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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제] 정곡을 찌르는 정직함을 카메라로 담았다
강병진 사진 이혜정 2008-02-21

<추격자>의 이성제 촬영감독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숨이 탁 막혀왔다.”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상영시간 내내 바쁘게 달려가는 <추격자>는 관객에게도 숨을 몰아쉴 여유를 주지 않는 영화다. 다닥다닥 붙은 좁은 골목길을 달음박질치는 발길을 따라가보면 끝내는 피범벅, 땀범벅의 격투가 벌어지고, 숨을 돌릴 만하면 다시 비오는 망원동의 산동네를 누벼댄다. 연출자인 나홍진 감독과 단편 <완벽한 도미요리>를 만들었던 이성제 촬영감독은 그렇게 첫 장편 데뷔작을 “극기훈련적”인 마인드로 완성했다. “만약 내가 찍을 게 아니었으면 그저 재밌게 시나리오를 읽었을 거다. 나홍진 감독에게 ‘너 고생 좀 하겠다’고 했겠지. 도대체 이 많은 장소를 언제 다 돌아다녀야 하나 싶더라. (웃음)”

<추격자>는 여러 장면에서 촬영감독의 몸살이 보인다. 밤장면과 야외장면이 전부였을 현장, 그리고 시종일관 공중에 떠 있는 카메라에서 감독의 어깨에 짊어져 있었을 카메라의 무게가 느껴진다. 특히 중호와 영민의 추격신은 <추격자>의 에너지가 가장 격렬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하지만 정작 이성제 감독은 “촬영하는 입장에서 볼 때 가장 아쉬운 부분”이란다. “이어붙은 골목에 조명을 숨겨서 붙이는 게 가장 까다로웠다. 결국 노련한 조명팀이 전봇대 변압기에 조명을 설치하는 위험한 작업을 해주었는데, 그게 최선 같아도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아쉽다.” 오히려 그는 중호가 영민이 그린 벽화를 발견하고 오토바이에 친 미진의 딸을 발견하게 되는 시퀀스를 가장 만족스러운 장면으로 꼽는다. “망원동에서도 가장 가난한 동네로 생각했다. 누가 나와볼 것 같지도 않고, 빛이라고는 가로등밖에 없지 않을까 싶더라. 무엇보다 여기에서는 중호의 막막함이 절실하게 드러나야 했다. 지영민이 범인이라는 걸 확신할 수는 있어도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다행히 시나리오에서 느꼈던 감정이 그나마 비슷하게 보여진 것 같다.”

사실 이성제 감독은 영화 이전에 애니메이션에 심취했던 오타쿠였다. <공각기동대> <아키라> 등의 애니메이션에 빠져 고등학생 시절을 보낸 그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본 데이비드 린치의 <사구>가 그를 영화로 전향케 했다.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놓은 것 같았다.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영화로도 그릴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기더라. 당연히 그때부터 학과성적은 내리막을 걸었지만. (웃음)” 이후 대학 시절을 “학기 중에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방학 때 단편영화를 찍으며” 보냈던 그는 졸업 뒤 <강원도의 힘> <정사>를 촬영한 김영철 촬영감독의 촬영팀에 들어갔다. 나홍진 감독을 만난 건 <묻지마 패밀리> <누구나 비밀은 있다> 등의 현장을 거친 뒤 들어간 영상원 대학원에서였다. “워낙 꼼꼼하고 영리한 친구다. 요즘 여러 인터뷰에서 자기도 모르고 일단 저질러보자고 찍은 장면들이 많다고 말하는데, 사실 그럴 사람이 아니다. (웃음)” 데뷔작을 죽이 맞는 친구와 완성한 그는 다음 작품 또한 “대학 시절 동아리에서 함께 단편을 만든 친구의 데뷔작”이 될 예정이다. “영화계가 불황이라 두고봐야 할 것 같다”고는 하지만 <추격자>를 만들면서 감독, 배우들과 함께 “정곡을 찌르는 정직함으로 불황을 돌파하자”고 외쳤던 것처럼 다음 작품 역시 고생길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한다. 처음 충무로에 입성할 때도 김영철 촬영감독을 1년 넘게 졸라서 기회를 얻었다고 하니, 마음 졸이는 시간마저도 그에게는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추격자>의 아쉬운 장면들을 다시 찍자고 하면 그것만은 사양하겠단다. “싫다기보다 돈이나 시간이 넉넉하다 한들 지금 만들어놓은 게 최선이 아닐까 싶어서다. 사실 촬영을 할 때는 스탭들 중에 누가 나서서 이런 건 찍을 수 없다고 말해주기를 바라기도 했지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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