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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식량 주권
김소희(시민) 2008-03-10

식당들이 메뉴판을 다 바꿨다. 500원, 심하면 1천원씩 올렸다. 아니, 밀과 옥수수값이 폭등했는데, 비빔밥 값은 왜? 밥집 아줌마의 싸늘한 일갈. “국제 곡물값 상승이랑 유가 급등 몰라? 미국이 콱 쥐고 비싸게 파니깐… 뭐든 덩달아 올랐어.” 그럼 왜 200원이나 700원도 아니고. 덧붙인 일갈. “잔돈 거슬러주기 귀찮아서.” 더 오를지 모르니까 미리 올려놓고 보자는 ‘확보주의’ 심리도 작동한 것일 게다.

십수년 전 우르과이 라운드 때부터 익히 들어온 ‘식량 주권’이 이러다 진짜 위협받는 건 아닐까 싶다. 내 주변에서 두 번째로 똑똑한 우리 사무실 조계완 선배에 따르면 위협받는단다. 허걱. 그럼 앞으로 밥 많이 못 먹나? 다행히 우리가 쌀은 거의 자급자족한다. 그러나 다른 곡물 자급률은 5%. 그리하여 전세계 5위의 곡물 수입국이다.

국제 곡물값은 지난해 이미 전년도에 견줘 두배로 폭등했다. 기상이변으로 곡물 작황이 부진한 터에, 중국·인도 등 급격히 소비수준이 높아진 큰 나라 사람들이 육류 소비를 많이 하면서 사료곡물 수요도 크게 증가했다. 이들 나라에서 도시화가 가속되면서 경작면적이 줄어든 것도 한 원인이다. 그래 결국 고기 많이 먹는 게 문제야(이다혜 우리 이 참에 끊을까?). 바이오연료도 ‘곡물 먹는 하마’로 급부상했다. 기름값이 치솟으면서 대체에너지인 바이오연료 산업은 더욱 커졌다. 이런 얽히고설킨 상황에 따라 곡물 재고량은 바닥을 내보이고 있다. 조만간 소비량이 생산량을 넘어서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가격 급등에 확보문제까지 겹치니, 바야흐로 식량이 무기가 된 시대라고 조계완 선배는 설명했다.

대규모 곡물 생산국은 미국·중국·러시아·오스트레일리아·브라질 등 큰 나라들이다. 그중 미국의 생산집중도가 제일 높다. 세계 곡물 수출시장을 쥐고 흔드는 주요 메이저 기업들도 대체로 미국 회사다. 이들이 결정적일 때 가격에 영향을 끼친다. 개방 압력을 넣어 작은 나라들이 농업을 포기하게 만든 것도 이들이다. 그럼 유가 급등은 무슨 상관일까? 우리의 곡물 수입 의존도는 2000년 중국(50.2%), 미국(29.1%) 순이었으나, 2006년 미국(55%), 중국(19.6%)로 뒤바뀌었다. 운임 비용이 그만큼 늘었다는 얘기이다.

결국 우리 밥상을 지배하는 ‘보이는 손’은 미국인 거네. 아줌마 말이 맞네. 무섭다. 내 삶의 유일한 밑천, 밥이나 먹어야겠다. 쌀만은 지키겠다며 아스팔트 농사 짓던 농민들의 은덕을 이렇게 입는구나. 모두들 라면, 빵 대신 밥 드세요. 밥힘으로 견딥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