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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티켓 값이라도 올려주시면 안될깝쇼
강병진 2007-12-25

제협, 영화노조 등이 극장요금 인상 요청… 부가판권 붕괴로 인한 위기감에서 나온 자구책

극장요금이 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5월,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관람료 인상 추진설과 지난 7월 영화발전기금 징수시행에 앞서 불거진 극장요금 인상 논란에 이어 올해로 세번 째다. 7천원을 극장요금의 마지노선으로 여기는 네티즌들은 여전히 반발하고 나섰지만, 이번 논란은 지금껏 극장요금 인상을 제기하던 극장이 아니라 영화 제작자들쪽에서 먼저 제기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제작자들은 요금인상으로 인해 극장관객 수가 줄어든다면 그것마저 감수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극장요금 인상을 우려하는 것은 관객들만이 아니다.

지난 12월17일, 한국영화제작가협회를 비롯해 한국영상투자자협의회, 한국영화산업노동조합 등 7개 영화단체는 영화인회의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 영화산업의 미래를 위한 제안’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 제안에서 영화인들은 “불법복제, 불법 다운로드를 통한 영화의 유통이 근절되어야 한다”는 것과 함께 “현재의 관람요금 구조로는 도저히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에 영화 관람요금이 현실화돼야 한다”고 요청했다. 또한 같은 날 저녁에 2007 여성영화인축제에 참석한 영화인회의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이 “7년간 한번도 올리지 않은 관람료를 약 1만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며 “영화인들의 선언에 동참해달라”고 부탁했다. 극장요금을 둘러싼 영화인들의 제안은 발빠르게 온라인 기사로 타진됐고, 역시 네티즌은 격렬한 찬반논쟁을 벌였다.

“200만이 들어도 손해…극장요금이라도 올려야”

사실 극장요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말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영화인들은 현재 7천원으로 책정된 극장요금이 7년 전에 정해진 가격이며 “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 동안 소비자물가지수는 11.4%가 증가(연평균 2.3%)한 것에 반해 영화 관람요금은 같은 기간 동안 3.9%밖에 인상(연평균 0.8%)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일례로 최근 재상영된 <더티 댄싱>이 입장료를 20년 전 가격인 3500원으로 정한 것을 보면, 극장요금은 20년 동안 2배밖에 상승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제작자들이 극장요금 인상을 요청하고 나선 데에는 단지 극장요금이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인들은 “지금 한국영화의 위기가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준동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은 “부가판권 시장이 죽어버린 탓에 총수익의 80%를 극장에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관객에게는 너무나 죄송한 일이지만 영화계가 이 위기를 안고 가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해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필 한국영상투자자협의회 회장 또한 “전국관객 100만명 정도면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수익이 나야 하는데, 지금은 200만명이 들어도 손해를 보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요즘 영화에 투자한다고 하면 바보 소리를 듣는다. 다들 불확실한 시장에 목을 매고 있는 것 아닌가. 어느 정도는 수익을 확신할 수 있는 토대가 있어야 떠나는 투자자들을 잡을 명목이 설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인들은 저마다 1천원부터 3천원까지 다양한 인상폭을 이야기한다. 박경필 회장은 “7천원을 놓고 보았을 때 투자 사이드쪽으로 들어오는 수익은 2800원이다. 3천원이 인상된다면 대략 4천원이 수익이 될 것이고 그렇다면 전국 100만명이 들었을 때 약 40억원의 수익이 남게 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상황을 감안할 때 1천원 이상의 요금인상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게 대다수의 이야기다. 이준동 부회장은 “영화수익의 극장 의존도가 80%라고 보면 요금이 15% 정도 인상될 경우 12%의 수익률을 개선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며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팀의 류형진 연구원 또한 “이제 한국시장이 예전처럼 매년 20% 이상 확대될 가능성은 없는 상황에서 700, 800원 이상의 인상 폭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오히려 극장쪽은 눈치보는 입장

