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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타이틀] 크로넨버그가 주목한 영국사회의 양면성, <이스턴 프라미시스>
ibuti 2008-03-28

병원으로 실려온 소녀가 출산 과정에서 죽은 뒤, 조산사인 아나는 소녀가 남긴 일기를 보다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된다. 가난을 피해 영국으로 온 14살의 러시아 소녀는 범죄조직에 유린당하면서 살았던 것. 일기 때문에 위협을 받는 아나가 조직의 운전사인 니콜라이와 만나면서 사건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니콜라이 역의 비고 모르텐슨은 <이스턴 프라미시스>가 <폭력의 역사>의 논리적인 후속편처럼 보인다고 했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질문은 계속된다. ‘폭력과 거짓말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폭력이 선의 도구로 쓰일 수 있는가’. 사실 두 영화의 출생 배경은 판이하게 다르다. <폭력의 역사>가 미국산 그래픽소설에서 출발했다면, <이스턴 프라미시스>는 이문화의 충돌과 그 아래 위치한 진실을 캐는 영국인의 각본을 바탕으로 했다. 전작 <더티 프리티 씽스>에서 이민자의 삶과 불법 장기매매를 통해 영국사회의 현실을 예리하게 꼬집었던 스티븐 나이츠는 이번에도 런던의 러시아계 마피아의 범죄행각과 현대의 노예제도를 까발린다. 밤에는 온갖 추악한 일이 벌어지다가 아침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하게 정리되는 세계. 크로넨버그는 그 양면성에 주목한다. 그에게 필라델피아 범죄조직과 런던 마피아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크로넨버그가 폭력적인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건 실존주의자로서의 바탕 때문이다. 폐쇄된 하위문화에 관심이 있다는 그는 폭력의 단순한 재현을 넘어 폭력의 본질과 그 영향을 진지하게 고민한다. 영화 속 두목은 친절하고 점잖은 태도 밑으로 잔혹하고 더러운 얼굴을 숨긴다. 우리는 그의 본모습이 뭔지 혼란스럽지만, 그의 행동에 대한 윤리적인 판단은 가능하다. 크로넨버그가 거기서 이끌어내고 싶은 건 (<폭력의 역사>에 이어 다시) ‘희망’이다. <폭력의 역사>에서 킬러의 전력이 드러나는 시골 남자로 분했던 비고 모르텐슨은 반대의 역할을 맡아 낙관의 주체로 나섰으며, 데이비드 린치의 <인랜드 엠파이어>에서 토끼 분장을 한 채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모호하고 어두운 세계로 재차 빠져들었던 나오미 왓츠는 크로넨버그와 만나 현실세계로의 탈출을 감행한다. 두 사람 사이에 안긴 아기의 얼굴에선 <브루드>에 등장하는 복제아들의 악몽이 더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죽은 소녀의 내레이션으로 나오는 ‘좀더 나은 삶을 위해서’다. HD DVD와 합본으로 구할 수 있는 <이스턴 프라미시스>의 DVD는 얼굴의 주름까지 잡아내는 선명한 영상을 자랑한다. 두개의 부록- 감독, 각본가, 비고 모르텐슨의 인터뷰로 구성된 <비밀과 이야기>(11분)와 범죄조직에서 문신이 차지하는 의미와 영화에서 가짜 문신을 새기는 과정을 담은 <인생의 흔적>(7분)- 은 적은 분량 속에 알찬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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