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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를 근심하는 거장의 마음, <마음>
ibuti 2007-11-09

<카이에 뒤 시네마>에 실린 <마음>의 리뷰 중 한 부분은 (1948년에 <영화에서 눈이 내린다>라는 글을 쓴) 앙드레 바쟁과 알랭 레네의 가상 대화로 꾸며져 있다. <마음>의 곳곳에 눈이 삽입된 것을 본 평론가 에마뉘엘 부르도는, “영화에서 눈 내리는 장면이 왜 많은지 아는가?”라는 바쟁의 질문에 레네가 “눈이 순백의 단조로움 아래로 심원한 모호함과 미묘한 변형들, 그리고 상반되는 것들을 감추기 때문이죠”라고 응수했을 거라 상상한다. 레네의 근작들이 쉬워졌다는 평을 듣는 가운데, <마음>의 수학적 리듬은 그가 여전히 아름다운 형식주의자임을 증명한다. 앞뒤 크레딧을 포함해 60개의 장면이 4일 동안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50개에 달하는 눈의 이미지 숏이 60개의 장면을 연결하며, 숫자놀음에 그치지 않는 형식은 주제 및 내용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페이드아웃으로 끝나는 밤장면을 제외하면, 눈의 이미지로 연결되지 않는 건 마지막 다섯 장면밖에 없다. 다섯 장면에서 여섯 주인공은 한줄기 빛 아래 홀로 존재한다. 그리고 신호가 끊겨 지글거리는 (그래서 눈이 연상되는) TV화면이 꺼질 때 스크린에는 ‘fin’이란 기호만 남는다. 이러한 형식은, 결국엔 관계의 모호함과 인물 사이의 상반되는 성격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 고독하고 단절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거기엔 싸늘한 비평이 아니라, 여든네살 노장의 염려가 깃들어 있다. 앨런 에이크번이 쓴 원작의 그럴싸한 이름 <공공장소에서의 개인적인 두려움>보다 지극히 평범한 <마음>이 영화의 제목으로 더 어울리는 이유는 그렇다. 이제, 영화의 내용으로 들어가보자. 부동산중개인 티에리와 여동생 가엘, 티에리의 비서 샤를로트, 호텔의 바텐더 리오넬, 약혼한 사이인 단과 니콜. <마음>은 그들 여섯 파리지앵의 삶이 눈 내리는 겨울의 나흘 동안 교차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아파트를 구하는 자와 중개하는 자, 술을 마시는 자와 따르는 자, 도색영상에 솔깃해진 오빠와 그런 그를 혐오하는 동생, 병간호하는 여자와 환자의 아들, 결혼을 앞두고 파경을 맞는 커플. 속마음은 절박하나 겉으론 태연한 척 살고 있는 여섯 사람은 타인에게도 소홀하다. 상대방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조언을 들으면 참견으로 느껴 언짢아하며, 상대방에 대한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그들은 소통 불가의 구덩이에서 허덕이는데, 레네는 그런 상황을 벽, 유리, 커튼의 이미지로 제시한다. 현대인이 은밀한 욕망의 보호막으로 여기는 공간이 기실 개인을 소외시킨다는 것이다. 레네의 근작에 공간의 매개자가 꼭 등장하는 것에서 보듯, 보통 시간과 기억의 작가로 알려진 레네의 요즘 관심사는 공간이 아닌가 싶다. 사람을 묶어주는 반면 단절시키기도 하는 공간의 마술에 주목하면서 레네가 파헤치는 주제는 ‘소외의식으로 가득 찬 현실’이다. 리오넬은 “인생은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천국은 분명 아닌 이곳은 연옥일까, 아니면 지옥일까. 시대의 전경에 나선 지 1세기도 지나지 않아 일상어가 되어버린 소외의 개념, 무관심과 방관 그리고 자기모순과 자아의 분열에 빠진 현대인을, 레네는 문제 삼는다. 그런데 현실을 뛰어넘는 샤를로트의 상상력 그리고 서로에게 다가서기 시작하는 티에리와 가엘에게서 희미한 희망을 보여줄 뿐, <마음>에는 답이 없다. 레네는 <마음>에 관한 인터뷰에서 어려운 문제를 철학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했다. 하지만 그도, 우리도 그것이 각자 풀어야 할 몫임을 알고 있다. DVD는 부록으로 감독과의 인터뷰(19분)와 극중 TV프로그램으로 소개되는 <내 인생을 바꾼 노래>의 풀 버전(28분)을 수록했다. 스틸을 배경 삼아 레네의 음성만 나오도록 해놓은 인터뷰가 특이하다. 오디오 인터뷰만 허용한다는 레네 또한 ‘공공장소에서 개인적 두려움’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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