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오마이이슈
[김소희의 오마이이슈] 검은 바다
김소희(시민) 2007-12-17

화면에 비친 태안반도는 흡사 검고 굵은 매직펜으로 해안선을 사정없이 다시 그린 듯했다. 긴급히 달려간 자원봉사자들이 펼쳐놓은 흡착포는 가늘고 무력했다. 기름을 빨아들이는 유조차는 모래사장에 들어갈 수 없고, 기름을 잘게 쪼개는 유처리제는 권장량을 넘으면 독성 피해가 기름보다 더 크기 때문에 쓸수 없다고 한다. 현재로서 유일한 방법은 손으로 일일이 닦고 떠내는 것뿐이다. 속수무책이다.

이번 사고는 만리포에서 북서쪽으로 10km 떨어진 바다에 정박 중이던 홍콩의 대형 유조선과 예인선에 끌려가던 삼성의 대형 크레인이 충돌하면서 빚어졌다. 예인선의 로프가 끊어지면서 크레인을 실은 부선(자기동력 없이 떠 있는 배)이 갈 길을 잃어 빚어진 사고다. 사고 유조선은 이중선체의 의무를 지키지 않았고 예인선의 로프는 높은 파도로 끊어졌다니, 어처구니없다. 이번에 유출된 원유는 최악의 해양오염 사고였던 1995년 여수 앞바다의 씨프린스호 사고 때와 비교하면 두배나 많은 1만500톤가량이다.

전국 각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몰려들어 맨몸으로 기름을 거둬내고 있지만, 40km에 이르는 해안은 이미 죽음의 바다가 됐다. 회수된 기름은 유출량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경기도로 전라도로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만리포는 기름으로 뒤덮였고, 천수만은 가쁜숨을 몰아쉬고 있다. 개펄과 어류의 자연산란장과 각종 해산물 양식장이 하루아침에 망가졌다.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도 잃게 생겼다. 복구에는 최소 10년이 걸리고,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기름 찌꺼기는 영영 제거할 수 없다고 한다. 어민들과 주민들의 피해는 돈으로 추정하기도 어렵다.

현지를 다녀온 이들은 입을 모아 ‘장비 준비’와 ‘안전 원칙’을 외친다. 몸 전체를 감싸는 옷과 장화, 장갑, 마스크는 필수다. 원유에는 각종 휘발성 화학물질이 포함돼 있으므로 호흡기로 침투하지 못하도록 특수 마스크를 반드시 써야 한다. 귀마개·비옷·방한복·방한모자·특수안경도 준비하면 좋다. 기름을 제거하다 두통과 어지럼증,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증상이 생기면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찬바람을 쐬는 게 좋다. 봉사단체에서 식사와 음료를 제공하지만 사람들이 몰릴 수 있으므로 각자 도시락이나 마실 물을 준비하는 게 좋다. 개인이든 단체든 사전에 태안군청 상황실에 문의해 일손이 필요한 곳을 배정받는 것이 필요하다(문의: 041-670-2645~9).

앞으로 서해바다에서 ‘그이’를 볼 수 있을까? 그이는 충청도 말로 게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