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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란 이런 것, <오노레 도미에: 파리의 풍자꾼>
김유진 2008-01-04

<철도열차 안에서>

프랑스 대혁명 이후,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이행하는 정치적 과도기였던 1800년대에 일생을 보낸 오노레 도미에는 사실주의 화가, 판화가 혹은 풍자만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는 주요 작품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그의 석판화 작업 위주로 160여점의 작품이 전시되며 이는 모던 파리, 부부와 가족, 여행과 여가, 정치 풍자 등 네 가지 주제로 나뉘어 소개된다.

전시 기획에서 보듯 오노레 도미에는 타락한 정부관료의 모습부터 평범한 시민들의 생활까지 정치적이면서도 일상적인 소재들을 폭넓게 작품의 주제로 삼아 일간지와 잡지에 게재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서로의 주머니를 뒤지면서 환대하듯 껴안고 있는 두 고위 관료의 모습이나, 국왕의 살찐 얼굴을 서양식 배로 묘사한 캐리커처 등은 과감하면서도 위트있는 도미에의 풍자 방식을 잘 보여준다. 그의 풍부한 표현력은 작품을 좀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요소를 제공하는데, 그림 한컷으로 작품 속 인물의 신분부터 성격까지 설명할 수 있을 정도다. 이러한 그의 정치 풍자화는 서민들의 민심을 대변했지만, 일간지와 잡지에 게재한 몇몇 판화작업은 국왕과 정부를 모욕했다는 죄를 인정받아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작품의 소재가 파리 시민의 다양한 생활상으로 확장된 것은 이때부터다. 제목부터 흥미로운 <파리지안의 유형> <목욕하는 사람들> <결혼에 관한 풍경> <셋방 사람과 집주인> 등 연작 시리즈에서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바라보는 도미에의 유머러스한 시선이 돋보인다. 흉흉한 민심으로 열차의 1등석 객실을 노리는 강도가 기승을 부리자 도미에는 <철도열차 안에서> 연작을 통해 총을 들고 상대방을 흘끗거리는 1등석 객실 안의 두 사람을 우스꽝스럽게 그려낸다. 강도가 무서워 빽빽한 3등석에 몸을 비집고 있는 한 아저씨에게는 튀어나올 듯한 눈과 함께 “질식해 죽을 위험은 있지만 암살될 염려는 결코 없는 삼등 객실 만세”라는 문구를 선사하는 식이다. 작품 하단에 짧게 첨부하곤 했던 짧은 글은 이미지가 비꼬는 상황을 또 한번 비꼬면서 이중적인 풍자를 보여준다. 부조리한 상황에서 능청스럽게 극단의 긍정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도미에의 시선이다.

사실주의적인 풍자화를 판화라는 형식으로 재현했다는 점에서 도미에의 작품들은 이전 세대의 작가인 영국의 윌리엄 호가스나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고야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내용적으로 보자면 정치보다는 사회의 다양한 계층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았던 호가스와 참혹하고 강렬한 이미지로 권력의 부패와 서민들의 처절한 생활상을 섬뜩하게 묘사한 고야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셈이다. 19세기 정치와 사회를 아울렀던 도미에의 작품세계는 신랄하게 대상을 비판하면서도 끝까지 유머를 잃지 않았다. 만화사와 미술사를 가로지르는 오노레 도미에의 작품들이 그 어떤 역사책보다도 소중한 것은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