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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의 배우스케치] 문근영

2004년에서부터 2006년에 이르는 짧은 기간 동안 문근영은 ‘국민 여동생’이라는 심히 닭살스러운 별명을 달고 다녔습니다. 닭살스럽기도 하지만 괴상하기도 했죠. ‘국민 여동생’이라는 별명은 훨씬 이전부터 대중과 친근한 관계를 유지해온 사람에게 어울립니다. 하지만 문근영은 주목받는 아역배우 출신이긴 했지만 그 정도로 인기있다고는 말할 수 없었죠. 게다가 그 별명을 달고 다니던 짧은 기간 동안 문근영은 생애 최악의 작품들만 골라서 찍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겠지만, 아마 문근영 자신도 지금 굉장히 민망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에겐 ‘국민 여동생’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문근영보다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장편 감독 데뷔작인 <어웨이 프롬 허>가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되어 좋은 평을 받고 있는 사라 폴리 말입니다. ‘국민’과 ‘여동생’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게 결합된 이 명칭은 문근영보다 사라 폴리에게 더 잘 어울립니다. 그렇지 않나요? 폴리 역시 아역배우 출신으로 캐나다의 히트 시리즈 <애본리 마을 사람들>에 출연하면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조금씩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내셔널리스트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할리우드의 제안을 꾸준히 거절하며 캐나다영화계에서 활동해왔고요. 다행히도 캐나다 사람들은 이런 명칭을 만들 만큼 닭살스럽지는 않았죠.

사라 폴리에 대한 캐나다 국민의 지속적인 후원과 애정이 우리에게 흥미로운 건 폴리의 경력이 꽤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폴리는 이른바 운동권입니다. 아역배우 때부터 소문난 데모꾼이었고 지금까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단 한번도 숨긴 적 없었죠. 그 사람의 지금까지의 경력 역시 그런 정치적 입장과 썩 잘 맞아떨어져요. 사라 폴리는 결코 남들에게 쉽게 당하지 않고 듣기 거북하더라도 할 말은 언제나 하는 고집 센 배우입니다. 그런데 그런 배우를 사람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사랑한단 말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이건 신기한 구경거리입니다. 우리나라의 젊은 연예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결코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려면 문소리 정도의 나이는 되어야 하는 겁니다. 우리에게 그들은 마치 정치적 진공 속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오락물들처럼 말이죠. 정치적 이슈는 그들이 배설물이나 음란비디오처럼 숨겨야 할 어떤 것입니다. 아니면 처음부터 가져서는 안 되는 거거나.

이해가 되긴 합니다.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것이 당연시되는 건 정치 환경이 어느 정도 성숙한 나라에서나 가능하죠. 절차 민주주의를 확보했다고 해서 정치 환경까지 순식간에 성숙해지는 건 아닙니다. 게다가 인기있는 대부분의 연예인들은 작품보다는 CF 출연료로 먹고삽니다. 사라 폴리보다 운신의 폭이 제한되어 있는 건 당연하죠. 우리나라 연예인들이 불필요할 정도로 대중에게 애교를 떠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CF 환경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CF는 영화나 드라마보다 훨씬 좁은 이미지를 요구하죠.

백번 이해한다고 해도 이건 좀 재미가 없습니다. 재미있는 건 반대쪽이죠. 언젠가 제 게시판의 어떤 사용자가 파릇파릇한 인기 연예인들이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 상당히 과격한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것에 대한 판타지를 고백한 적 있습니다. 전 그런 판타지 없어도 먹고는 삽니다. 하지만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꽤 재미있을 것 같고, 그 판타지에 문근영을 대입하면 썩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합니다. 네, 고백합니다. 잠시 그런 장면을 상상했어요. 물론 이건 판타지일 뿐입니다. 게다가 그런 일은 현실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소속사가 허락해주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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