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영화읽기 > 한국영화 후면비사
[한국영화 후면비사] 천년 후엔 사랑도 죽음도 스크린으로
이영진 2008-01-03

인간의 달착륙과 TV 공세에 충격받은 1970년대, 충무로가 상상으로 써내려간 영화의 창세기

“달 보러 남산 가세.” 1969년 7월21일. ‘가슴을 죄는 TV 시청’을 위해 남산 야외음악당에는 무려 10만명의 서울시민이 운집했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두눈으로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낙도와 산골 사람들도 “TV를 보겠다”고 도시로 향했고, 심지어 “텔레비전 구경을 위해 관광객을 싣고 가던 버스가 전복되는 사고가 벌어지기도 했다”. ‘인간이 달을 걷고 돌아오는’ 그 역사의 순간을 두눈으로 확인하기 위한 열망 때문에 거리와 극장은 텅텅 비었다. 경찰과 신문사는 달 착륙 문의전화로 마비상태였다. 닐 암스트롱이 세기의 영웅으로 떠올랐고 양복점, 주점, 다과점, 음식점 등은 ‘아폴로’로 상호를 바꿨다. 심지어 “보행을 뜻하는” ‘11호 자가용’이라는 유행어까지 나돌았다.

“지금으로부터 천년 후의 영화란? 전쟁도 영화로 하고, 연애도 영화로 한다. 그뿐인가. 정사까지 영화를 이용해서 수정하는 천년 후의 남과 여를 픽션으로 구경해보자.” 1970년 3월 <영화잡지>에 실린 ‘스크린의 혁명’이라는 기사의 경천동지할 미래선언 또한 달나라 구경의 영향 탓이다. 인공태양이 떠 있는 수중도시 한강구에서 살고 있는 100살 먹은 조선달의 하루를 뒤쫓은 이 픽션의 상상력은 끝간 데 없다. 조씨에 따르면 30세기의 영화 촬영스탭들은 김포공항에서 원자력 비행기를 타고 달나라 로케이션을 간다. 옛 지구의 모습을 찍기 위해서다. 그곳 월세계(月世界)에는 지구에서 쫓겨난 원시인들이 있다. 조씨는 NG를 허용하지 않는 로봇 감독과 로봇 배우들을 구경하면서 비타민 한알로 하루 식사를 마친다.

이뿐이랴. 그가 전하는 3000년대의 러브스토리도 파격적이다. 서로 모르는 남녀가 이상형을 필름으로 찍어서 보내면 연애상담소의 컴퓨터가 궁합을 통보해준다. 두 연인이 있다 치자. 먼저 발가벗고 스크린 앞에 앉는다. 영화 속 섹스장면이 정점에 오르면, 연인의 가슴에 꽂힌 심파기가 작동하고, 서로의 국부에 달린 ‘정수기’가 정액을 실어나른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최종적으로 이동 유리병 속에서 정자와 난자가 결합 수정한다. 출산의 고통은 있을 수도 없다. 심지어 “고통없이 죽을 수 있는” 스크린 안락사까지 제시한다. 그러니 이렇게 말해도 좋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영화로 해결한다. 1천년 뒤의 일이라는 유예조건을 전제로 했지만, 어쨌든 그런 꿈같은 세상이 오고야 만다는 것이다.

믿기는가. 허무맹랑한 거짓부렁이라고만 할 순 없다. 봉이 조선달이 상상을 쏘아올린 지 이제 30년. 테크놀로지는 그의 방통한 통찰력을 이미 실현했거나 근접하고 있다. 1971년 7월 <영화잡지>에 게재된 ‘10년 후에는 이렇게 된다’는 기사를 살펴보자. 인스턴트 시대 개막과 함께 집집마다 영화관이 설치된다는 기사의 추정은 VTR로 이미 실현됐다. 발가락으로 단추만 누르면 안방에서 자기가 원하는 장르의 영화를 볼 수 있게 된다는 가상은 IPTV로 발전 중이다. “장난감처럼 사용할 수 있는” 무비TV는 테이크 아웃이 가능한 내 손 안의 ‘DMB’를 예언하고 있다. “군대에 있을 때 상관으로부터 매를 맞거나” “알몸으로 목욕탕에 들어갔을 때의 모습을 기록할 수 있다”며 휴대폰 동영상까지 내다본다.

신기술에 인간이 넋을 빼고 있는 사이 친구를 잃은 애완견들을 위한 특수 영상도 개발될 것이라는 추측은 아직 황당하다. 미래에도 만년필이나 전자계산기를 여전히 쓰고 있을 것이라는 모순도 이따금씩 드러낸다. 달에서 가져온 암석으로 1년에 300편 이상 출연이 가능한 스타 로봇을 만든다는 것도 지나치다. 하지만 “손오공이 머리털을 뽑아 후 하고 불면 많은 손오공의 분신이 탄생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스타 로봇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애니메트로닉스 기술을 활용한 컴퓨터그래픽을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앞서 유비쿼터스 컨버전스 시대를 일찌감치 예감한 지적들 또한 가파른 속도의 테크놀로지 추동이 인간 욕망의 연장(延長)과 무관하지 않음을 일러준다.

하지만 이런 투의 기사들이 일부러 간과하는 게 있다. 새로운 창세기의 주인이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상상으로 써내려간 영화의 창세기는 바람일 뿐, 실은 영화의 묵시록이다. 대신 그 자리엔 “번영과 문명화를 상징하는” TV 제국이 들어섰다. 1970년 이후 영화잡지들의 지면 또한 TV라는 새로운 영역에 지분을 몽땅 내주다시피 한다. 방송사들이 드라마 제작 경쟁을 벌이기 시작하던 무렵 공채 탤런트 모집 공고에 5천명 이상이나 되는 지원자가 몰리고, 충무로 밥 먹던 이들 또한 먹이 찾아 이동하는 철새떼처럼 안테나를 찾아 떠나던 1970년대 초. 미디어와 스펙터클의 교합으로 시작된 TV의 위세는 ‘그후로도 오랫동안’이었고, 영화는 빼앗긴 지위를 되찾기 위해 안간힘이었으나 매번 불발에 그쳤다.

참고; <영화잡지> <한국일보> <동아일보> <한국현대사산책> <스물한통의 역사진정서> <우리방송 1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