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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진보신당 깃발 아래 헤쳐모여
박혜명 2008-03-25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으로 지지대상 옮기는 영화인들 늘어나

총선을 앞두고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영화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임순례, 정윤철, 권칠인, 변영주, 김경형, 정재은, 장형윤, 신동일, 이무영 등 감독들과 오기민 아이필름 대표, 심재명 MK픽처스 대표, 김광수 청년필름 대표 등 제작자들 그리고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배우 김부선 등 영화계 주요 인사들이 속속 진보신당으로 입당하거나 지지하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중에서도 변영주 감독과 심재명 대표 등은 진보신당 창당 발기인 명단에도 이름을 올릴 만큼 적극적인 입장을 표하고 있고 김경형 감독은 진보신당의 홍보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영화인들의 규모 및 구체적인 명단은 아직까지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4년 전 17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동당을 공개 지지선언했던 226명과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

이번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영화인들 중 상당수는 2004년 당시 국내 정치권의 유일한 진보정당이었던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을 위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226명의 영화인 지지선언’에 동참했던 인물들. 따라서 민노당에 당적까지 두고 있던 영화인들 중에는 당을 탈당하고 진보신당으로 당적을 옮기는 경우도 속속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2004년 민노당 지지 선언 때는 박찬욱, 봉준호 등 스타 감독들과 문소리 등 영화배우들도 적극적으로 나서, 이른바 영화계 스타급 인사들이 진보 정당의 지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들 세 사람은 민노당원으로서 당에 적을 두기도 했다.

영화인들이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이유

영화인들이 지지대상을 민노당에서 진보신당으로 옮기는 배경은 각자 다르겠지만, 대개 ‘종북주의’로 비판받고 있는 민노당의 대북정책과 비정규직·이주노동자·장애인노동자·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문제에 대한 무관심 등에서 보여지는 거칠고 구시대적인 진보 노선에 대한 갑갑함 내지 실망감과 다르지 않은 듯하다. 변영주 감독은 “기존의 민주노동당은 사회의 다양한 100가지 질문에 대해 언제나 단일한 한 가지 답변만 했고, 개별 문제에 맞는 구체적 답들을 내놓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에 대한 반성이 있었고, 21세기 한국의 노동문제뿐 아니라 정규직보다도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장애인노동자 등과 폭넓은 관계를 갖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개인적인 지지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최근의 티베트-중국 문제도 그렇다. 진보신당은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데 민노당은 그에 대해 어떤 논평도 하고 있지 않잖나.” 2004년 당시에는 민노당 지지 의사만을 밝히고 입당은 하지 않았던 오기민 대표는 이번에 지지 선언과 함께 진보신당에 입당했다. 민노당 지지 때처럼 이번에도 진보신당의 영화인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앞장서고 있는 그의 견해도 비슷하다. “나는 종북주의란 말엔 관심이 없지만 그런 문제에 대한 민노당의 태도는 명확지 않았다. 북핵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고. 티베트 인권문제도 같다고 본다. 또 노동운동 중심의 운동이 유용했던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21세기 들어서도 그게 여전히 답인가에 대해 회의적이다. 좀더 다변화된 형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보신당은 거기에 생태문제라든가 소수자들과의 연대 문제 같은 진보적 가치들을 좀더 수용하고 진보의 폭을 넓히겠다는 태도가 있다. 그것에 내가 동의할 수 있었다.”

진보신당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경형 감독은 “영화계의 양극화가 심하다. 거대 자본이 지난 3~4년간 한국 영화계를 휘젓고 다니면서 우회상장이니 이런 낯선 일들이 벌어졌는데 현장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고 결국 영화판은 어려워졌다”며 “사회도 그와 다르지 않다. 영화 스탭들을 비롯해 현장에서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골고루 잘사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차원”이라고 진보신당 홍보위원장을 맡게 된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김경형 감독은 또 “사실 지난 5년 동안 진보 정당과 노무현 정부에 많은 기대를 하고 열심히 지지선언했던 영화인들 중엔 스크린쿼터 등으로 상처를 받고 허탈감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게다가 영화계 분위기는 흉흉하고, 당장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도 많고. 그러나 이럴수록 우리가 더 열심히 지지해야 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 정부의 정체성에서 합리적으로 균형잡힌 사회를 바랄 수는 없다”라고 덧붙였다.

