르한 감독

<너 어느 별에서 왔니?>(What Planet Are You From?, 2000) 마이크 니콜스 감독

<베가 번스의 전설>(The Legend Of Bagger Vance, 2000) 로버트 레드퍼드 감독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Wild Wild West, 1999) 배리 소넨필드 감독

<프라이머리 컬러스>(Primary Colors, 1998) 마이크 니콜스 감독

<에어 포스 원>(Air Force One, 1997) 볼프강 페터슨 감독

<슬리퍼스>(Sleepers, 1996) 배리 레빈슨 감독

<아웃브레이크>(Outbreak, 1995) 볼프강 페터슨 감독

<너를 위하여>(I’ll Do Anything, 1994) 제임스 브룩스 감독

<퀴즈 쇼>(Quiz Show, 1994) 로버트 레드퍼드 감독

<순수의 시대>(The Age Of Innocence, 1993) 마틴 스코시즈 감독

<드라큐라>(Bram Stocker's Dracula, 1992)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맘보 킹>(The Mambo Kings, 1992) 안 글림처 감독<밥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What About Bob?, 1991) 프랭크 오즈 감독

<비공개>(Guilty By Suspicion, 1991) 어윈 윙클러 감독

<좋은 친구들>(Goodfellas, 1990) 마틴 스코시즈 감독

<헐리웃 스토리>(Postcards From The Edge, 1990) 마이크 니콜스 감독

<사랑의 행로>(The Fabulous Baker Boys, 1989) 스티브 클로브스 감독

<캐롤가의 저택>(The House On Carroll Street, 1988) 피터 예츠 감독

<화려한 사기꾼>(Dirty Rotten Scoundrels, 1988) 프랭크 오즈 감독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The Last Temptation Of Christ, 1988) 마틴 스코시즈 감독

<워킹 걸>(Working Girl, 1988) 마이크 니콜스 감독

<글래스 미네저리>(The Glass Menagerie, 1987) 폴 뉴먼 감독

<브로드캐스트 뉴스>(Broadcast News, 1987) 제임스 브룩스 감독

<체리 문>(Under The Cherry Moon, 1986) 프린스 감독

<컬러 오브 머니>(The Color Of Money, 1986) 마틴 스코시즈 감독

<특근>(After Hours, 1985) 마틴 스코시즈 감독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 1985)(TV) 폴커 슐뢴도르프 감독

<비통한 사람들>(Heartbreakers, 1984) 보비 로스 감독

<렉클리스>(Reckless, 1984) 제임스 폴리 감독

<베이비 온리 유>(Baby, It’s You, 1983) 존 세일즈 감독

<루핑>(Looping, 1981) 발터 보크마이어 감독

<릴리 마를렌>(Lili Marleen, 1981)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Die Ehe Der Maria Braun, 1979)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

<양지로의 여행>(Despair, 1978)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

<볼비저>(Bolwieser, 1977)(TV)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

<중국식 룰렛>(Chinesisches Roulette, 1976)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

<너희가 나를 사랑하기만을>(Ich Will Doch Nur, Dass Ihr Mich Liebt, 1976)(TV)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

<폭스와 그의 친구들>(Faustrecht Der Freiheit, 1975)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

<마르타>(Martha, 1973)(TV)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Die Bitteren Tranen Der Petra Von Kant, 1972)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

<화이티>(Whity, 1971)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