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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동서연방제를 실시하라
2001-11-07

신현준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한국에 ‘민족문제’는 없다. “하나의 민족이 둘로 분단된 나라에 살면서 뭔 소리냐”라는 반문이 들려오지만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여러 민족이 하나의 통합된 ‘국민국가’를 구성하는 것이 근대 이후 일반적 과정이고,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다민족국가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소수민족이 조금만 개기면 거대한 나라도 골치를 썩는 ‘해외 토픽’이 끊이질 않는다. 러시아가 체첸에, 중국이 티베트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세계사적 예외로 단일민족국가(라고 한)다. 그래서 민족(ethnicity)과 국적(nationality)의 구분은 국제법에는 있지만 ‘국민정서법’에는 없다. 한 예로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미국에 사는 한인(韓人)을 ‘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으로 간주하고, 이다도시나 신의손(사리체프)처럼 한국에 귀화한 사람도 여전히 ‘외국인’으로 간주한다. 한국에서는 민족=국민=나라=국가다. 이걸 두고 ‘민족(ethnicity)이란 문화적 개념이고, 국민(nation)은 정치적 개념’이라고 분석적으로 설명하려고 해봤자 ‘서양식 개념으로 우리의 현실을 진단하는… 어쩌고’라는 소리나 들을 뿐이다.

그런데 한민족이 정말 단일민족? 다음과 같은 문장을 보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우야겠노, 사람이 없는데. 그래도 정권은 빼앗아와야 할 거 아이가”(한나라당 영남권 중진의원), “원래 경상도 기질은 불뚝불뚝하면서 화끈하고, 앞에서는 시끌벅적 욕도 하고 소리도 지르지만 뒤끝없는 스타일 아니냐”(한나라당 재선의원). 짐작하듯, 이 말들은 영남권 정치인들의 ‘이 총재’에 대한 생각을 다루는 기사로부터 인용한 것이다(<주간조선>, 1677호, 2001년 11월8일). 저 발언이 진심이라면(진심이 아니라고 믿을 이유가 없다) 영남인들은 “‘기질’과 ‘스타일’이 영 맞지 않는 세력에 ‘정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마치 ‘나라 잃은 민족’의 독립투사가 하는 발언 같다.

호남사람으로 오해받을까봐 한마디하면 요즘은 나도 “정권을 잡으니 호남인들도 만만치 않게 ‘징하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한다. 하긴 처가가 영남에 있고, 허문영, 황혜림, 백은하 등 <씨네21>과의 커넥션도 자갈치 패밀리에 속하는 마당에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영 계면쩍다. 하지만 여진족과 백제족의 잡종인 부평초 같은 인생으로서는 동군이든 서군이든 ‘남부군’의 중앙지향적 집요함과 그악스러움에 주눅이 든 지 오래다. 물론 ‘특정 지역 사람이라고 다 똑같으냐’라고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게 공인의 도리겠지만, 문제는 ‘전반적 경향’이다. 게다가 그 경향은 사라지기는커녕 줄기차게 재생산되고, 그걸 부추기는 세력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아예 서로 ‘다른 민족’이라고 발상을 전환하면 어떨까.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데 무슨 다른 민족이냐”라고 반문한다면, 영남어와 호남어의 차이는 구어(口語)상으로는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 사이의 차이와 비슷하다고 답변하겠다. 형질인류학 책을 뒤져서 골상 구조와 안면 형상의 차이를 증명해보일 생각도 없지 않다. ‘다른 민족’이라는 말이 영 거슬린다면, 지역의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는 게 (요즘 직장인들 용어로) ‘리즈너블’하면서 ‘억셉터블’할 것이다. 괜히 무리하게 단일민족이라고 우기기보다는. 겉으로는 ‘망국적 지역감정’ 어쩌고 떠들다가 뒤에서는 ‘우리가 남이가…’라고 호박씨 까는 이중성보다는 이러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다.

차제에 남북 사이에만 연방제를 구상할 게 아니라(아직도 이런 말 하면 ‘빨갱이’라고 잡아가나?) 동서 사이에도 연방제를 구상하면 어떨까. 그런데 여보, 동서연방제를 실시하면 우리 가족이 이산가족이 되는 건가? 그건 안 되지. 자유 왕래를 비롯한 지역간 문화교류는 당연히 보장해야지…. 차제에 중부권은 영세중립지대로 설정하여, 왕건의 후예를 자처하는 훌륭하신 분들께서 ‘무력으로 통일하려는 시도’는 원천봉쇄해버리고. 아아, 그나저나 삼성 라이온스는 왜 또 개박살나서 가뜩이나 피해의식 가득한 영남인들을 ‘꼭지 돌게’ 만드는 것이냐. 주: 이 글을 ‘중부권 세력규합 시도’라고 독해한 사람은 EQ 테스트를 받아볼 것을 권장함. 신현준/ 정치비난가 http://homey.w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