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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vs 감독] <색화동> 공자관 감독, 스승 이필립 감독을 만나다
정리 강병진 사진 이혜정 2007-11-22

노하우 없이 안 되는 게 바로 에로영화지

<5분의 기적> <오빠의 불기둥> <욕정의 웨딩드레스>를 연출한 이필립 감독은 공자관 감독의 ‘사수’이자 ‘스승’이다. 에로비디오 시장이 한창 호황이던 시절, 두 사람은 감독과 조감독으로 한팀이 되어 <새됐어> <바다속의 자전거> <동거> 등 여러 히트작을 만들었다. 하지만 인터넷의 출현으로 인한 비디오 시장의 몰락으로 그들의 호시절도 막을 내렸다. 클릭영화사를 나와 유호프로덕션을 거쳐 성인화보영상 등을 찍던 이필립 감독은 현재 모 케이블 채널에서 재연프로그램을 연출 중이며, 공자관 감독은 자신이 에로영화업계에 몸담았던 시절을 소재로 <색화동>을 만들었다. 2시간 동안 이루어진 대화 도중 그들은 그때를 회상하기도 했고, 지금의 상황을 아쉬워했으며 언제 올지 모르는 또 다른 에로영화의 호시절을 기약하기도 했다.

공자관: 얼마 전에 시사할 때 연락드렸었는데 안 받으시더라고요. 먼저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이필립: 그때 좀 바빴어.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냐. 우리가 이야기하면 노가리 수준일 거 같은데, 너는 요즘 얼마짜리 방에 사니 이런 거…. (웃음)

공자관: 그냥 옛날이야기하면 되지 않을까요? <색화동>을 보셨으면 옛날 생각도 많이 나셨을 텐데.

이필립: 그때는 뭐, 밤샌 기억밖에 없어서….

공자관: 일단 감독님이 저한테는 사수시잖아요. 처음 클릭에 들어간 것도 <쏘빠때2> 때문이었고.

이필립: 너는 그거 여기저기 다 이야기하고 다니더라.

공자관: 내용도 특이했고, 정말 노력해서 찍었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쏘빠때2>를 보고 나서는 봉만대 감독의 <이천년>도 찾아봤고요. 그때 확신했죠. 에로영화도 연출력을 펼칠 수 있는 곳이구나.

이필립: <쏘빠때2>는 정말 고생해서 찍은 거였어. 헌팅만 수십 군데를 다녔는데, 결국 찾은 곳이 영화에 나오는 눈속의 초가집이었지. 그런데 사람이 아무도 안 살더라고. 수소문해보니 경기도 하남쪽에 있는 주유소 사장이 주인이래. 원래는 그곳이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는 곳인데, 연간소득이 몇 억원은 된다는 거야. 또 보기에는 허름해 보여도 그 집이 황토집이야. 찜질방도 없었을 때였는데, 24시간 동안 촬영을 해도 스탭들이 피곤하다는 이야기를 안 하더라고. 따뜻하게 자고 일어나서 찬물 한잔 마시면 정말 개운했지.

공자관: 그래서 영화에 맑은 기운이 있었군요. (웃음) 그런데 그 영화에 정희빈은 왜 출연한 거예요?

이필립: 억지로 끼워넣은 거지. 그 친구가 찍을까 말까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 일단은 스튜디오에 데려가서 무조건 찍고 본 거야. 남자주인공이 여자를 모델로 사진을 찍다가 섹스를 한다는 설정으로 찍었는데, 나중에 <쏘빠때2>에 넣었지.

공자관: 그때만 해도 촬영이 좀 여유롭지 않았나요? 저는 클릭 나오기 직전에는 하루짜리 영화도 했었는데.

이필립: 제작비의 차이 때문이라기보다는 스케줄 따라 달랐지. <여우와 개>를 만들 때는 37시간 동안 쉬지 않고 찍다가 끝나고 기절하기도 했었잖아. 나는 하루에 7편 찍은 적도 있어. 그거 정말 노하우 없이는 안 되는 거야. (웃음) <새됐어> 찍을 때 기억나? 그때는 정말 스탭이며 배우며 다들 미쳐갔었잖아.

공자관: <새됐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텔에서만 찍었죠. 속초에 있는 백두산 모텔이었는데, 3일 내내 실내에 있으니까 나중에는 정신분열에 폐쇄공포증까지 생기는 것 같았어요. 사람들이 죄다 “나 점점 기분이 이상해져” 이러고.

이필립: 그런데 <새됐어>는 출시한 뒤가 재밌었지. 그때 은빛씨가 아시아나항공 스튜어디스 의상을 입었잖아. 나중에 전화가 왔더라고. 그래서 그때 전량수거했었어.

