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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위의 CF] 대선도 재미없고, 대선 광고도 재미없고

감동을 주는 CF도 감동을 주는 후보도 없으니 아쉬울 따름

아침 출근길마다 지하철역 앞에서 ‘기호 X번 OOO입니다’라는 인사소리와 유치한 가사들로 무장한 대선송들이 시끄럽게 울려퍼지는 것을 보니 대선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오긴 했나보다. 그와 함께 대선 후보들의 CF 경쟁도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동영 후보가 현재까지 2편의 CF를 내놓았고, 이회창, 문국현 후보가 각각 한편씩 선보였다. 뭐, 때가 때이니만큼 대선 광고들이 어떠한지 한번 슬쩍 살펴보고 가자(근데 이런 글 쓴다고 선거법 위반으로 잡혀가는 건 아니겠지?).

이명박 후보 대선광고

문국현 후보 대선광고

우선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이명박 후보의 대선 CF. 첫편은 위장광고니 아니네 논란이 많았던 바로 그 국밥집 CF였다. 몇 백억원대 자산가인 이명박 후보가 국밥집을 찾는 모습을 통해 서민적인 면을 부각하면서도 욕쟁이 할머니의 입을 통해 서민들의 경제에 대한 바람을 담아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다른 후보들이 취하고 있는 잔잔한 음악이나 내레이션의 조합과 차별화하는 괜찮은 선택이었다. 게다가 ‘경제’라는 가장 실제적이고 명확한 컨셉이 보인다. 그러나 청계천을 무리하게 대사에 우겨넣어 의도적임이 너무나 빤히 보이고, ‘배고픕니다’라는 카피는 어쩐지 히딩크 감독의 패러디 같은데다, BBK 의혹도 해소되지 않은 이 마당에 애초 의도와는 달리 다른 의미가 연상되어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를 불러올 우려도 크다. 무엇보다 연출의 실패랄까. 국밥을 너무 맛없게 드시는군요, 이명박 대선 후보자님. 뒤이어 나온 ‘살려주이소’편은 힘들고 찌든 얼굴의 서민이 절절히 경제를 살려달라 애원하고, 이명박 후보가 꼭 경제를 살리겠다는 그런 내용. ‘경제’라는 명확한 컨셉을 초지일관 내세우고 있는 것은 칭찬할 만하고 표정을 통해 어느 정도 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이다. 하나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부분도 마찬가지인데 마치 현재의 한국을 온 나라가 기아로 굶주리는 빈민국처럼 그려내는 동시에 ‘살려달라’는 애원을 통해 이 후보를 메시아적인 존재로 상정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를 살리는 건 정부의 몫도 크지만 국민과 함께 해나가는 것이지 누군가 짠 하고 나타나 도토리를 쌀로 바꾸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정동영 후보의 대선 CF는 감성에 호소하는 전형적인 대선광고다. ‘안아주세요’라는 노래와 함께 행복한 가족을 만들겠다는데, 역시 앵커 출신답게 화면 연기나 표정은 아주 좋으시더군. 그러나 도대체가 어떻게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것인지 내용이 없어 맨송맨송하니 싱겁다. 노래나 화면이나 전체적인 느낌은 나쁘지 않은데, 마음을 움직이는 임팩트가 없다. 안 그래도 정동영 후보가 차별화가 안 된다는 지적이 많아 좀더 날이 서 있는 CF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너무 소극적인 대처였다. 게다가 어쩐지 예전 LG 기업 PR CF를 다시 보는 느낌도 들고 말이죠. 정동영 후보의 어릴 적 사진부터 현재까지 후보의 모습을 모아 만든 사진편 역시 비슷한 톤을 유지한다. 인물에 대해 강조하고 그의 인간적인 면을 내세운 점은 분명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충분하지만, 두편 다 ‘어떻게’라는 부분이 쏙 빠져 있는 것이 아쉽다.

이회창 후보의 대선 CF는 경제만 강조하는 이명박 후보와 대립각을 세워 사회 각 계층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국민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이회창 후보가 경제도 교육도 사회도 반듯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내용. 특히 대선 출마로 많은 것을 잃었지만 국민의 마음을 알았다며 출마 자체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역시나 무난한 CF긴 한데 구구절절 각층의 에피소드를 길게 보여주기보다는 이회창 후보쪽에서 내세우는 ‘반듯한’이라는 쪽을 더 강조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알바 뛰는 가장과 교단을 지키는 선생님과 소녀가장의 이야기는 너무 많이 본 듯 식상하고 안일하여 어느 후보의 대선 CF에 가져다 붙여놔도 될 법하다. 게다가 내레이션이 너무 예스럽지 않나요?

마지막으로 문국현 후보의 대선 CF. 각 후보의 대표색이 배경으로 깔리며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 연이어 나온다. 습관처럼 후보자들이 쓰는 ‘존경하는’이 제대로 된 존경이었나 하는 문제제기를 하며 한나라당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국민이라는 글자가 기울며 눈물 한 방울 뚝 떨어지는 그래픽까지 더해 이번 대선 CF들 중에서 가장 차별적이고 아이디어가 넘쳤다. 그러나 후반부 문국현 후보에 대해 나열한 설명들이 오히려 문국현 후보에 대한 통일된 이미지를 형성하는 걸 방해하고 있다. 정치경력이 짧아 사람들이 후보에 대해 잘 모른다는 고민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나열식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다. 한방이 중요한 것이 CF인 것이다. 모든 대선 CF들이 비슷비슷 감성적인 노선을 취하고 있지만 정작 마음을 움직이는 한방의 힘을 가진 수작을 꼽기가 어렵다는 것은 많이 아쉽다. 좀더 재미있고 의미있는 광고를 보고 싶었단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쉬운 것은 아무리 곱씹어봐도 도무지 자신있게 한표를 던질 인물이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으, 머리야.

뭐 어쨌든, 투표는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