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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희생자 또는 공범, <하류인생>

SBS 12월9일(일) 새벽 1시5분

1950년 자유당 말기, 고등학생 태웅(조승우)은 건달세계에 입문한다. 4.19, 그는 첫사랑과 해후하고 결혼한다. 5.16, 군사정권이 폭력조직을 일소하겠다고 나서자, 그는 영화제작자로 직업을 바꾼다. 하지만 사업이 실패를 거듭하며 빚더미에 오르고 결국 군납업자가 된다. 영화의 마지막은 1970년 10월 유신. 배신과 좌절, 분노와 폭력으로 일관하던 그의 삶은 다음과 같은 문구로 미래를 예견한다. “태웅은 그 후에도 몇년을 더 그 일에 종사하다가 1975년에 전업했다. 그의 인생이 맑아지는 조짐이었다.” 그러나 궁금한 건 영화가 특정 시대에서 영화를 멈춘 이유이며, 갑자기 그의 인생에 어떤 도약의 지점을 암시하는 점이다. 1975년 이후 이 땅은 더 큰 아픔에 휩싸이게 된다. 태웅의 선택을 뚜렷한 가치판단 없이 시대의 부산물로 바라보던 영화가 돌연 그의 맑아짐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류인생>

임권택의 99번째 작품인 <하류인생>은 위에서 보여지듯, 격변의 역사를 살아낸, 아니, 살아냈기보다는 그 역사의 풍랑에 함께 요동친 개인의 운명을 담아낸다. 영화는 역사와 개인이 충돌하는 순간, 말하자면 역사에 개인이 개입하는 순간이 아니라, 그 둘을 병렬시킨다. 그리고 종종 이렇게 말하고 싶어한다. 깡패 같은 시대적 상황과 그 시대를 깡패로 살던 남자는 결국 똑같은 것 아닌가. 어쩌면 전자의 비열함이 후자의 비겁함보다 더 나쁘지 않은가. 임권택은 한국 격변의 현대사를 빈번한 점프 컷, 빠른 전개로 응집한다. 빈번하게 등장하는 문어체의 대사로 시대상황에 대한 비판적인(비판이기보다는 체념적인) 발언을 덧붙이고 자막을 통해 특정 시대와 사건을 소환한다. 여기서 태웅은 시대의 희생자와 공모자라는 정체성 사이를 불안하게 오가는데, 그건 매 순간 역사의 흐름을 각성하고 의식한 자의 모습이 아니라 그 불행한 흐름에 떠밀리는 자의 모습이다. 하지만 영화는 종종 이미 거기에 존재하는 대문자 역사 앞에 나약한 개인의 삶을 말 그대로 그저 끌어다놓은 뒤, 그 어느 쪽으로도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문제는 태웅이 시대를 사는 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태웅의 선택과 내적 변화를 보여줌에 있어서 이상하리만치 상투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영화는 깊이 보여주는 대신, 자꾸만 설명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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