지지선언을 공식화하는 기자회견도 열 계획

영화인들의 진보신당에 대한 지지 속에는 또 한국영화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정책을 바라는 기대도 있다. 변영주 감독은 “독과점이나 불법다운로드 등 산업구조 면에서 해결할 것이 많다. 또 지금은 영화산업 전체가 어려워서 영화산업노조가 힘을 잘 못 받고 있는데 산업노조에 대한 양심적 지지도보다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히고 있다.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진정한 문화진보가 실현되길 바란다. 대중이 정서적으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쪽에 좀더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정책들 말이다. 어쨌든 독립영화도 대중과 같이 가야 한다. 그러니까 독립영화전용관이나 미디어센터 등이 많이 만들어져 미디어 소외 지역들에 혜택이 돌아가기를 기대한다”는 점도 이야기했다.

진보신당에 대한 지지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영화계 내부에서는 이 같은 목소리를 모으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오기민 대표를 비롯해 김광수 대표, 조영각 위원장, 류진옥 PD 등 지난 2004년 총선 때 민노당에 대한 영화인 지지 목소리를 모으는 데 노력했던 인물들이 이번에도 앞장서서 일을 맡았다. 김광수 대표는 “예전에 민노당을 지지했던 230여명을 1차 섭외 대상자로 하고 있다”며 “민노당에 잔류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진보신당 지지쪽으로 돌아설 것 같다”며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조영각 서독제 집행위원장은 “독립영화쪽도 진보 정당이 민노당과 진보신당으로 갈라지면서 좀더 지켜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계속 섭외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영화인들은 지지선언을 공식화하는 기자회견을 열 계획도 세우고 있으며, 일부 영화인은 특정 지역에 직접 뛰어들어 진보신당 후보의 선거운동에 참여할 방침이다.

“한국사회를 진실되게 걱정하는 와중에 나온 결정이다”

진보신당 지지하는 임순례 감독 인터뷰

-어떤 이유로 진보신당 지지에 나서게 되었나.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그 제의를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들인 것은, 지난 대선 때 진보정당이 제 역할을 못한 점이 너무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 점을 개혁해보려고 심상정 의원이 개혁안을 올렸는데 그것이 민주노동당 대의원회의 때 부결됐다. 그런 맥락과 함께 그간의 민노당 행보를 보았을 때, 심상정 의원이나 노회찬 의원 등이 분당해 나온 배경에 동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2004년 영화인들의 민노당 지지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멤버 중 하나다. 그런데 이번엔 진보신당 입당까지 하게 됐다. =그 당시 나는 ‘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인들 모임’(노문모)에 있었다. ‘노사모’ 사람들과 똑같은 이유로 노 대통령에게 엄청난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집권기간 동안 노 전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이나 그가 속한 민주당의 행태가 우리가 기대하는 진보적 생각에 부합하지 못하고 아무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이번 진보신당 지지 부류는 두 부류인데 계속 민노당을 지지해오던 부류가 있고, 노무현 정권에 희망을 걸었다가 실망의 반작용으로 온 경우가 있다. 나는 민주당 이후 대안은 민노당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역시 실망이었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선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진보신당에 어떤 것을 기대하고 있나. =늘 민노당이 주장해왔던 부분, 즉 서민이나 소수자들을 위한 정책에 있어서 민노당이 노력한 부분도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부응 못한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이전에 비해 민노당이 비약적 활동을 한 건 사실이지만 당내 계파간의 이해관계가 발목을 잡은 부분도 있었다고 본다. 그런 부분들을 진보신당이 홀가분하게 털어내고 좀더 색깔을 분명히 하면 원하는 목표에도 더 다가갈 수 있겠단 기대가 있다.

-문화예술 부문에서 특히 영화인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진보정당의 정치 세력화에 나서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사실 영화인들은 정치색이야 기본적으로 무색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지만 오랜 스크린쿼터 투쟁을 하면서 이런 모순의 발생이나 해결방법이 결국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게 아닐까 싶다. 그게 한 이유일 것 같고, 또 영화라는 게 끊임없이 현실을 반영하는 매체이다 보니 현실의 본질이나 문제를 파고들다 보면 정치란 현실과 만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진보적 색깔로 갈 수밖에 없는 거 아닐까 싶다.

-이런 지지의 움직임이 영화계에 정책적으로든 어떤 형태로든 직접적으로 미칠 영향도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런 점을 생각하고 참여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그렇지 않고, 영화계 자체가 그런 점을 노리고 이익집단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영화인으로서든 지식인으로서든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해 한국사회가 좀더 좋은 모양으로 발전하는 데 보탬이 되는 것이 의의가 아닌가. 내가 이런 정당을 지지한다는 걸 밝힘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힘을 실어줄 수 있도록. 영화계 이익을 위해 힘을 결집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를 가장 진실되게 걱정하는 와중에 나온 결정이라고 이해해주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