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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가신] “중국 시대극 중 단 한편도 사실적인 영화가 없었다”
문석 사진 이혜정 2008-02-07

진가신 감독 인터뷰

-<명장>은 중국에서 굉장한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상업영화다. 하지만 주제로 들어가면 약간은 소화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럼에도 중국에서 흥행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중국 관객이 홍콩 관객보다 지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홍콩 관객은 영화 외에 볼거리가 많은 반면 중국은 그렇지 않다. 또한 이 영화는 인간들의 정치적인 면을 다루는데 중국인들의 삶은 언제나 정치적이었기 때문에 잘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정도까지 흥행이 될 줄은 몰랐지만.

-<명장>은 한국에서 불법복제 파일로 유통되면서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다.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졌다는 말이니 감독 입장에서는 행복해야 할 일이다. (웃음) 하지만 영화에 대한 투자자로서는 안 좋다. 그리고 투자자가 나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바로 감독에게도 안 좋은 일로 다가온다. 더이상 영화를 만들 돈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그리고 지금 유통되는 불법파일은 중국 개봉 버전인데, 여러 대목이 검열에서 걸려 삭제됐다. 무엇보다 태평천국의 난과 관련된 모든 장면을 없애야 했다. 중국에서 태평천국의 난은 금기사항이다. 마오쩌둥은 “근대 농민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의 선조”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태평천국의 난은 농민혁명인 동시에 기독교도들의 혁명이다.

-<자마>에 대한 리메이크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리메이크가 아니라고 말한다. =<자마>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영화라 리메이크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역사적 사실을 다룰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굉장히 정확하게 다뤄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칫하면 모든 중국인들이 인터넷에서 영화가 역사와 다르다고 공격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제목과 마신이나 장문상의 이름을 바꾼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마씨는 중국에서 무슬림이기 때문에(마호메트의 마) 자칫하면 소수민족 문제를 건드리게 될까봐 바꾸게 됐다.

-당신의 첫 시대극이라는 점 또한 의미있을 것 같다. =이 영화를 놓고 벌인 고민의 한가운데에는 사실적인 시대극을 만들겠다는 내 의지가 있었다. 왜냐하면 중국 시대극 중 단 한편도 사실적인 영화가 없었다. 역사건 문학이건 뭐건 우리는 유교에 짓눌려 많은 자유를 억압당했다. 우리는 우리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해본 적이 없다. 실제보다 뭔가 나은 것으로 포장해서 말하곤 했으니까. 역사도 마찬가지다. 역사책이나 시대극에 나오는 사람들은 우아하고 지적이면서 심오한 말만 한다. 나는 시간의 터널을 타고 과거로 간 듯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영화를 만드는 동안 투자자들의 반발도 많았다고 하던데. =중국과 해외의 모든 투자자들은 사실적인 역사극이라는 점, 쿵후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설명하면 훌륭하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촬영분을 보면서는 모두들 무언가를 바꾸기를 원했다. 결국 나는 못 들은 척하고 내 방식대로 영화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 1년 반 동안 싸웠고 아시아에서 개봉한 지금도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서구 관객을 위한 편집을 두고서. 서구 투자자들의 반응은 ‘이연걸이 나오는데도 이연걸 영화가 아니고, 중국영화지만 중국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애초부터 이 정도 규모의 영화를 생각했나. =그렇지 않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좀더 젊은 배우를 기용하고 싶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쓰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30대 배우들의 내면은 20대에 가깝다. 20대 배우는 당연 10대에 가깝다. 스토리를 다 만들고 보니 젊은 배우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 이연걸을 방청운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규모가 점점 커졌다.

-당신의 특기인 사랑 이야기가 없어서 실망하는 관객은 없나. =사랑 이야기에 대한 불만 중 하나는 사랑 이야기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 연생은 오로지 영화적 도구일 뿐이다. 그녀의 죽음조차도 강오양의 캐릭터를 위한 것이다. 두 번째는 이연걸과 관련된 것이다. 그가 사랑 이야기를 이끄는 게 어색하다는 불만이 있다. 만약 이연걸과 유덕화의 배역을 바꿨다면 그런 이야기는 훨씬 적었을 것이다. 물론 사랑 이야기가 아예 들어가지 않았다면 영화는 디테일없이 너무 직설적이었을 것이다.

-액션장면이 굉장히 잔인하고 사실적이다. =그것은 반전(反戰)이라는 또 다른 메시지를 위한 것이었다. 반전영화를 찍겠다는 건 아니었지만, 시나리오를 쓰던 초기 나는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이 영화에 참호가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청시대에 참호는 없었는데도 말이다. 중국에서는 칼을 차가운 무기(冷兵), 총을 뜨거운 무기(熱兵)이라고 부르는데 차가운 무기가 훨씬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무서운 느낌을 자아낸다. 느낌이 무서울수록 전쟁의 공포감도 커질 것 아닌가.

