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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아름다운 오페라의 이면,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
ibuti 2007-11-30

닛카쓰사는 이해할 수 없는 영화를 만든다는 이유로 스즈키 세이준을 해고했다. 한데 무조건 영화사를 욕할 일은 아니었다. 스즈키 세이준이 1960년대에 만든 대다수 영화를 잘 만들었다고 보기는 힘드니까. 오랜 세월 침묵했던 그는 1980년 이후 십여년에 걸쳐 드물게 정제된 양식과 진지한 주제가 스며든 ‘다이쇼 3부작’을 발표했다. 그리고 다시 긴 시간을 보낸 뒤, 팔순 전후의 노인이 된 스즈키 세이준은 자유로운 영혼이 숨쉬는 작품들을 내놓는다. 탐미적인 경향이 더욱 심화된 게 사실이나, 그것을 강박증이라 부를 수는 없다. <피스톨 오페라>와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은 스즈키 세이준이 아니라면 연주가 불가능한 프리재즈 같은 영화다. 그는 이제 손길이 가는 대로 붓질하듯이, 호흡하는 대로 색소폰을 불듯이, 영화사에 없는 영화를 만들고 있다. 자신의 옛 영화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걸 마다지 않은 작품이 <피스톨 오페라>라면, 1940, 50년대에 시리즈가 나올 정도로 인기를 끈 뮤지컬 <너구리 저택>을 수십년 만에 리메이크한 작품이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이다.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은 스즈키 세이준의 색채 구성에 깊은 영향을 끼친 일본 전통극의 흥미로운 해석에다 전통적인 영화에 대한 여전한 거부감을 결합시킨 작품으로 그의 손길을 거친 원작 뮤지컬은 일본식 오페레타로 부활했다. 가라사 성의 성주 아즈치는 아들 아메치요가 장차 아버지의 미모를 능가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자 그를 영험한 산에다 버리라고 명한다. 아메치요는 산기슭에 위치한 너구리의 숲에서 너구리 공주에 의해 구출되고, 두 사람은 사람과 너구리가 나눠서는 안 될 사랑에 빠지는데,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 아즈치는 기어코 그들 연인을 죽이려 한다.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은 팔순 노인이 지휘한 천진난만한 사랑의 찬가지만, 마냥 즐길 수 있게 호락호락한 볼거리는 아니다. 연기하는 배우들도 감독의 뜻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판이니, 지금도 스즈키 세이준은 이해 가능한 영화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CG로 만들어진 배경엔 수묵화와 유화가 수시로 바뀌고, 그로테스크한 세트는 시대와 공간을 짐작하기 힘들며, 일본의 대중가요와 랩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고전음악이 분위기를 잡는다. 미니멀한 현대식 오페라 무대에 아무리 익숙한 사람이라도 스즈키 세이준의 신통한 시도 앞에선 혀를 내두를 만하다. 스즈키 세이준이 20년간 마음에 품고 있었다는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은 한 오랜 형식주의자가 형식을 파괴해온 자리에서 새롭게 만들어낸 형식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관객은 그의 새로운 세계로부터 고개를 돌릴 테지만, 누군가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낯선 아름다움에 취해 쓰러질지도 모르겠다.

대규모 예산이 집행된 작품답게 DVD의 만듦새가 고급스럽다. 시작부터 끝까지 형형색색의 배경이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영상과 DTS가 지원되는 힘찬 소리는 영화의 신기한 외양을 고스란히 전한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장쯔이와 오다기리 조를 포함한 주요 배우들과의 인터뷰와 2개월간 진행된 촬영현장의 모습을 일목요연하게 담아놓은 정성스런 메이킹필름 ‘이것이 세이준 월드’(47분)가 수록되어 있다. 현장에서 정정한 목소리로 활기차게 움직이는 스즈키 세이준은 수수한 할아버지의 모습인데, 그 수수함과 달리 연출에 임하는 자세는 깐깐한 편이며, 그의 변화무쌍한 연출 스타일 때문에 젊은 스탭들이 당혹해하는 장면도 간혹 보인다. 그리고 본편 영화의 화려한 영상을 보고 제작현장도 그럴 거라 기대한 사람은 실망할 수도 있다. 배우들이 연기했던 곳은 대부분 썰렁한 블루 스크린 앞이었으니 말이다. ‘음악 선택’(41분)은 ‘오페레타’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부록으로서, 23개의 주요 음악장면만 따로 발췌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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