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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에서도 빛나는 줄리앙 슈나벨의 재능, <줄리앙 슈나벨전>
김유진 2008-04-03

3월27일~4월20일 | 갤러리 현대 | 02-734-6111-3

2007년 <잠수종과 나비>로 칸영화제 감독상까지 거머쥔 줄리앙 슈나벨이지만, 데뷔작 <바스키아>를 내놓을 때만 해도 그는 동료 화가의 이야기를 연출한 ‘화가 출신’ 감독으로 소개되곤 했다. 그렇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줄리앙 슈나벨의 이력을 확인할 기회가 생겼다. 그의 미술작품 30여점이 아시아순회전의 일환으로 베이징, 홍콩, 상하이를 거쳐 서울에 오게 된 것이다. 이제는 오히려 영화감독이라는 수식어에 더 무게가 실리는 듯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작품들을 ‘영화감독’의 미술작업으로만 감상한다면 놓치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줄리앙 슈나벨은 1970년대 말 미국 화단에 등장하여 신표현주의의 범주에 포함되는 1980년대 미국 뉴 페인팅의 기수로 알려져 있다. 그가 등장하기 전, 당시 일부 비평가들은 예술에 냉소적인 시선을 보냈던 팝아트와 지극히 절제된 표현방식을 사용했던 미니멀리즘 작품에 대해 ‘회화는 죽었다’고 선언했었는데, 이미지와 표현력이 강조된 줄리앙 슈나벨의 작품들은 이들에게 다시금 회화의 부활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회화의 표현적인 요소들을 불러내며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당시 회화의 표현적인 요소들을 불러내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평가받았다. 캔버스에 깨진 접시를 붙여서 그림을 그렸던 플레이트 회화(Plate Painting)는 “회화의 표면을 파괴하고자” 했던 의도가 잘 드러난 그의 대표적인 작업이다. “접시 위에 그려진 면과 그림이 이루는 면이 빚어내는 부조화를 선호했다”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는 물질과 재료에서 오는 독특한 질감을 표현 요소로 취했다. 깨진 접시 외에 동물 가죽, 타르, 벨벳 등이 그가 선택한 것들이다. 재료에서 연상되는 상징들과 문자, 언어의 표현은 내러티브적 요소를 가미했고, 동시에 붓질은 매우 공격적이면서도 현란하게, 또 색채는 강렬하고 화려하게 사용했다. 이렇듯 과감한 표현력이 이미지를 지배하고 있는 그의 작품은 신화, 죽음이라는 인류 보편적인 주제부터 그의 감정, 개인적인 관심사인 서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소재로 삼고 있다.

줄리앙 슈나벨의 작품은 평단뿐만 아니라 당시 미술시장에서도 대단히 성공한 케이스였는데, 객관적으로 보자면 1979년 그의 개인전을 열었던 메리 분 갤러리의 역할도 컸다. 당시 뉴욕에서 1980년대 뉴페인팅 작가들을 키워냈던 메리 분은 뉴욕 미술계의 스타를 자처하며 거만하게 등장했던 줄리앙 슈나벨의 허풍 섞인 큰 소리가 현실이 되도록 힘을 발휘한 셈이다. 90년대 미술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줄리앙 슈나벨이 첫 영화 데뷔작인 <바스키아>를 내놓은 건 1996년. 영화감독이라 적힌 그의 이름 아래에는 몇편의 필모그래피가 더 늘어났지만, 회화뿐만 아니라 사진과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미술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2003년,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일 회화가 죽었다면 이제는 회화를 새롭게 시작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회화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으나 오히려 그들이 고인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새 영화만큼이나 미술작업들이 궁금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