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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위의 CF] 찬바람 부니 올해도 왔구나

꾸준한 캠페인의 본보기, 핫초코 미떼 광고

얼마 전 아침만 해도 가을이라 가을바람인가 싶었는데, 비 한번 내리고 나니 날씨가 갑자기 겨울이 되어버렸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요일 출근, 게다가 영하의 기온과 쌩쌩 부는 강풍이라니. 아, 어찌나 최악의 조합인지. 주 6일 근무 보장하라며 투덜투덜대는 출근길, 춥다 추워. 움츠린 어깨에 따끈한 핫초코가 간절하다. 이미 첫눈도 내려버린 마당에.

해마다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계절에 우리를 찾아오는 따끈한 CF가 한편 있었더랬다. 혹시나 하여 찾아보니 올해도 역시 어김없다. 찬바람 불 때, 핫초코 미떼.

‘미떼’라는 제품이 처음 CF를 선보인 건 2003년이었다. 이때는 예쁘장한 여자애가 적당히 잘생긴 남자애를 짝사랑하는 내용으로 사랑의 감정이 어쩌고 하는 그저 그런 ‘달달한 초콜릿류’의 CF였다. 그러던 이 제품이 2004년부터 ‘찬바람 불 때, 핫초코 미떼’라며 아주 자연스런 가족 일상의 한순간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핫초코 하면 떠오르는 따뜻함과 부드러움에 착안해 가족간의 어색한 순간을 풀어주는 따뜻한 매개물로 제품을 등장시키는 정겨운 CF를 내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벌써 4년째다. 그나마 한 1년쯤 동일한 컨셉을 유지하면 ‘오래간다’는 평을 듣는 다이내믹 코리아 광고계에 일관된 컨셉으로 이렇게 꾸준히- 물론 겨울 한철이라고는 하지만- 브랜드를 쌓아올리는 광고 캠페인이 있다니 무척 대견하지 뭔가.

2004년, 엄마와 딸 사이란 게 늘 그렇듯 별것 아닌 모녀 사이의 한랭전선, 딸이 내미는 핫초코 한잔에 서서히 분위기가 풀린다. 2005년, 추운 겨울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밤 늦게 귀가하는 딸을 기다리는 아빠. 움찔하는 딸에게 핫초코를 내밀며 ‘안 춥냐’라고 묻는다. 훈훈해라. 2006년, 아마 이 CF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외국인 남자친구를 데려온 딸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어색하기만 한 가족들. 핫초코를 마시며 정적을 깨고자 ‘하우 올드…’라고 물으며 다시 한숨 쉬는 오광록의 연기가 웃음을 자아냈었다. 그리고 올해 2007년 새로이 선보인 CF는 엄마를 손가락으로 부려먹으며 냉랭하게 구는 아들에게 아빠가 핫초코를 가져다주며 ‘내 여자 힘들게 하지 마라’라며 의외의 한소리를 하는 순간을 잡아냈다. 마지막은 베란다에서 다정하게 핫초코를 마시는 부부로 마무리. 큰 웃음은 아니지만 기분 좋은 피식거림과 함께 역시 따뜻한 핫초코 한잔 생각나게 만든다.

4년째, ‘찬바람 불 때’와 ‘가족’이라는 코드를 놓치지 않고 있다. 절대 큰돈 들이지 않는 자연스런 톤과 따뜻함도 잃지 않고 있다. 게다가 부드러운 거품이 얹힌 제품 컷도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다. 이건 웬만한 확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로 이리 오래도록 같은 톤을 유지하며 캠페인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찬바람 불 때’라는 컨셉이 누가 언제 핫초코를 마시는가에 대한 정확한 인사이트를 찌르고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감성적으로 보는 사람을 훈훈하게 만들어 핫초코 한잔 생각나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찬바람과 가족간의 싸늘한 순간을 연결시켜 핫초코로 따뜻한 순간을 되돌려놓는 절묘함이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그리고 한 가지 더하자면 광고주의 뚝심에 박수를 보내야 마땅하다(실은 이게 제일 힘든 부분이다).

광고계는 지금이 무척 바쁜 한철이다. 온갖 광고주가 여러 대행사들을 불러 2008년 광고계획에 대해 경쟁을 시키는 PT 대목 시즌이기 때문. 첫눈 오는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몇주째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매년 대행사가 바뀌고 새로운 것을 내놓아야 하는 광고쟁이 신세에서 비춰볼 때 4년이 넘게 꾸준한 ‘미떼’가 그래서 더 부러운지도 모르겠다. 겨울이 되면 늘 하얀 백곰 가족이 나오는 코카콜라 CF를 자연스레 기대하는 것처럼, 겨울이 오면 또 어떤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줄까 기대되는 CF가 우리나라에도 하나쯤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오늘 밤 또 찬바람이 분다던데, 핫초코 한잔 끓여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