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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관계지만 괜찮아

멜로드라마의 전형을 비튼 SBS 드라마 <불한당>, 슬픔마저 소통 불가능하게 만들어

분명 삼각형을 또렷하게 그리기는 했다.

건실한 서민형 여성(진달래/이다해)의 주변을 두 남자가 알짱알짱 어슬렁거리고 있다. 한명은 종국에 그녀와 하트무늬 쌍방향 화살을 공유할 것 같은 외악(惡)내선(善)의 남성(권오준/장혁)이고, 또 한명은 드라마식 통칭인 ‘재벌 2세’군에 속할 법한 부잣집 능력남(김진구/김정태)이다. SBS 수목드라마 <불한당>은 숱하게 봐왔음직한 관계도와 인물 프로필을 들고 사랑의 위대한 힘을 찾아나서겠다고 출발했다.

그런데 극중 여자 하나, 남자 둘은 그 뻔한 그림을 완성하면서 자꾸 다른 몸부림을 치려 든다. 황당하고, 막돼먹었으며, 딱딱한 유리가면을 쓴 채 ‘코믹 블루스’를 추고 있다. 시어머니를 엄마로 부르는 싱글맘 달래씨는 사리 분별이 분명한 것 같으면서도 눈치는 좀 없어 보이는 형이다. 싫은 남자를 잘라낼 때 한번에 ‘쌩’치지 않고, ‘나 과부여, 애도 한명 있어’하며 주절주절 개인 현황을 꺼내는 미필적 의존병을 직장 동료에게 가차없이 지적받는가 하면, 남편 기일만 오면 정신을 반 이상 놓아 위험해지는 그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의 친구는 아니다.

또 그를 협공하는 남자가 두명이나 있다고 그닥 부러워 보이지도 않는다. 무혁(<미안하다 사랑한다>)의 ‘밥먹을래, 죽을래’ 하는 우격다짐 슬픈 사랑고백마저 무엄하게 작업용으로 베껴먹는 오준씨는 천벌을 받을 ‘사람 마음 갖고 놀기’를 일삼는 생계형 제비다. 무서운 형님들의 빚 독촉에서 벗어나려고 달래를 3천만원과 동격화해 작업 중인 그는 가끔씩 탁 터뜨리는 코피로 불길한 연민을 자극하다가도 여자의 순정을 밟아 짓이기는 비열함으로 드라마의 주인공답지 않게 호감도의 도마에도 올라 있다. 불운한 사연과 우수에 젖은 눈빛 한방으로 안전판을 만들어 여성의 ‘나쁜 남자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게 거개의 드라마가 걸어온 노선이라면 오준씨는 뻔뻔하고 찌질하게 제목의 액면에 보답하고 있다.

돈이 많고 능력도 있다 싶은 진구씨도 나을 게 없다. 달래와 결혼해야 재산을 물려주고 외국에도 보내준다는 아버지의 강압에 못 이겨 불쑥 달래의 스위트홈을 침투하는 그는 정해진 사고틀과 매뉴얼을 벗어나면 금세 ‘모릅니다’, ‘싫습니다’로 오류 표시를 내는 사이보그형이다.

애당초 사랑의 콩깍지 효과가 삭제된 상태에서 만난 이들은 드라마 주인공의 숙명상 한회에도 몇번씩 얼굴을 맞대지만, 각자의 목표에만 충실하며 거짓말이든 진심이든 자기 얘기만 던질 뿐이다. 심지어 달래씨는 남의 절절한 사연을 듣다가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이질적인 타인들이 만나 진심의 문을 연다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겠느냐는 듯 이들은 멜로드라마의 달콤한 슬픔마저 자꾸 비틀어 시청자의 예상답안을 불편하게 벗어난다. 달래의 명랑천진쇼, 오준의 현란한 화술쇼, 진구의 뻣뻣쇼 등은 따로 보면 재미있지만, 둘이 마주 보고 있을 때마저도 반복돼 ‘소통불가’의 상태를 유지하기 일쑤다. 자기방어의 절박함을 주장하는 이들의 쇼쇼쇼는 극중 달래의 지도를 따라 ‘들이쉬고~, 내쉬고~’의 특별한 호흡법을 시청자도 같이 가동해줘야 할 것 같은 갑갑함을 다량 뿜어낸다.

가슴을 날카롭게 베일 준비가 돼 있는 시청자의 기대치를 배반 중인 <불한당>의 불친절한 여정은, 그래서 더 기대를 준다. 그들의 단단한 벽이 와르르 무너졌을 때 흔한 눈물의 주룩주룩과는 다른 마법을 걸어올지도 몰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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