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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이 히사코] “평범한 가정주부들을 반짝반짝 빛나게 그리고 싶었다”

<오리우메>의 감독 마쓰이 히사코

2002년 도쿄의 20개 극장에서 개봉한 <오리우메>는 2006년까지 전국을 돌며 130만 관객과 만났다. 치매에 걸린 여성과 그녀를 돌보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입소문이 좋아 이 동네 저 동네로 순회 상영을 다녔고 영화를 연출한 마쓰이 히사코 감독은 영화가 상영된 1370곳 중 400여곳을 직접 찾아 다녔다. 그리고 3월7일. ‘한·일 고령화사회 심포지엄’의 한 행사로 마련된 영화 상영을 위해 인사동에 위치한 일본공보문화관을 찾았다. 한국에서의 반응이 몹시 궁금했다며 질문을 하기 전에 기자의 감상을 먼저 물어오는 감독. <오리우메>는 일견 착하고 조용한 느낌의 영화지만 동시에 치매란 질병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잔인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소설 <잊어도 행복>이 원작이라고 알고 있다. 어떻게 영화화하게 됐나. =예전엔 TV드라마를 제작했는데 그때도 나는 항상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들에 다른 사람들도 흥미를 가질 거라고 생각했다. 내 안테나를 믿었다. 젊을 때는 자녀교육, 결혼생활, 이혼 등 그때 부딪히는 일들이 관심사였고 그걸 테마로 TV드라마를 만들었다. <오리우메>는 나이를 먹으면서 부모를 간호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느끼는 것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소설을 읽고 아, 이걸 영화로 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노인복지시설을 많이 취재했다고 들었다. 취재를 하면서 새롭게 알거나 느낀 게 있나. =치매가 사람들에게 제대로 이해되지 않고 있다는 걸 강하게 느꼈다. 취재를 하면 할수록 우리가 이 병에 편견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더라. <오리우메>를 계몽영화라고 말하는 건 좀 싫지만 나는 어느 정도 이 영화가 치매를 제대로 이해시킬 수 있다면 그것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치매는 사람의 프라이드에 상처를 입히는 질병이다. 환자를 인정해주고, 칭찬하면서 그가 세상의 주역이라는 걸 계속 인지해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그림을 그리며 자신감을 되찾게 그렸다.

-<오리우메>가 치매, 고령화 문제에 대한 영화지만 주인공이 여자라 여성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는 것 같다. 가령 극중 며느리는 간호를 하며 힘들어하면서도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지 않는다. =남자들은 사회에서 일하고 집안 식구들을 먹여살린다는 명분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부인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 여자들은 집안 살림도 하고 아이도 돌보고 정말 많은 일을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살 수 없다. 자신의 세계가 없으면 안 된다. 극중에서 며느리가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지 않는 것도 자신을 위한 인생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 일하는 여자들이 전업주부보다 우월한 것처럼 그려지지만 나는 평범한 가정주부들을 반짝반짝 빛나게 그리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표현할 길이 없는 그들을 응원하고 싶었다.

-3년에 거쳐 영화의 제작비를 모았다고 들었다. =기업, 여러 단체 등을 돌며 돈을 모았다. 돈을 벌려는 곳에는 가지 않았다. 어차피 그런 사람들은 내가 하려는 영화에 흥미가 없을 테니. 거절당하고 또 거절당해도 계속 돈을 구했다. 다행히도 내가 사기꾼처럼 보이진 않나보다. (웃음) 돈을 구할 땐 여자가 유리한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미모를 무기로 내세운다는 말은 아니다. 나이가 50이 넘었으니까. (웃음) 다만 저 나이에 저렇게 열심히 영화를 만들려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갖는 것 같다.

-전작인 <유키에>도 제작비를 3년에 거쳐 모았다고 했다. 그런 과정이 힘들지 않나. =물론 힘들다. 하지만 나는 내가 돈을 모았기 때문에 영화를 찍을 때 그 누구도 불만을 말하지 못한다. (웃음) 왜 보통 영화에선 감독이 프로듀서 말을 안 들으면 해고를 당할 수도 있지 않나. 내 영화가 상품으로서는 가치가 부족할지 몰라도 내 순수함은 그대로 들어 있다. 보통 영화가 100만명 넘는 관객을 동원하면 다른 영화사에서 연출 제의를 받기도 할 텐데 나는 10년 넘게 단 한번도 제안을 받은 적이 없다. (웃음) 아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 외에는 표현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럼 영화를 준비할 때는 배급이나 상영에 대한 계획은 없었나. =미리 걱정해봤자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물론 돈을 구할 때는 “아직 배급사는 없습니다, 하지만 꼭 배급이 될 겁니다”라고 말했지만. 이거 사기인가? (웃음) 인디영화를 주로 배급하는 배급사에서 20개 극장을 잡아 개봉해줬고 이후에 관객이 상영회를 하고 싶다고 제안해왔다. 그게 5년간 1370곳으로 이어졌다. <유키에>는 750곳에서 상영해서 70만명 정도가 봤다. 참 행복하더라. 그렇게 영화를 들고 상영하러 다니면서 관객과 친구가 되고 서로 이야기를 하니 마치 새로운 인생이 열리는 것 같았다. 어떤 감독들은 <오리우메> 방식으로 영화를 배급하고 싶다고 그 시스템을 좀 알려달라고 하는데 이건 시스템이 아니다. 영화를 직접 관객에게 보여주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거다.

-2004년 <터닝포인트 오리우메 100만인을 잇는 만남>란 제목의 책을 냈다. <오리우메>가 인생의 전환점이라 생각하나. =계획한 건 아닌데 이상하게 10년마다 직업을 바꿔왔다. 작가생활 10년 하다 배우 매니지먼트 10년 했고, 프로듀서로 TV드라마를 또 10년간 만들었다. 그리고 50살 되던 해에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여러 번 터닝포인트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영화감독이 됐던 게 가장 큰 것 같다. 내가 연극과를 전공하기도 했고. 매니저 일을 하면서도 항상 나는 무언가 만드는 입장에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이쪽이 아니라 저쪽인 것 같은 느낌. 본래의 꿈으로 돌아온 것 같기도 하다.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나. =미국 여자가 주인공으로, 100년 전 이야기다. 미국에서 연애하고 결혼한 여자가 일본에 돌아와 자녀들을 키우는 이야기다. 시대극이고 미국의 프로듀서와 파트너를 맺어 제작할 계획이다. 촬영감독도 일본인으로 할 생각은 없다. 5년 동안 제작비를 모으고 있고 올해 안에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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