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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서 더 아름다운 게이샤의 인생, <게이샤> <사쿠란>
ibuti 2008-01-18

<게이샤>

<사쿠란>

미조구치 겐지가 국내외에서 전성기를 보내던 때 발표한 <게이샤>는 앞뒤로 위치한 <우게츠 이야기>와 <산쇼다유>에 가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미조구치가 만든 대다수 현대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거니와 그의 초기 걸작 <기온의 자매>의 리메이크라고 오해받을 정도로 인물과 구성이 비슷해 <게이샤>는 매번 뒷자리에 놓인다. DVD조차 <산쇼다유>에 곁다리로 붙어 출시된 <게이샤>는 사실 매우 특이한 미조구치 영화다. 다른 미조구치 영화의 여자들처럼 <게이샤>의 주인공도 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고통과 실패를 참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게이샤>는 게이샤라는 직업과 그 구조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발하거나 극적인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게이샤가 없는 대신, <게이샤>는 조금 특별한 직업을 가진 여자의 평범한 일상에 관심을 둔다. 주인공 중 한명인 소녀는 음악과 노래와 춤을 배우며 견습을 마치고, 일본의 은밀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예능인인 게이샤를 꿈꾼다. 미조구치는 소녀의 학습과정을 담으면서 특유의 영상미를 드러내기보다 보통의 다큐멘터리를 찍듯이 기록하는 방식을 택했다. 게이샤 또는 매춘부를 다룬 미조구치의 작품들을 감상적인 시선으로 보았던 사람에게 <게이샤>는 그런 틈을 제공할 마음이 없다. 중반 이후 영화의 분위기는 조금씩 변하면서 두 주인공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안겨주지만, 우리는 두 여자의 운명을 안타까워하는 만큼 그녀들을 구석으로 내몬 시스템을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의 파산으로 가난한 소년기를 보내야 했고, 유곽에 팔려 훗날 게이샤가 된 누이의 도움을 받았던 미조구치에게 매춘여성이 의미하는 바는 각별하다. 경제적으로 자립할 능력이 없는 여자가 가족의 성공과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매춘을 빌려, 미조구치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낳은 어두운 면에 주목한다. 미조구치는 여성의 의무와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구시대의 인물이었으나, 영화작업 초기부터 게이샤 하우스나 유곽을 철저히 조사했던 그가 매춘을 노동행위의 하나로 인식하고 매춘여성과 하층민을 통해 근대화의 그늘을 읽어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게이샤>는 그런 점에서 대표적 성과라 하겠다.

2007년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영되며 주목받기 시작한 새로운 매춘부 이야기 <사쿠란>은 서구 남자가 만든 역겨운 드라마인 <게이샤의 추억>에 대한 일본 여자들의 응수다. 원작 만화를 그린 안노 모요코, 감독이자 유명 사진작가인 니나가와 미카, 각본을 쓴 다나다 유키, 영화의 흥을 더한 대중음악가 시이나 링고 등 여자들이 뭉쳐 만든 <사쿠란>의 유별난 스타일과 천진난만함 그리고 활기찬 에너지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그것과 비견할 만하다. 팔려가는 날에도 벚꽃의 아름다움에 빠져 자신의 처지를 잊었던 여자는 신이 내린 몸을 타고났으나 망아지의 성격을 버리지 못한 탓에 곤욕을 겪는다. 오로지 남자의 쾌락을 위해 존재하는 매춘부는 억압받으면서도 가혹한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의 대표자인데, <사쿠란>은 그녀에게 자유의 이름을 부여한다. 영화에서 매춘부를 의미하는 금붕어는 어항 밖으로 나가는 순간 죽음을 맞는다. 그럼에도 자신을 얽매는 굴레를 깨부수려면 감히 어항 밖으로 뛰쳐나갈 용기가 필요하다고 영화는 말한다. <산쇼다유>와 합본으로 출시된 <게이샤> DVD는 뛰어난 복원영상에다 토니 레인즈의 영화해설(28분), 비평과 인터뷰가 담긴 책자 등의 부록을 더했다. <사쿠란>의 DVD에도 메이킹필름(63분), 삭제장면(8분), 홍보자료(36분) 등의 부록이 지원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인상적인 건 제목 그대로 착란을 불러일으킬 것 같은 현란한 본편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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