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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덜 섹시하고, 더 멍청하게

로널드 설의 만화를 토대로 만든 여섯 번째 극장용 영화 <세인트 트리니안>의 후퇴

(1993년 <슈퍼마리오>에서 시작해) 처음으로 컴퓨터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때, 많은 비평가들은 할리우드의 영감의 샘이 마침내 말라붙었노라 조소를 금치 못했다. 그러나 사실 모든 종류의 그래픽아트는 언제나 영화세계에 영감을 부여해왔고, 그건 ‘망가’(漫畵)가 풍요로운 영화적 소재를 제공해온 아시아에만 국한한 것은 아니다.

좀더 생각해보자면, 그런 방식의 영화화가 아시아나 할리우드에서만 제한적으로 행해진 것 또한 아니다. 얼마 전 영국에서는 1940년대 처음 등장한 카툰 캐릭터를 토대로 한 영화가 한편 개봉했다. <이상적인 남편>(an Ideal Husband)과 <임포턴스 오브 빙 어니스트>(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 같은 문학 각색물로 잘 알려진 올리버 파커와 <스파이스 월드> 같은 팝문화 코미디를 제작한 버나비 톰슨이 공동으로 감독한 <세인트 트리니안>(St. Trinian’s)이 바로 그 작품이다.

<세인트 트리니안>은 지금은 87살이 된 로널드 설(Ronald Searle)의 만화 캐릭터들을 소재로 만든 여섯 번째 극장용 영화다. 설이 창조해낸 건 무정부주의적이고 폭력적이고 술주정뱅이에 골초인 여학생들이 다니는 영국 여학교의 이야기다. 2차대전 이후에 발간되기 시작한 각각의 시리즈에서, 체육관용 슬립에 스타킹을 입고 밀짚모자를 쓴 막대기 같고 부랑아 같은 캐릭터들은 당대의 사립여학교를 조롱하고 전후 영국 사회의 보수적인 윤리적 분위기에 도전했다.

2007년 극장판 <세인트 트리니안>

<세인트 트리니안> 오리지널 만화

만화들이 커다란 히트를 기록하자 어떤 성직자들은 캐릭터들이 영국 젊은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954년에는 첫 장편영화이자 여전히 시리즈 중 최고인 <세인트 트리니안의 미녀들>(The Belles of St. Trinian’s)이 개봉했다. 설의 만화들이 내러티브를 갖춘 줄거리 만화가 아니라 각각의 개별적인 단편이었던 터라 영화의 스토리 라인 역시 독창적이었다. 감독들은 (섹시한 상급생이나 ‘플래쉬 해리’라고 불리는 런던내기 암시장 점원 등) 오리지널 만화에는 등장하지 않는 몇몇 새로운 요소들을 첨가하기도 했다.

시리즈로 기획된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세인트 트리니안> 역시 1957년부터 80년까지 네편의 영화로 더 만들어졌고, 50년대에 이미 연재를 멈추었던 설의 원작보다는 영화가 만들어진 당대를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오랜만에 만들어진 2007년도 극장판도 현대 영국 사회와 관련한 아이디어들을 업데이트하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서가 조롱하던 엄격한 영국 사회가 이제 완전히 사라졌고, 지금 영국 사회에는 사회적 구조라고 부를 만한 게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대신에 지금 유스 컬처(youth culture)의 가장 멍청한 단면만을 찬양한다. 1950년대 첫 세편의 영화가 등장했을 때, (패션과 음악 등을 포함한) 유스 컬처라는 개념이 막 시작되던 참이었다. 그러나 지금 유스 컬처는 주류문화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순수한 무정부주의적 창조물로서 세상에 나왔던 설의 소녀들은 이제 메인스트림 소비문화에 흡수돼버렸다.

사실 영화라는 매체는 그들이 손대는 원전이 무엇이든 간에 그보다는 부드러워진다. 더욱 다양하고 광범위한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다. 그러니 <세인트 트리니안>의 새로운 환생에 그리 놀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다(영화의 조잡한 색감, 게으른 연출과 허약한 대본은 또 다른 문제겠지만). 그러나 분명히 뭔가가 빠져 있는 건 사실이다.

1950년대와 60년대의 오리지널 영화들은 당대의 캐릭터 배우와 코미디언으로 가득했다. 그들은 요새처럼 TV에서의 즉각적인 인기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아니라 보드빌과 라디오에서 오랫동안 그들 분야를 완벽하게 단련해온 재능을 가진 이들이었다. 영화 <세인트 트리니안>에는 캐릭터 배우가 전혀 없다. 영국 연예산업이 70년대에 사망한 예술가들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배우를 거의 찾지 못한 탓이다. 이번처럼 그들의 부재가 뼈아픈 때도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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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김도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