“물론 우리도 잘한 게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영화인들은 현 한국영화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손쉬운 방책으로 극장요금 인상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전국관객 200만명으로도 손해를 볼 정도로 제작비가 거침없이 상승한 한편, 안일한 기획으로 영화를 만들어왔다는 것에 대해 반성의 노력을 거듭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극장요금 인상의 키를 쥐고 있는 극장들은 조금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충분히 공감하고 요금인상을 바라는데다 여러 번 검토하기도 했으나 예민하게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역시 가장 크게 우려되는 사안은 전체 극장관객의 감소다. 이상규 CJ-CGV 홍보팀장은 “실제 관객과의 접점에 서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관객의 반발이 전체 파이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요금을 인상하는 것은 극장의 자율적인 권한이더라도 극장들이 협의하여 올릴 경우 ‘담합’을 의심받는 것도 걸림돌이다. 게다가 지난 7월 영화발전기금 징수가 시작되면서 정부가 “극장요금 인상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공언한 것도 극장들이 눈치를 보게 만드는 요인이다. 서울시극장협회의 최백순 상무는 “지금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전방위로 조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결국 누가 먼저 시작하느냐의 문제다. 아마 어디든 먼저 스타트를 끊으면 거기에 따라가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극장요금 인상이 빈익빈 부익부 상황을 초래하는 것도 걱정스러운 점이다. 한 극장 관계자는 “관객이 극장시설을 이용할 가치를 느끼는 거대 블록버스터영화들에만 집중적으로 몰릴지도 모른다”며 “예전에는 좋은 영화는 한두번씩 더 보는 관객도 많았으나 요금이 인상되면 그런 일도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영화의 위기의식 반영하는 인상 논란

극장요금을 올리는 일은 언제나 딜레마를 안고 있다. 영화산업이 성장세에 있다면 극장요금을 인상해도 그에 대한 반감을 단기간에 흡수할 수 있지만 이때는 가격인상에 대한 명분이 없다는 게 또 다른 반감을 낳는다. 일각에서는 이번의 논란을 두고 “차라리 슬그머니 올리거나, 요금 인상을 요구하는 몇몇 블록버스터영화들의 요금을 올려 책정한 뒤, 관객이 인정하면 그와 비슷한 영화들을 그 정도의 가격으로 밀어넣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 영화인은 “그러한 딜레마에서 명분을 찾을 수밖에 없는 제작자들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동안 주로 몇몇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영화들에 의해 요금인상이 주도되거나 극장들이 요구한 것과 달리 제작자단체 중심으로 이 같은 논란이 벌어진 것은 단순히 매출확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진짜 위기의식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이야기다. 어쩌면 요금 인상을 둘러싼 찬반양론 이전에 이러한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 한국영화의 위기를 본질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급선무일지도 모른다. 한국 영화계는 2007년의 마지막을 여전히 우울한 대화로 보내고 있다.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

“우리가 엄청나게 큰돈을 벌겠다는 게 아니다”

-여성영화인모임에서 한 이야기가 논란의 중심이 된 것 같더라. =사실 우리로서도 조심스러운 문제다. 그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은 다같은 영화인이고 식구들이니까 한 것이다. 그런데 이춘연이가 극장요금을 1만원으로 올리려고 하고 있다는 식으로 기사가 났더라. 나야 1만원이면 좋겠지만, 그게 내 마음대로 결정할 문제는 아니지 않나. 다만 현재 한국 영화계 현실을 감안해서 관객분께 도와주십사 하고 제안을 하려 했던 것이다.

-극장요금 인상과 관련한 논란은 쭉 있어왔지만, 제작자쪽에서 내놓은 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동안 생각은 있었지만, 스크린쿼터 투쟁 등 여러 가지 사안이 있어서 제안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더이상 잠자코 있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우리도 잘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잘못한 것은 고치고 더불어서 불법 다운로드도 단속하고 부가판권 시장도 다시 재건하겠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관객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는데. =물론 우려는 되지만 각오를 하고 가야 할 부분이다. 언제까지 눈치를 볼 수는 없다. 영화를 산업이라고 지칭하면서 정작 극장요금은 수도요금이나 전기요금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문화예술이라고 해서 가둬두기도 한다. 영화가 산업이면 우리는 제조업자인데 움직임을 축소시키는 건 무리라고 본다.

-극장요금 인상을 위해 영화인들이 가진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사실 없다. 이게 일단 협의해서 될 일은 아니지 않나. 우리로서는 허공에 대고 외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엄청나게 큰돈을 벌고 싶다는 건 아니다. 다만 150만, 200만이 들어도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돈이 남지 않는 건 산업 자체가 죽을 수 있기 때문에 한 제안이다. 적어도 꾸준히 산업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은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극장요금 인상은 최소한의 부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