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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코> 감상기 [1] 돈 없으면 그냥 죽어라?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병폐를 보며 대오각성하다

몇년 전 미국에 연수 갔던 선배가 갑자기 쓰러져 심장수술을 받았던 이야기를 들었다. 쓰러진 선배는 911 앰뷸런스카와 헬기까지 동원돼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한다. 오오~ 놀라운 선진의료시스템! 한 가지 미스터리는 그가 이송된 곳이 제주도에서 서울 거리가 아니라 올랜도 시내에서 시내였다는 것. 그리고 받은 청구서에 찍혀나온 3천달러가량의 이송 비용(수술비용이 아니다). 오오~, 음… 쿨럭.

새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보험 민영화 정책이 도마에 오르면서 그것을 비판하는 보도에 인용됐던 <식코>의 비디오클립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난 이 영화가 미국의 민영의료보험제도를 비판하는 영화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식코>는 그렇게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의료보험이란 무엇인가.

여기도 앰뷸런스 사례가 하나 나온다. 큰 교통사고를 당했던 한 여성이 비싼 앰뷸런스 비용 가운데 한푼도 보험금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이유는 사전 고지를 안 했다는 것. 여성은 분개한다. 쓰러져서 의식이 없는데 어떻게 연락을 하냐는 거다. 의료보험제도의 깊은 뜻을 너무나 몰라주는 투정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말은 철지난 20세기의 격언인 거 모르나? 사고나서 쓰러져 있으면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다가와 모든 걸 해결해줄 거라고 믿다가는 지갑이나 털리고 더 재수없으면 튀어나온 장기마저 다음날 장기매매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경쟁의 21세기에 필요한 건 뭐? 튀어나온 내장을 두손에 들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강인한 정신력이다. 여기서 백번 양보해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앰뷸런스가 필요하다는 통보조차 할 수 없는 정신력의 소유자라면 헬기로 실어다 살려놔도 사회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골수암으로 남편을 잃은 아내의 경우는 어떤가. 남편은 운 좋게도 골수 기증자를 찾아냈지만 보험회사에서 수술이 위험하다며 수술비 지급을 거절당했다. 그리고 3주 만에 세상을 떠났다. 보험회사는 수술로 인해 겪을 수 있는 부작용과 합병증의 고통보다는 3주 동안의 안전한 삶을 권한 것이다. 물론 그 환자는 완치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만의 하나 수술이 잘못되느니 3주라도 확실히 더 살라는 보험회사의 자비로운 이 결정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인간의 얼굴을 한 미국 의료보험제도?

미국 의료보험회사들의 현명한 판단 중 내가 꼽은 <식코>의 베스트는 21살 때 자궁경부암이 걸렸던 여성의 케이스다. 그녀가 거절당한 이유는 ‘젊은 여성은 자궁암에 걸릴 수 없다’. 딸랑 이거. 긴 설명이 무슨 소용이랴. 밝은 미래를 도모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운동도 하고, 저금도 하지만 인생 결국 팔자라는 우주적 진리가 이 간결한 문장에 담겨 있는데.

<식코>는 이처럼 민영보험제도의 심오한 철학을 통찰함과 동시에 국가의료보험제도의 치부를 날카롭게 짚는다. 이 부분에는 한국 의료제도의 미래에 대한 고민도 대입할 수 있어 흥미롭다. 많은 한국의 의사들이, 의료 시스템이 경쟁없이 국가 재정으로 귀속되면 의사들의 처우가 떨어지고 이로 인한 근로의욕 저하가 의료의 질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고 말해오지 않았나. 그 암울한 현실이 바로 <식코>에 나온 영국 런던의 공무원 의사다. 정부 월급으로 사는 그가 사는 꼴은 비참하다. 겨우 런던 중산층 주택가의 방 4개짜리 아파트에 아우디 세단 따위나 타면서 만족해하는 모습이라니.

얼마 전 나는 개원의 1인 월수입이 866만원에 ‘불과’하다는 의사협회의 한 보고서 내용을 기사로 보고 깜짝 놀랐다. 의사 월수입이 4년제 대학 나온 내 연봉의 3분의 1도 안 되다니, 이래서야 어떻게 진료 의욕이 생길 수 있겠나. 이러려고 그 많은 의사들이 내가 하루 12시간씩 일하면서 빈둥거릴 때 하루 13시간, 14시간을 공부로 매진하고 격무에 시달려가며 의사 자격증을 딴 건 아니지 않나.

결론적으로 의료보험은 환자들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며 열리는 돈지갑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료보험이 나에게 무엇을 해줄까 기대하지 말고, 내가 의료보험 앞에서 약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민건강증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사실 나는 얼마 전부터 이 다짐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미국인들처럼 각종 비타민과 철분 보강제, 홍삼과 로열젤리까지 약과 건강보조제에 의지해 살고 있다. 덕분에 우리나라 정책입안자들이 사랑하는 아메리칸 라이프 스타일을 구가한다는 남모를 자부심까지 생긴다. 야호~ 약 먹으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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