-혹시 촬영이 너무 힘들어서 ‘내가 이 영화를 왜 시작했을까’ 하고 후회해본 적은 없나. =촬영 시작 두 번째 주에 몸이 너무 아파 홍콩 병원에 갔었는데, 맹세하건대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찍다보면 모든 곳에서 압력이 들어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3명의 스타와 함께 작업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 두셋의 남녀 배우를 상대하는 것은 쉽지만, 세명의 남자배우나 세명의 여자배우는 곤란하다. (웃음) 정소동 무술감독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는데, 그의 아버지인 정강씨는 유명한 작가이자 감독이다. 그는 72년에 <14인의 여걸>을 찍었는데, 당시 유명 여배우 14명이 동시에 나오는 대작이었다. 그는 그들을 어떻게 상대했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을 때마다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여배우가 울기 전에 자신이 먼저 벽에 머리를 박고 울었다고. (웃음)

-이연걸과는 처음 함께 작업하는데 어땠나. =연기도 연기지만 그는 내가 액션의 방향을 잡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이건 우리가 만든 메이킹 다큐멘터리에도 들어가는 장면인데, 하루는 이연걸이 세트장에 와서 액션에 대한 내 얘기를 듣더니 이러는 거다. “그러니까 미식축구 같은 액션을 원하는 거군.” 나는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정소동 무술감독은 와이어액션이나 섬세한 액션을 만드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이런 식의 액션에는 익숙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원하는 액션을 머릿속에 갖고는 있었지만 어떻게 표현할지 몰랐다. 그때 이연걸이 도와줬다. 그는 나와 정소동 감독 사이의 통역이었던 셈이다.

-후반부에 경극을 보던 유덕화가 우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미묘하더라. =그 장면을 찍을 때가 촬영기간 4개월 동안 가장 강렬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장면에서 유덕화에게 별다른 지시를 하지 않았는데, 그가 연기를 시작하자 모든 스탭들은 일순간 그에게 집중했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무도 그가 눈물을 흘릴 거라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모습은 찍지 못했다. 그 장면은 12번인가 찍었는데 신기한 건 그때마다 유덕화가 눈물을 흘렸다는 점이다. 물론 맨 처음 눈물을 흘릴 때만큼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퍼햅스러브> 때 영화를 포장하던 달콤한 껍질을 벗기고 싶었다고 했는데, 그 점에서는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만들 생각인가. =음, 이번이 마지막이다. (웃음) 앞으로는 정말정말 달콤한 껍질 입힌 영화를 만들 거다. (웃음) 요즘 내 친구들은 내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묻곤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네가 인간의 착한 본성을 믿을 때 만들었던 영화를 정말 사랑해’라고 한다. 나도 좀더 행복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과연 내가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해보려고 한다.

-차기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애초에는 미국에서 활동 중인 중국 작가 하진의 <기다림>을 영화로 옮기려고 했는데, 그건 더 우울한 영화가 될 것 같아서 피하려고 한다. 그 책은 내가 읽어본 것 중 가장 우울한 이야기다. 그리고 책의 내용대로 영화를 만든다면 중국의 검열을 통과할 수 없을 것 같다. 만약 만들게 된다면 아마도 어떤 타협이 필요할 것이다.

-요즘 홍콩 영화산업쪽 사정이 어떤가. =지난해가 최악이었다. 올해는 더 나빠질 것이다. 내년에는 훨씬 더욱 나빠질 거고. 모든 상황이 안 좋아지고 있다. DVD로 인한 수익이 사라졌고, 케이블TV 수익도 사라졌으며, 극장 관객도 줄었고, 해외판매도 감소했다. 아마도 영화 관람자의 습성이 바뀐 탓일 거다. 이렇게 나쁜 상황은 처음 봤다.

-그래도 당신들에게는 중국시장이 있잖나. =그건 사실이지만, 중국의 검열제도가 2~3년 안에 바뀔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영화시장이 앞으로 10년 뒤에도 건강할 것인지, 관객이 여전히 극장을 찾을 것이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몇년 뒤 중국에서 검열이 사라지거나 완화되고, 불법복제 DVD가 근절되고, 스크린 수가 늘어나게 되더라도 영화가 어떻게 진화하냐에 따라 사람들이 영화를 보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보기에 영화가 진화하는 속도가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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