공자관: 사실 그때 의상 입히면서도 문제가 될까 싶었는데, 색동스카프만 뺄까? 이러면서…. (웃음)

이필립: 뭐, 전량수거하기는 했지만 이미 수익은 다 난 뒤였으니까.

공자관: 그래도 항공사 홍보실에서 에로영화까지 봤던 모양이에요.

이필립: 나름 그때 클릭은 유명했으니까. 이승수 사장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에는 긍정적으로 밀어줬어. <폭풍처럼 바람처럼>에서는 400만원 들여서 몰핑장면도 만들 정도였으니까. 예고편만 따로 찍기고 했고. 마인드 자체가 괜찮았지.

공자관: 시장이 죽어갈 때도 클릭은 다른 회사보다 하루씩은 더 찍었잖아요. 남들이 이틀 찍을 때, 우리는 사흘을 찍었죠. 얼마 전에 핑크영화제 포럼에 참석했는데, 일본쪽 핑크영화 제작비도 우리가 호황일 때랑 비슷하더라고요. 대신 그 친구들은 35mm로 3일 안에 찍는대요. 핑크영화전용관도 90개가 넘고.

이필립: 돈은 된대?

공자관: 그쪽은 2차판권이 세니까, 그걸로 돌리면 조금 짭짤하게 남는 정도래요.

이필립: 비디오 시장이라는 게 배급망이 살아 있으면 우리도 될 텐데, 아니면 노출 수위가 조금 높아지거나.

공자관: 그쪽도 핑크영화는 성기노출이 금지되어 있대요. 음모는 노출이 되지만.

이필립: 우리나라도 음모만 노출되면 다시 한번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비디오는 안 되겠지. 인터넷은 가능할 테고.

공자관: 예쁜 배우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쉬워야 말이죠.

이필립: 그러게. 시장이 커져야 에로배우들도 많아질 텐데 말이야. 사실 우리쪽 배우들이 정이 많이 가는 사람들이잖아. 돈만 보고 옷을 벗는 게 아니라고. 다들 연기를 하고 싶은데 연기가 안 되는 걸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이었어. 돈도 필요하기는 했겠지만, 연기를 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거든. 요즘도 금전적 보상만 된다면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공자관: 클릭의 배우들은 정말 다른 회사에 비해 예쁜 분들이 많았어요. 심지어 달력회사에서도 합작제의가 왔었으니까.

이필립: (하)소연이랑 은빛 데리고 필리핀 갔던 거?

공자관: 네, 그때 제의해온 회사가 그래도 달력업계에서는 메이저급이었어요. 클릭에서도 배우 출연료를 받은 게 아니라 투자를 하는 형식으로 참여했었죠. 사진작가도 꽤 잘나가는 분을 섭외했고요. 필리핀에서 4박5일을 찍는데, 제가 메이킹 겸 매니저 겸 해서 혼자 따라갔었죠. 아, 거기서 진짜 큰 일을 당했잖아요. 산페드로 요새라고 우리나라로 치면 독립기념관 같은 곳인데, 거기서 누드사진 찍다가 필리핀 검찰까지 들어갔었어요. (웃음)

이필립: 사실 그때 이승수 사장이랑 나랑 둘 중 누가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었어. 그런데 나중에 너가 거기 끌려가고 나서 이 사장이 전화를 하더니 막 웃는 거야. “자관이가 경찰서에 있대!” 이러면서. (웃음) 그래서 우리끼리는 안 가기를 잘했다고 했었지.

공자관: 정말 그때부터 야외촬영이 정말 싫어졌어요. (웃음) 또 저는 조감독이니까 장소헌팅을 다 해야 하는데, 매번 사정해야 했으니까.

이필립: 감독인 나도 싫었어. 천막 가지고 가서 가려야 하지. 그런데 또 가린다고 해서 아무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잖아. <오봉순이> 찍을 때 기억나? 전북 변산해안도로에서 찍는데, 경찰이 왔잖아. 우리는 분명 가리고 찍었는데, 아마 천막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으니까 더 수상해 보이기도 했겠지. 결정적인 건 산 위 도로에서는 그 장면이 다 보였던 거야. 어느 정도 해명하고 나니까 경찰도 이해했는데, 이 아저씨들이 또 촬영하는 거 보고 싶어서 가지는 않고 옆에서 미적거리고 그랬지.

공자관: 그래도 우리는 속이고 찍은 건 거의 없었어요. 대신 몰래 찍은 건 많았죠. (웃음) 청담동에 있는 A호텔을 특히 자주 갔던 것 같아요. 거기 15층에 가면 객실에서 한강이랑 도심 야경이 다 보였으니까.

이필립: 사실 깡으로 찍은 것도 많았잖아. 예전에 한번은 압구정 로데오거리에서 찍었는데, 샤넬이랑 구치 매장 있는데 말이야. (이)규영이었던가. 또 천막을 가져다 가리기는 했는데, 지나가던 차들이 서서 천막 틈새로 보더라고. 제작자는 저기 멀리서 구경만 하고 있고. 나중에 찍고나서 차에 오니까 그러데. “이 감독, 저기 위에 CCTV 있었어.” (웃음)

공자관: 한번도 태클이 없었어요?

이필립: 새벽 2시였거든. (웃음) 그런데 정말 압권이었던 건 <바람꽃>을 찍을 때였어. 육교 위에다가 지미집 올려놓고 섹스신을 찍는데, 조금 있다가 가죽잠바 입은 남자 둘이 오는 거야. 잠깐 이야기를 하자고 하는데 뭔가 이상해. 일단 육교를 내려와서 옆에 있는 건물에 접견실이라고 쓰여 있는 곳을 들어갔지. 차를 한잔 주더니 여기가 어딘지 아냐고 묻더라고. 어딘데요? 그랬더니 국가안전기획부래. (웃음) 그러더니 “혹시 이쪽 방향도 찍으셨습니까?” 그러면서 “작업을 다 하신 다음에 전량압수되는 수가 있습니다” 이러면서 지금 철수를 하라는 거야. 그래서 바로 올라가서 철수하자고 했지. (웃음) 스탭들도 처음에는 왜 그러냐고 하다가 저기가 안기부라고 하니까 금세 장비를 빼더라고. (웃음)

공자관: 그래도 힘들기는 했지만, 배운 것도 정말 많았어요. 특히 연기지도에서는 저도 감독님을 따라가던데요.

이필립: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그때가 그리워. 한달에 한 작품만 만들면서도 생활할 수 있었고, 여기저기서 일이 막 들어올 때였으니까. 그때는 의리상 클릭에서만 만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스럽기도 해. 그때 열심히 일해서 한번 땡겼어야 했는데. (웃음)

공자관: 사실 그것도 한때였잖아요. 나중에는 시장 전체가 죽어버리면서 다 나가버렸으니까.

이필립: 내가 클릭을 나온 것도 그 때문이었지. 게다가 점점 촬영시간이 줄더라고. 나중에는 결국 하루까지 갔어. 그래서 프리로 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해서 나왔더니, 이번에는 인터넷에 눌려서 일이 별로 없었지. 그래서 섹시화보영상도 찍고 그러면서 다른 길을 가다보니까, 꼭 성인물이 아니더라도 다른 일이 생기더라고.

공자관: 저는 감독님이 자동적으로 길을 터주셨던 거죠. 감독님이 나가신 뒤에 제가 <위험한 연극>을 연출했고, <야망>도 찍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저한테는 매달 한두편씩 영화를 만든다는 게 어느 순간 매너리즘으로 오더라고요. 보름 놀다가 보름 촬영하고. 이런 공식대로 사니까 이끼가 끼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먼저 사직서를 냈죠. 고생해도 좋으니까 딴 세계를 접해보자 했던 건데, 정말 고생문이 활짝 열린 거였죠. 수중에 남은 게 200만원이었는데, 한달 만에 다 쓰고, 이후에도 돈 때문에 자존심 상한 적도 많았어요.

이필립: 내가 그때 할 수 있을 때, 빨리 35mm로 가라고 했었잖아. 다행히 영화도 만들고 극장에서 개봉도 하니까 잘된 거지. <색화동>이 흥행도 돼야겠지만, 일단 작품적으로 인정을 받았으면 해. 공자관의 개성을 사람들이 알아주고, 그 덕분에 차기작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

공자관: 감독님은 감독님을 닮은 작품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영화라면 흥행이 되어야겠지만, 방송이어도 상관이 없다고 봐요. 무엇보다 감독님 따님이 따뜻한 옷을 입고 학교에 입학했으면 좋겠어요. (웃음)

이필립: 글쎄, 아직은 그런 내공이 안 되는 것 같아. 예전에 한번 해보려고 했는데, 여러 번 엎어졌지. 일단은 공 감독이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을 받아서 나를 좀 이끌어주면 좋겠어. (웃음) 그게 딱히 그림상으로는 안 좋아 보일지 몰라도 그렇게라도 된다면 나로서는 기쁨이 클 거 같아.

공자관: 이왕이면 로또가 한장 붙는 게 가장 좋을 텐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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